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정 Mar 01. 2023

5화. 땅도 땅도 내땅이다 조선 땅도 내땅이다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희수야, 너그 어무이 굿은 참말로 걸지고 좋았다. 그런 중에도 말이다, 우리덜이 치는 매굿에 샘굿도 있고 문굿이나 정재굿도 있제만은 너그 어무이 허는 굿에는 비길 것이 없제만은 말이다, 모든 굿에는 맺고 푸는 자리가 있게 마련이잖냐? 근디, 맺고 푸는 디에도 자잘헌 디가 있고, 굵으면서도 묵직헌 디가 있어야. 우덜이 걸군농악을 칠 때도 창부놈을 발견허기 전까지는 얼마나 가볍고 즐겁냐? 참말로 명관이놈 태평소 불어재끼는 날라리 소리 들어감시로 꽹과리소리 매기고 장구소리 풀어놓으면 참말로 다들 얼굴에 꼬깔맹이로 화사하게 웃고들 뛰잖냐. 다들 풀어져 있는 거여. 근디 조리중 그 가이내가 눈 부리부리 뜨고 아장거리면서나 한삼자락 펄럭거리면 참말로 걍, 그것이 그냥 허는 짓거리인중 아는디도 말이여, 이상케 가슴이 뛴다이. 왜 긍가 모르겄어야. 가슴이 둥개둥개 뛰면서 맴이 바빠져야. 고걸 누룰라고 그냥 그런 것이다아, 셈을 허는 디도 안되야. 참말로 조리중 가이내 고것이 애물단지 같어야. 긍께로 어쩔거여. 뛰야지. 기양 한 박으로 침성 빠르게 몰아가면서 거 만상인지 우거지상인지 창부놈을 몰아재끼잖냐? 말허자면 고거이 맺는 것 아니겄냐? 성질 같어서는 영기 앞에 쪼글치고 앉었는 그 창부놈 다리를 걸어서 자빠뜨려갖고 다리몽댕이를 걍 작신 분질러 놓고 잪은디, 아이, 고놈이 쩟, 호랭이나 물어갈 놈, 참말로 세상없이 착헌 놈 장만상이놈 아니냐? 어쩌겄냐? 또 풀어줘야지. 긍께로 굿이란 것이 그런 거여. 사정 봐감성 풀었다 조였다 험성 강약을 조절허능 거여. 긍께로 다들 약속이나 헌 것처럼 덩기덩기 덩기덩 덩기덩기 덩기덩 ~ ~ 치면서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뒤로 빠졌다 험성 간격을 벌려놓는 것이여. 아무리 그놈이 미운놈이여도 미운놈 떡 하나 더 주드라고 숨통을 풀어줌성 조이고 풀어줌성 조이고 허능 거여. 인정이이라는 것이 그런 거여, 금성 한 판 늘어지게 노는 것이제.”

  “…….”

  “희수야, 자냐?”

  “아니여라.”

  “근디 소리가 없응께, 잘란디 내가 자꾸 말을 겅께 니가 괴로운가비다.”

  “아니여라. 영감님 말씀 새겨듣고 있구만이라.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디도 들으면 들을 때마다 새로운게 새겨듣니라고 그렇구만이라.”

  “그려. 자세가 됐다. 너도 잘 알제마는 한 박으로 몰아치는 것도 달러야. 창부놈 붙잡으러 갈 때는 같은 한 박이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같은 것이 있는디, 잡어갖고 풀어줄 때는 느슨해지면서 여유가 있어야. 근디, 고럴 때 풍류의 감정이 생겨야. 꽉 잡아 몰아붙일 때는 괘씸한 마음과 이놈을 본때를 보여줘야지 험성 앙심이 생겨나는디, 안으로 죄였다 밖으로 풀었다 헐 때는 괜시리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너무 했는가 싶은 맘도 생겨야. 긍께 자연 박자에도 밀고 땡기는 것이 생기는 것이여.”

