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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Mar 29. 2023

10화. 상두꾼들 마당으로 퍼지는 다시래기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어— 어— 어-     


  앞소리꾼 길게 늘여 부르짖는 소리가 세 번 울리고 상두꾼들 모두 따라 부르짖으며 꽃상여를 내려놓는 사이로 꽹과리 장구소리 울려 나오고 쇄납 날라리 소리가 태평하게 울려 나온다. 상갓집의 정경으로는 흥겨움이 두둥실 떠오른 달빛을 감고 흐르며 서러운 사람들의 눈물짓는 소리를 애써 감싸 안는다. 쉬 쉿 쉬이이……. 우는 소리 되게 하며 떼를 쓰는 어린 손주 놈 어르고 달래느라 진을 빼는 할미가 등을 쓸어내리며 내는 소리처럼 애가 잦게 우려낸다. 그 와중에도 몸을 흔들흔들 발을 틀어 올리고 내려가며 춤을 추는 이도 있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풍속이라 욕할 이 없건만 어쩐지 그 모양이 서럽게 우습다.    

  

  허- - 허- -허어이 

  이 집이 뉘 집이냐?

  다시래기 허는 사람들 다들 모여

  다시래기 허는 상갓집 제청 아닌가아?

   - 맞어, 맞어.

  자아, 우리 다시래기꾼들 한 번 놀다나 가세에- -     


  사내놈 하나가 멀쩡한 얼굴 뽄새로 걸어 들어오더니 팔을 휘저으며 사람들을 행해 말을 뱉는다. 여기가 뉘 집이냐고 묻고는 가랑가랑한 소리를 내어가며 한 번 놀다나 가자고 흥을 돋운다. 모여 앉은 사람들 향내 진하게 묻어나는 덕석에 발을 괴고 앉은 채로 맞어! 맞어!  고개를 끄덕이며 한판 흐드러지게 놀아볼 생각을 한다.     

  아따, 옛날 어르신들 말씀도 안 들어봤소? 

   - 뭐시라고? 뭔 말?

  흉년에 논 마지기나 팔지 말고 입 하나 덜라고 안 하딥끼여?

   - 그라지 그라지.

  아, 방 안에서 빼짝 밥이나 축내고 있는 당신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이

  얼마나 얼씨구 절씨구 할 일이여?

   - 예라이 썩을 놈, 염병할 놈 같으니라구.

  자아, 이왕지사 이 마당에 들어왔으니이

  상주분네와 내기 하나 합시다아.

   - 무슨 내기? 뭔 내기이?

  무슨 내긴고 허니이

  오늘 저녁에 우리가 다시래기를 히서 

  오늘 여기 오신 상두꾼들과 굿을 보러 온 동네 사람들에게 

  닭으로 죽을 쑤어서 주기로 허고오

  - 그라지--그랍시다아

  만약에 상주분네들이 웃지 않을 경우에

  우리 다시래기꾼들 품삯 하나도 받지 않기로 허는 것이 자아, 어쩠겄소?

   - 옳소. 그랍시다아~~ 그리여 


  이마에 하얀 띠를 두르고 상투 틀어 올린 자리 가운데로 짚신 두 짝을 얽어 묶은 사내놈이 가(假) 상제 분으로 들어와 다시래기 서두 사설을 늘어놓는다. 위아래 하얀 무명옷을 입고서 허리 가운데로 이엉을 엮어 묶었다. 소포뻘에 흐드러지게 늘어서서 바람에 흔들리다가 우듬지에 꽃차례 매달고 한 곳으로만 한 곳으로만 향하던 마음도 어느샌가 내려놓고 늙어버린 원추화서(圓錐花序)의 시름 가득 안은 갈대 속살만 추려내어 지푸라기 섞어 치마처럼 둘렀다. 소희네 집 초라한 지붕 한가운데에 팔자(八字)로 엮어 내린 용마름처럼 꼬아 허리를 둘렀다. 그리고는 미투리 신은 발을 질질 끌고 한쪽 다리를 삐딱하게 구부려 절며 한쪽 손에는 도굿대(절구공이)를 들고서 사람들을 홀린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어버이 돌아가신 슬픔에 빠져 있는 상갓집 제청에서 상주들을 웃겨준답시며 억지소리를 늘어놓는다. 흉년에 논마지기 있는 것 팔지 말고 입 하나 더는 것이 상책이라 일렀더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라며 공자 씨 맹자 씨 주옥같은 말씀들 줄줄이 써 내려간 병풍 앞에서 썩을 놈 염병할 놈 오살 헐 놈……. 온갖 험한 욕지거리들을 들어가며 재담을 풀어낸다. 그리고는 내기 허락을 받겠다며 꼴에 장단 없이는 못 가는가, 풍악을 거느리고서 몸을 한쪽으로 있는 대로 구부려서 다리를 절게 하고는 팔을 위풍당당하게 흔들어대며 들어간다. 그 꼴이 하도 우스워서 웃어대는 사람들과 꽹과리와 북, 장구를 두들겨대며 흥을 한껏 고조시키는 가운데 가(假) 상주 앞에서 쭈그려 앉아 묻는다.

  “아이고오, 상주니임. 얼마나 영광스러우십니꺄?”

  “에잇, 쩟…….”

  “아,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껴?”

  “그것을 말이라고 허냐, 멋이라고 허냐?”

  “오늘 저녁에 다시래기를 좀 하고 놀게 승낙 좀 해주십사아 허는데 어쩌시렵니꺄?”

  “잘만 하시게. 잘만 하믄 저기 제례청에 걸려 있는 당목천 다아 걷어다가 우리 다시래기꾼들 다아 옷 한 벌씩 해줌세. 또 잘만 허믄 닭죽도 끓여주고 헐튼게 잘만 허시게.”

  “자아, 어쩌. 다들 들었제?”

  “들었어. 우리들 다아 들었어.”

  “자아, 승낙도 받어내었으니, 이제 다시래기를 한 판 해봐야지 않겄소? 그리도 다시래기를 헐라믄 가상제 나부텀 굿을 헐랑가 못 헐랑가 한 번 히봐야 쓰겄는디, 주제에 장단 없이는 못 놀아.”

  장단이 덩더르르응~~ 소리꾼 목청을 가다듬듯 울려나온다.    

  

  만수 만수 만만수우

  이런 만수가 또 있느냐

  푹 쑤셨다 피나무

  배 뽁 나왔다 배나무

  방구 뽕뽕 뽕나무 

  한 다리 절었다 전나무

  왼갖 나무가 매화로구나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사~~     


  다리를 절름거리는 행색을 하고서 도굿대를 도깨비방망이 흔들어대듯이 흔들어댄다. 어기적어기적 춤을 추고 소리를 해가며 사람들과 더불어 한판 굿을 해가는 어름에 당달봉사 한 사람이 사당패 아낙을 따라 들어선다. 가상제 물러간 자리에서 ‘에헴’ '에헴' 빼짝 마른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석교리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은 거기서 거기, 다를 것 없이 세습무계 집안의 자손이다. 무속의 가업을 잇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뭍으로 나가 공부를 한다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성적이라는 것은 거기서 거기, 뾰족하지 않았다. 어느 한 해 명절을 맞아 집으로 온 사내놈이 열여덟의 나이에 결국은 당달봉사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유랑극단이고 연극이고 뭐고 하는 것들이 강 초시 어린 청춘을 날마다 칠십 넘은 노인으로 만들고 눈을 뜨고 있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봉사로 만들어버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사람들을 울리고 웃겨 왔다. 