  “근디, 영감님, 지금이야 평화로운 시절이고, 옛날 임란과는 다른 때니까 창부가 그저 마음 좋은 만상이 아재지, 그 옛날로 치면 세작인디라 마음이 그렇게 허술해서 쓰겄는가라?”

  “그려. 니 말이 틀린 디가 없는디, 말허자면 그렇다는 것이제. 어디 임란까지 올라가겄냐? 우덜이 왜놈덜한티 꽉 잽혀갖고 옴짝달싹 못헐 때도 우덜 걸군 농악은 독립을 해야 된다고 일깨우고 댕기는 선상들헌티는 참 요긴허게 쓰였으야. 독립군 허는 사람들도 먹어야 할 것이고, 옷도 입어야 하는디, 그런 것들은 제쳐두고라도 총도 사고 무기도 만들어야 허니께 돈이 많이 필요하제. 그런디 우덜 같은 사람들은 심바람 허기도 좋고 왜놈들 눈을 돌려 두는 디도 잘 써먹었어야. 어디 그것만이냐? 우덜이 모여갖고 굿을 침서나 독립을 해야 된다고 마음을 모으는 디도 농악은 지 역할을 톡톡히 했어야. 그렁께 왜놈덜이 앞잽이놈들 세우고 와서는 꽹과리고 징이고 다 뺏아가불고, 그놈으로 총알 맹글고, 그리갖고는 우덜 조선 사람들을 꼼짝도 못 허게 허고 그랬제. 사람들 모이도 못허게 막았이야. 조금만 뭣헌 소리 하믄 귀신같이 알고 와갖고 묶어가불고, 총 쏘아불고, 칼 차고 댕김성 매급시 철거덕거리고 말이다. 징했어야. 그 시절을 어떻게 용케 죽지 않고 살어서 요러고 살고 있는지, 참말로 꿈만 같이야. 근디 그것이 옛날 얘기지 지금이야 개명천지 태평세월 아니냐? 결기는 죽지 않고 살어서 아직도 꽹과리 잡고 징 잡으면 어쩐지 다들 마음이 달라져갖고는 장만상이놈을 어떻게든 봐불라고 허는디, 그것도 어디까지나 농악 본이 그렁게 그라지 그것이 어디 참말이겄냐?”

  “그렇지요. 근디, 우리 소포리 농악이 참말로 서산대사 진법농악일까롸우?”

  “그러지야. 그것이 그랬다는 기록이 아직도 남어 있응께. 긍께 우리 소포리 농악이 근본이 조촐허지가 않어야. 너도 알랑가 모르겄는디, 지금이야 세월이 흘러서 집사를 병식이가 맡고 있지만 주찬계 어른 집안에서 서산대사 진법농악이라고 보는 걸군악보의 후반부 일부를 갖고 있었어야. 긍께 주찬계 그 어른이 그것을 신주단지 모시대끼 보관을 해 왔는디, 그것이 임란 때 서산대사가 창안한 진법이라는 말도 있고, 이 충무공 휘하 장병들이 소포리 서북간방 있잖냐? 둔배산 아래 염전에서 한 달허고도 열흘씩이나 모종의 작전을 수행하는디 권 씨의 염전막에서 일하던 염부들을 걸군조직으로 활용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응께, 어쨌든 우리 걸군 농악이 나라를 지킬라는 디로 긴요하게 쓰였던 것은 사실잉가비더라. 어야. 사실 그 말이 전부는 아닌디……아야, 너나 나나 잠자기는 글러부렀다. 일어나서 불이나 좀 키봐라. 담배나 한 대 꼬실림성 말히야지……입이 씨다. 사램이 늙는갑다.”