  오늘 정읍네 소희의 호상 마당에 들어서도 여전히 칠십 넘은 노인의 행색으로 거지꼴 함뿍 배긴 걸음으로 뺑덕이네 궁둥이를 차며 들어선다. 봄 맞아 꽃물 함뿍 먹은 꾀꼬리빛 저고리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영산홍빛깔보다 고운 물 먹은 꽃분홍치마를 입은 뺑덕이네 모양이 오늘도 당달봉사 강 초시에게 물찬제비같이 예쁘다. 그냥 너부데데한 호박마냥 푹 퍼진 낯바닥에 연지 곤지는 찍고 낯바닥 곳곳에 기민지 주근깬지 알 수 없는 먹물을 잔뜩 묻히고 틀어 올린 머리에 옥빛 푸르게 돋아 오르는 비녀를 꽂은 모양새가 천하의 절색이라기엔 우스꽝스럽게 생겼다. 그런데도 소리가 듣는 사람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가 쨍하게 울리는 통이 무척이나 쾌활하고 구성지다. 그런 여인이 흥청흥청 어깨를 너울거리며 재청 마당으로 들어선다. 사람들이 너나없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깊어가는 밤이 자정을 넘어서 날이 바뀌었건만 마당 가득 모여서 상(喪)을 치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죽음은 이미 살아 돌아오는 길목에서 함께 웃고 즐기며 떠드는 굿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 왔소.”

  “아여, 마누라. 여가 어딘가?”

  “아, 그것도 모리고 따러왔소?”

  “아, 멋모르고 따러왔지.”

  까막까치 땍땍거리듯이 땍땍거리며 말을 받는 마누라 뺑덕이네에게 웃음으로 받아친다.

  “아, 여가 어디냐면요, 여가 다시래기 하는 상가 제청이요.”

  “그렁께 여가 다시래기 허는 상가 제청인디, 여가 정읍양반네 아짐 호상마당인가?”

  “야. 그렇구만이요.”

  “아, 그렇겄네.”

  “아야, 우리 만난 지가 오래 됐네. 우리 도굿대 춤 한 번 추세.”

  에헴 잔기침을 하고는 즐거운 목소리를 내어 곰방대 긴 장죽을 흔들어대며 춤을 청한다.

  “예. 그럽시다, 영감.”

  이내 뺑덕이네가 박수를 치고 춤이 시작된다. 하얀 도포자락 길게 늘여 입고 노란 술띠를 길게 늘였다. 검은 천조가리 누덕누덕 기워 입은 꼬락서니에 팍 눌려 짜부라진 갓의 테두리가 들쳐지며 우줄대는 것이 거지나 진배없지만 얼굴색만은 화색이 돈다. 

  감은 것처럼 가느스름한 눈두덩에 검은 회칠을 하여 당달봉사가 되고 두 미간 사이에는 주름이 깊이 박혔다. 콧망울을 사이에 두고 깊이 패인 팔자주름과 확연하게 새겨진 인중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지만 양쪽으로 곧게 뻗친 수염은 금방이라도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신선의 것처럼 물 위를 걸으며 물고기를 낚아챈 황새가 두 날개를 활짝 펼친 것처럼 멋스럽다. 건듯하면 죽은 곽 씨 부인 타령이요,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이 타령이나 하니 내가 어디 영감한티 정 붙이고 살겄소? 타박을 당하면서도 무엇이 좋은지 도굿대춤이나 추자며 뺑덕이네를 부추긴다. 그리고 두 내외가 손뼉을 치고 팔을 까딱거리며 춤을 춘다. 얼마나 짚고 다닌 것인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맺혀 있는 지팡이를 들어 까딱거리고 곰방대 긴 장죽을 까딱거리며 춤을 춘다. 현철하신 곽 씨 부인 앞 못 보는 지아비 하루 한 끼라도 거르지 않게 하려 남의 집 품앗이해서 얻어온 곡식 알맹이가 튀어 오르지 않게 손으로 씻어가며 찧던 도굿통(절구)의 아가리를 벗어나지 않는 춤이다. 장단에 맞추어 한쪽 발을 허리까지 들어 올리고 두 팔을 쭉 어 뻗어 올려 까딱거리며 추는 춤이 웃음을 자아낸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입 언저리가 벙싯거리고 어깨가 들썩거리며 웃음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운다. 찔끔찔끔 눈물을 훔치던 사람들도 어느새 벙싯거리며 웃고 있는 자신이 한심한지 고개를 수그리며 표정을 다스려보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두 사람의 품새와 우스꽝스러운 말소리에 맥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도 없는 정읍네 소희의 호상 마당을 비추는 별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지 멀찍이서 유난히도 반짝이며 밤을 밝힌다.      


  에라 요년 가시낙년아

  밥 차림시로 머리 긁지 말어라 

  이 떨어진다 지나 헤~~


  잘도 하네 에~ 헤에~

  잘도나 허어헌다

  우리 거사 사당이 잘도나 헌다


  뺑덕이네와 당달봉사 심 거사가 노래를 한다. 소리북 장단에 맞추어 마디마디 고개를 넘어가는 가락을 타고 굴곡진 세월을 노래한다. 밥 차리면서 머리 긁지 말라며 가시낙년을 어르는 심 거사의 노랫소리를 거들어 잘 도나 한다며 장단을 맞춘다. 천생연분 하늘이 내리신 아낙과 낭군의 소리가 흐드러지게 밤하늘에 퍼져나간다.      

  “영감, 어찌요?”

  “어따 자네는 어째 그리 물찬제비만치로 이삔가아?”

  “아이고오 영감도. 아니, 앞도 못 보는 영감이 그걸 어찌 안다고 그러요?”

  “해는 뜨건께 삘건 줄 알고 밤은 캉캉헌께 껌한줄 안디 아, 어찌 내가 자네를 모르겄는가아? 자네만 보먼 쩍쩍 들어붙고 자네 품으로 푹 들어가고 잪어. 그랑께 물찬제비 아니고 멋인가아?”

  심 거사가 치마폭을 풀썩 들어올리는 뺑덕이네 품으로 쏙 들어가려는 행신을 한다. 남사스럽고 얼굴 붉어질 것일 줄 아는지 앞도 못 보는 사람이 괜스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힌다.

  “아야, 마누라, 자네 긍께 산고달이 언젠가?”

  “아니 영감, 날마다 한 이불 덮고 잠시롱 그런 것도 모리요?”

  “이, 내가 건덕굴로 사네.”

  산고달을 묻는 심 거사에게 뺑덕이네가 손가락을 짚어보더니 열한 달하고도 반 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옥신각신하다가 새끼가 나왔다 치고 자장가를 불러본다고 말한다.  

   