  희수가 일어나 불을 켠다. 천장에서 달고 내려온 끈에 매달린 백열등이 차갑게 흔들린다. 백열등을 꽉 물고 있는 새까만 소켓 옆구리에 달려 있는 스위치를 돌려 불을 켠다. 삼십 촉짜리 불빛이 어둠을 몰아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방인가. 천장 곳곳에 쥐들이 싸질러놓은 오줌들이 누렇게 바래 얼룩덜룩 점점이 박혀 있고, 벽을 타고 쪼르르 내려오다 말고 도망쳐 올라간 쥐 놈들 발길질에 채인 흙벽에 생채기가 생기면서 떨어져 내린 굵직한 흙덩이 냄새가 후줄근하게 풍겨온다. 한 모금을 힘껏 빨아 입 안 가득 물고 있다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자리에 앉는 희수의 얼굴을 덮는다. 안개 같은 연기에 휩싸인 희수가 눈을 찡그린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눈을 찌르고 눈에서는 알싸한 눈물이 찔끔 솟는다. 그 냄새가 폐부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심장이 울린다. 고동친다. 뻑뻑 빨아재끼던 담배꽁초가 타들어가 투박한 손에서 잉깔라진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내놈들의 담배가 잉깔라진 재떨이의 우둘투둘한 면에서 또 한 개비의 담배가 잉깔라진다. 황갈색의 가루가 침에 절어진다. 무엇이 이 밤 상쇠영감을 잠 못 들게 하는가. 액막이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도통 알 수 없는 밤이 두 사람을 두고 혼자서 간다.      


   아따 우리 마을 터신들께서 그동안 너무 배가 고파 서러웠는디

   인자 배가 절반 정도 차올르요. 여기 배꼽까지 올라왔소이~~

   자, 오늘날 천 가지 만 가지 일만 가지 부정 싹 다 걷어다가

   손끝에 담뿍 씻어서 우리 마을 사람들 가는 길에 쌓인 부정까지

   다 빗자루로 싹 쓸어서 던져버리고 

   생기 주고 밥도 주고 좋은 기운 다 주어서

   복되고 재수 좋은 날들로만 이루어지자고

   천 부정 만 부정까지 다 걷어나가 봅시다 그려이~~    

 

   왕아 신아 액이로구나~~


   액을 막어 예방허고 살을 막어 삭제해 

   하나 옷을 벗어다가 열의 액을 막었네 

   열의 옷을 벗어다가 하나 액을 막아주세 

   정칠월 이팔월 삼구월 사시월 오동지 육석달이 

   번개같이 넘어가도 궂고 낮은 살기는 막아서 예방하세~~~    

 

   동서남북

   정월에 드는 액은 정월대보름날로 막아내세

   이월에 드는 액은 이월연등달로 막아내세

   삼월에 드는 액은 삼월삼짇날로 막아내세

   사월에 드는 액은 사월 초파일날 막아주세

   오월에 드는 액은 오월단옷날로 막아내세

   유월에 드는 액은 유월유두날로 막아내세

   칠월에 드는 액은 칠월칠석날로 막아내고

   팔월에 드는 액은 팔월한가위날로 막아내세

   구월에 드는 액은 구월중구날로 막아내고

   시월에 드는 액은 시월시제날로 막아내세

   동짓달에 드는 액은 동지섣달로 막아내세

   섣달에 드는 액은 섣달그믐날로 막아내세

   액을 막어 예방하고 살을 막어 삭제(朔祭)할제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지산면 소포리 사람들 

   액이나 막아주세~~(사설 생략)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동에는 청제장군 청말에 청안장 청투구 쓰고 

                  청갑옷 입고 청가래 청살을 손에다 들고 동방으로 떨어져 

                  집안에 (수)살을 다 걷어가세

                  에에루 액이야 어라종천 액이로구나~~~~

   남에는 적제장군 적말에 적안장 적투구 쓰고

                  적갑옷 입고 적가래 적살을 손에다 들고 남방으로 떨어져서

                  집안에 (우환)을 다 걷어가세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서에는 백제장군 백말에 백안장 백투구 쓰고

                  백갑옷 입고 백가래 백살을 손에다 들고 서방으로 떨어져서

                  집안에 (관제)도 다 예방하세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북에는 흑제장군 흑말에 흑안장 흑투구 쓰고

                  흑갑옷 입고 흑가래 흑살을 손에다 들고 북방으로 떨어져서

                  집안에 (삼제)도 다 걷어가세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중앙에는 황제장군 황말에 황안장 황투구 쓰고

                  황갑옷 입고 황가래 황살을 손에다 들고 중앙으로 떨어져서

                  집안에 (신살)도 다 걷어가세

                  에에라 액이야 어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느그 오매가 액막이를 헐 때는 느그 아부지도 긴장을 많이 했어야. 제석굿을 할 때는 모든 것이 푸지고 모든 것이 넘치게 좋은디, 긍께 장구가락도 그냥 늘어지게 낭창낭창 사치스럽고 흥에 겨운디 말이여, 액막이로 들어서면 모두가 얼굴판부터가 달려져분다 이거여. 웃음기가 다 거두어지고, 어딘지 불안하게 굳은 표정으로 촉각을 세운다 이거여.”

  “아닌 게 아니라 어무니 굿 허실 때 한 번씩 따러가 보면 액막이 할 때는 유달리 긴장을 하시등마요.”

  “그라제. 진짜 굿의 목적이 어쩌면 거그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여야. 누구든지 살어가는 디 가장 중요헌 것은 사램이 살고 죽는 것잉께, 막말로 돈이라는 것이 꼭 그러겄냐마는 그리도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돈이여야. 물론 없으면 불편허고 있으면 세상에 질로 좋은 것이 돈이여. 못난 사람도 돈 있으면 잘난 사람이 되야불고, 본래 잘난 사람은 더더구나 더 좋은 것이 돈이제마는. 거어, 나 같은 사램은 마누래보다 더 존 것이 돈이지만 말이다……헤헤, 그것 없다고 완전히 죽는 것은 아니어야. 하지만 건강은 한 번 잃으면 다 잃는 것이나 진배없어야. 나무 부러진 디다 풀 붙인다고 그것이 살어나겄냐. 긍께 뭣보다도 중헌 것이 건강인디, 액막이라는 것이 종국에는 해로운 기운은 모두 없애버리고 좋은 것만 골라서 받자는 것 아니겄냐? 사람이 돈도 있고 건강도 좋으면 금상첨환디, 얼굴에 구정물 튀면 있던 돈도 솔래솔래 기어나가버리고, 넘보기 그렇게도 호사스럽던 권력도 사실 말이다, 얼굴에 구정물 튀고 이름짜에 흙탕물 튕기면 하얀 모시옷 차려입고 나간 길에 흙탕물 뒤집어쓰는 것잉께 …… 스으읍 푸우…… 어쩌겄어? 벗어야지. 웃옷 벗으면 아래옷 벗어야 허고, 그러니라 허면 속옷도 벗어야겄지. 우세도 그런 우세가 없제. 허기 좋은 말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들 허는디……그것이 그렇게 되기까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긍께로 액막이가 잡다한 것들을 싹 쓸어내는 것이고, 맑고 깨끗헌 기운들로 채워 넣는 것인디 말이여……. 그때는 긍께 어찌서 그놈의 액살(厄煞)이 그리도 두껍고 찰거머리마냥 질기고 드샜는지, 차암 알다가도 모르겄당께.”    

 

  하얀 쾌자를 입은 소희가 마당을 빙빙 돌며 축원을 한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축원의 말을 한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일 년 열두 달 쉬는 날 없이 지켜온 정성이건만 그런 마을의 성주인데, 그래도 마을의 터줏대감인데 대접이 소홀했다고 서운해하던 신들이 오늘은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가상하게 여겨 배가 차오른다고 말을 전한다. 그러니 천만 가지 오만 가지 모든 부정한 것들은 빗자루로 싹 쓸어서 던져버리자며 들고 있는 정종의 상아 채를 위에서 아래로 빗겨 내리며 마당을 쓸어내는 행신을 한다. 그리고는 생기 주고 복도 주자고 청하며 독백 축원의 끝을 쳐올린다. 소리꾼의 너름새가 끝나고 창이 시작되려는 것처럼 ‘걷어나가 봅시다 그리여 ~’ 끝에 힘을 주어 한껏 추어올린다. 순간의 추임새가 ‘왕아 신아 액이로구나~~’ 후렴을 받는다. 축원을 들으며 긴장의 끝을 마름질하던 천수의 아쟁이 밑으로 깔리는 소리를 거두어 위로 펼쳐낸다. 신들의 일 년 열두 달 들인 정성과 노고를 위로하는 현을 켜 올린다. 목을 비틀어 내는 소리에 한(恨)을 한껏 조였다 풀어낸다.  