  둥둥둥 강아지

  어허 둥둥 강아지

  두 ~ 두둥둥 어허 둥둥 강아지

  어서 어서 자라나

  애비 품으로 들어오니라

  어허허 ~ 둥둥 강아지

  꺼적 밑에서 생겨났느냐

  어허 둥둥 강아지

  내 새끼는 꽃밭에서 자

  남의 새끼는 개똥밭에서 잔다

  어허 둥둥 강아지     


  둥둥둥 강아지 

  두리 둥둥 강아지 

  물에 빠진 강아지가 

  물속에서 나오네

  밥 한 통을 다 먹는다

  어허 둥둥 가앙지

  둥둥둥둥 허둥둥 강아지야~      


  소싯적에 많이도 불러보았던 자장가 한 대목이다. 심 거사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솟아 나오는 장면이 슬프게도 노래가 되어 흘러나온다. 어미 잃은 심청이 어린 핏덩이가 배가 고파 앙 앙 울면 어찌해볼 도리 없는 밤이 질기게 길었었다. 아침이 다 되기도 전에 우물가 아낙네들 소리 들려오면 어린 자식 끌어안고 우물가로 나가 동냥젖을 얻어 먹이던 날들, 해질 무렵 젖을 배부르게 먹고 잘도 노는 딸아이를 재우면서 불러보던 노래들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게 부르던 노래들인가? 또 얼마나 흥이 나게 부르던 노래들인가. 참으로 기막히게 부르던 노래들을 지금은 딸아이마저 잃고 뺑덕이네와 들러붙어 살아내는 날들에 다시 한번 불러보는 것이다. 그 노래를 지금은 석교리 사람 강 초시가 부르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초상집 슬픈 마당에서 아기를 배고 출산일이 언제인가를 가늠해 보는 심 거사의 자장가 노래가 어허둥둥 강아지 되어 나온다. 누덕누덕 기운 옷차림이 무슨 상관이랴. 어서어서 자라나 애비 품으로 들어오너라 축원을 하는 심거사의 몸짓은 절절한 것이다. 목을 비틀어 졸여서 밀고 당기며 끌어내오는 바람이다. 지팡이와 곰방대 긴 장죽을 힘들여 밀고 힘들여 당기며 소리를 한껏 졸인다. 맺고 푸는 소리들이 늘그막에 자식타령을 하는 심 거사의 더할 것 없는 소망을 보타지게 만든다.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옹골지게 기다려지는 심정을 안타까이 우려낸다. 뺑덕이네의 도굿대춤과 어우러지는 추임새를 들어가며 절로 흥이 나는 모습으로 뱃속의 자식을 나왔다 치고 불러 어르는 것이다. 소멸의 마당에서 다시 나는 생산을 비는 언어로 빚어내는 노래 흥물결 속에서 자신의 새끼는 꽃밭에서 자고 남의 집 새끼는 개똥밭에서 잔다고 을러댄다. 위협이라는 것 하나 없이 을러대는 소리가 신명 나게 어우러진다. 물에 빠진 강아지가 물속에서 나오더니 밥 한 통을 다 먹는다고 좋아하는 늙은이의 어우러짐이 촐싹거리며 춤을 추는 뺑덕이네의 “하이고오~~ 우리 영감 잘한다!” 는 추임에 한껏 고무되어 나오지도 않은 자식 나왔다고 치고 골격까지 달아보고야 마는 심사로 한쪽에 쭈그려 앉는다. 그리고는 다 낡아빠진 지팡이를 매만지며   

  

  요거는 두상, 와따 그놈 두상이 꼭 메주대가리처럼 생겼다.

  요것은 눈, 아따 요놈 눈봉께 꼭 동지섣달 얼어죽은 말 눈 같다

  요것은 코, 아따 코도 튼실하게 좋게 생겼다

  요것은 입, 와따 이놈 입도 쫙 찣어진 것 봉께 크먼 술 잘 퍼먹게 생겼는걸

  요것은 앞가슴, 와따 이놈 앞가슴 쩍 벌어징께 크먼 심깨나 쓰겄다

  요것은 배꼽, 와따 배꼽도 꼭 요강꼭지만 허세. 무지허니 크다

  요놈 내려갈수록 연평도 조기잡이 배 돛대마냥 딱 걸려야지 흘러내려가불먼 내 신세는 낭패다

  에라, 베리부렀다아

  영감이고 땡감이고 어마 허망할세. 배꼽 욱으로는 나 탁이고 배꼽 아래로는 자네를 탁이부렀네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아 허망하다고 말하며 웃는다. 새로이 태어날 생명에 대한 간절한 심정이 짙게 배어 나온다. 그러면서도 강 초시의 행동과 말들이 지켜보는 사람들을 웃음 속으로 몰아넣어버린다. 누구라서 태어날 자식에 대한 바람이 없으랴. 그 간절한 기대와 설렘을 여지없이 뭉개버린다. 옳지, 옳지, 그려, 그려, 오냐, 오냐, 가자 가자 가자~ 골격을 달아가는 동안 두상은 메주대가리 같고 눈은 동지섣달에 얼어 죽은 말 눈 같다고 말한다. 눈 코 입 번듯한 모양새 갖추고 건장하고 늘씬한 모양으로 태어나주기를 바라는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램을 여지없이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림으로써 상두꾼들과 상주들까지를 웃게 만들어버린다. 배꼽이 요강꼭지만 하다고 말하며 옹골져하는 너스레가 초상집 마당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다. 광대, 무어라 표현해 내기 어려운 이름 광대, 강 초시가 퉁퉁 부은 눈으로 쾡하게 앉아 울던 가희를 웃게 만든다. 

  한쪽에서 낙지를 탕탕 쳐대고 닭을 푹 고와서 대추와 마늘 물러지게 만드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강 초시의 재담과 익살에 한바탕 웃어대며 삐져나온 눈물을 훔쳐낸다. 밤은 그렇게 정읍네 소희의 호상마당에서 무르익어간다.      


*대문사진: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 고 강준섭 님의 진도다시래기(珍島다시래기) 공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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