  소포나루 소금쟁이들 걸군농악 집사가 멍석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 걸게 차린 상 위에 있던 옴팍한 제기에 쌀이 담긴 하얀 그릇을 얹는다. 동그랗게 말린 촛불이 바람에 일렁이며 타오른다. 덩 떠덩 덩 떠덩 차츰 흥을 올리며 울려오는 장구소리에 천문이의 구음이 드문드문 섞여 들어온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처럼 저 먼바다 위에서 노 저어 오는 사공의 뱃노래 가락처럼 섞여 들어온다. ‘왕아 신아 액이로구나~~’ 받쳐 올린 소리 끝에 ‘에에 에에엥에에~~’이어져 나오는 그 소리가 맑고 청아한데 소희는 차가운 바람 끝에 발갛게 일어나는 손을 둥글게 말아서 그릇을 들고 집사 곁으로 다가간다. 치맛자락이 살풋살풋 들썩이는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의 기운을 차게 느낀다. 액 그릇을 집사의 머리 위로 돌리며 ‘액을 막어 예방허고 살을 막어 삭제해~~’하며 ‘하나 옷을 벗어다가 열의 액을 막었네~~ 열의 옷을 벗어다가 하나 액을 막아주세~~ 기원을 노래한다. ’정칠월 이팔월 삼구월 사시월 오동지 육석달이 번개같이 넘어가도 궂고 낮은 살기는 막아서 예방하세~~~ 굿의 가장 큰 의미를 담아낸다.

  동서남북에서 들어오는 모든 액을 막아내자고 노래하는 소희의 액 그릇이 집사의 정수리에 가 닿는다. 사람의 가장 큰 기운은 정수리를 타고 흐르는 것인지, 정수리 정중앙 숨구멍에 ‘정월에 드는 액은 정월대보름날로 막아내자~~’고 축수(縮首)를 한다. 축수라 하여 당장에 고개를 조아리고 드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 마음 매무새는 신 앞에 비는 형국이라 경건함이 조아림의 예(禮)인 것이다. 그리고 이월의 액은 집사의 왼쪽 어깨로 가고 삼월의 액은 오른쪽 어깨로 가서 복을 바라는 연등으로 밝혀 씻어내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화창한 날 삼짇날 날아오르는 나비와 지저귀는 새의 소리로 묵은 기운 된 기운 털어내자 축수한다. 진달래꽃 따다가 둥글게 빚은 떡에 얹어 먹으며 새살 돋게 하자고 축수한다. 얼마나 무거운 어깨인가. 자신과 더불어 살을 나누고 피를 나누어 맺은 인연의 끈이 단단히 동여매고 있는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두 어깨다. 그곳에는 소금 가마니가 실리고 쌀가마니가 실리고 콩 자루가 실린다. 괭이자루 삽자루 휘둘러서 일구어낸 곡식들이 식솔들 입으로 들어가는 배부른 시간을 위해 두 어깨는 물집이 잡히고 괭이가 박힌다.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까놓은 몇 개의 알에서 구멍을 뚫고 나와 입을 벌리는 노란 주둥이의 생명들처럼, 자신의 혈육이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따사로운 날들을 지키려는 어깨에 소희는 액 그릇을 들고 돌리며 닦아낸다. 

  마당을 빙 둘러앉은 사람이나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꾼 행세로 서 있는 사람이나 숙연해지는 시간, 액은 그릇에 담겨서 촛불을 밝히며 집사의 오른쪽 다리로 간다. 겹치고 앉은 다리의 오른쪽은 사월초파일로 막아낼 사월의 액이고, 왼쪽은 오월 단옷날로 막아낼 액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쌀 몇 됫박을 묶어 지력산 자드락에 숨은 듯이 앉아 있는 절로 가는 사람들, 좀 더 영험한 곳을 찾아간다고 동석산으로도 가고, 저기 멀리 비끼내 마을 너머에 있는 첨찰산 계곡 물 시원한 쌍계사까지 찾아가는 사람들, 그 마음으로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앞에 조아리고 오 층 석탑을 도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섣달그믐날 걸군농악패 집사가 되어 닦아낸다. 오월이라 단옷날이라고 뭍에 사는 사람들마냥 창포물로 머리 감을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 고깔이나 쓰고 뛰는 사람들 모두 오동지 육 석 달을 번개같이 넘어가도 궂고 낮은 살기는 막아서 예방하자고 왼쪽 다리를 쓸어가며 닦아낸다. 씻어낸다. 

  덩기 덩 따 덩기 덩 따 궁 따 궁 따 울려오는 장단 사이에서 가물거리다가 잦아지다가 일어서며 다가오는 천문이의 액을 막자는 넋 울림이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기어코 감당해 내야만 비로소 사라져 가는 액을 예방하자고 추어올리는 천문이의 소리를 들으며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찍어낸다. 집사의 등 뒤에서 유월의 액을 닦아내고 칠월의 모퉁이를 돌아 팔월의 한가위 마당에서 다시 집사의 정수리 숨구멍을 틔워 액 그릇을 돌리는 소희의 굵게 말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달려서 고(苦) 상으로 간다. 일곱 개로 묶이고, 아홉 개로 묶이고 열두 개로 묶인 고 뭉치가 놓인 상 위를 뱅뱅 돌려 구시월 동짓달 액을 막아보자고 축수한다. 그리고는 큰상 앞으로 가더니 섣달에 드는 액을 막아낸다. 내처 걸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달려온 액막이의 한 고비가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후렴구로 돌아든다. 

  종천이란다. 사람들의 살림살이 사랑살이 틈을 엿보다가 슬쩍 들어와 치고 나가는, 때로는 가마솥 밑바닥에 눌러앉은 누룽지마냥 굳건하게 들러붙어 맹세코 떨어지지 않으리라 붙잡고 피를 말리는 액은 모두 종천하라고 한다. 종내는 하늘로 가서 대접받으라는 덕담으로 들리지만 그것들은 또 저마다의 업의 크기로 업칭에 얹혀 심판을 받을 것이니, 그것은 땅에 사는 사람의 몫이 아니다. 종천으로 달래 보내는 사람의 지혜는 덕이 되고 복이 될 것이나,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한 것은 인과응보 아니던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니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로 걷어낸다. 진도군 진도읍 지산면 소포리 사람들의 모든 액을 낱낱이 불러 축원장에 모아두고서 오방(五房)에 앉은 장군들을 불러 실어 보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는 어느 문사(文士)의 시심(詩心)처럼 한 고비를 넘어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 진도 사람들 아무렇지도 않게 흥얼거리는 흥타령의 한바탕 꿈처럼 에에루~ 장단으로~종천을 시킨다. 

  소희의 차가운 손이 한 줌의 쌀을 집는다. 그리고는 집사 앉은자리로 와서 동방의 청제장군을 부른다. 집사의 머리 위로 액 그릇을 올리고 한 손으로는 물살을 만들어 여울지게 하고는 청말에 청안장 청투구 쓰고 청갑옷 입고 청가래 청살을 손에다 들고 동방으로 떨어져 마을의 (수)살을 다 걷어가자며 손에 들었던 몇 줌의 쌀을 멀리 던져버린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뚝 떼며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노래를 부른다.

  남방의 적제장군은 적말에 적안장 적투구 쓰고 적갑옷 입고 적가래 적살을 손에다 들고 소희의 손끝에 올라앉는다. 멈추지 않고 걸어서 집사의 머리 위에 또아리를 만들고는 흩뿌리는 한 줌의 쌀과 함께 남방으로 떨어져서 마을의 (우환)을 다 걷어 하늘로 총총 달려서 간다. 날개 돋친 적안장을 두른 적말을 타고서 하늘로 달려서 간다.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섣달그믐 하늘은 구름을 쓰고 낮게 내려앉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의 액은 종천의 길로 간다. 

  서방의 백제장군은 백말에 백안장 백투구 쓰고 백갑옷 입고 백가래 백 살을 손에다 들고 고(苦) 상에 앉아 소희를 맞는다. 물동이전에 넘치도록 담겨지는 물살을 만드는 소희의 손사래 배웅을 받으며 서방으로 떨어져서 마을의 (관제구설)도 다 예방하겠다 말을 달린다. 백투구 쓰고 백갑옷을 입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달려 나가는 장군의 위엄으로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길을 나선다. 한 줌의 쌀알들이 넓게 흩뿌려진다. 

  극진한 예우는 북방의 흑제장군에까지 이른다. 과일이고 떡이고 걸게 차려진 큰상 앞에 앉아 술 향에 취해 소희를 맞는 흑제장군은 흑말에 흑안장 흑투구 쓰고 흑갑옷 입고 흑가래 흑살을 손에다 들었다. 휘휘 저어 정안수 그릇에 물을 담는 행신의 소희를 보며 일어선다. 북방으로 던져지는 한 줌의 쌀알들을 보고는 일어서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주춤거린다. 팔을 들어 올려 둥글게 말아가며 얼씨구절씨구 춤을 추는 소희를 뒤돌아보며 북방으로 길을 잡아 나선다. 마을의 (삼제)도 다 걷어서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멀어져 간다.

  중앙의 황제장군 황말에 황안장 황투구 쓰고서 집사의 머리 위를 휘휘 저어 남아 있는 모든 액을 거둔다. 그리고는 황갑옷을 입고서 고(苦) 상으로 가서 혹시 모를 액을 다 거두고 황가래 황살을 손에다 들고서 흑제장군 앉았던 자리로 간다. 늘쩍지근하게 앉아서 버르집던 검은빛 액살을 모두 거둔다. 그리고는 사방을 둘러보며 마을에 도사리고 있는 (신살)도 다 걷어서 에에라 액이야 어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한다. 

  소희가 춤을 춘다. 액 그릇을 올려 들고서 춤을 추고 고인(鼓人)의 바라지 장단이 급물살을 탄다. 천문이의 장구소리가 왼손에서 궁 궁 궁 궁 궁 휘몰아 들고 오른손에서 북광쇠 소리가 신명을 부른다. 종수의 태평소 날라리 소리가 굿잔치 흥을 퍼 올리며 신명들을 배웅한다. 다시 오시자고 불러놓고 어서 가시자고 손짓을 하는 사이 소희는 축원장에 쌓인 액살을 모두 문밖으로 버린다. 그 사이에 바라지 장단은 삼현육각의 예로써 청정한 기운의 물을 쏟아놓는다. 모든 불안의 짐을 벗어던진 소포나루 사람들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이 퍼진다. 

  소희가 다시 축원장을 큰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는다. 연꽃 모자를 벗어 세 번을 돌리고는 축원장 위에 올려놓는다. 멀리서도 듣고 흥겨운 물살 피어오르게 하는 천문이네 바라지 장단에 맞춰 빙글빙글 돌며 쾌자를 벗는다. 그 쾌자를 두 손에 받쳐 들고는 오방을 잡아 절을 한다. 액을 들고 오는 살도 신(神)으로 예우하는 세습무의 습속이 짙게 배인 몸이 허리를 굽힌다. 그리고는 쾌자를 들어 큰상을 휘휘 저으며 씻어내고, 집사의 머리 위를 휘휘 저어 닦아내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자신의 머리 위를 닦아낸다. 너울너울 휘날리는 쾌자자락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신들을 울린 여자 소희는 무릎을 꿇고 신 떠난 자리에 절을 한다. 마을의 안녕을 위한 소명(召命)의 춤이 일어나 반절을 하는 순간 박수가 터져 나온다.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흐르며 웃음이 피어오른다.      


대문사진: 대량대첩 이순신장군 동상

매거진의 이전글 4화. 장만상이 기가 막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