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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Apr 05. 2023

11화. 생명이 움트는 밤 맞잡은 새벽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열한 달 하고도 바안 달! 이나 되었다는 아기를 두고 골격을 달아보는 놀이가 끝날 무렵 자시는 깊어 축시를 엿보고 있다. 사람들의 흥물결도 잠시 쉬어가는 마당에는 닭죽이 한 솥 나오고 있다. 교자상 서너 개를 맞붙여 놓은 곳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탕탕 쳐서 참기름 흠씬 둘러놓은 낙지에 깨소금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푹푹 끓어 온 동네 천지사방으로 냄새를 고르게 퍼 나르는 닭죽에 들어붓고는 복남이네 집에서 볏짚에 엮어 가져온 달걀을 톡 깨뜨려 넣어 끓여 냈다. 겨우내 묵은 배추김치가 접시마다에 듬뿍듬뿍 담겨 있고, 삭을 대로 삭은 홍어가 접시마다에 그득히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겨우내 꽁꽁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어느 날은 죽고 어느 날은 살아서 대쳐 지고 무쳐지던 봄동과 시금치가 하나는 겉절이로 하나는 나물로 접시에 나붓이 들앉아 있다. 옥주골 넓은 밭이랑마다에 촘촘하게 심겨진 푸른 대파들이 어슷어슷 썰리고 퉁퉁하게 잘려서 버무려지고 구워져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양재기 대접마다에 콸콸 쏟아져 흐르는 막걸리와 소주들이 사람들의 흥을 서럽게 만들고, 사람들의 슬픔을 또 흥겨움으로 이끌어간다.


  천둥소리를 동반했었다. 콰과광 쾅쾅 번갯불 내리치는 요란함도 있었다. 음력 일월이 끝나가는 곳에 들어 비를 부르는 우수(雨水)가 지나고 초여드레 지나간 달에 살이 올라 빠진 구석 없이 퉁퉁해진 날에 경칩이 들었다. 바닥을 핥으며 지나가는 바람의 위세는 대단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리는 눈은 사람이 딛고 가는 땅에 착 달라붙어 살을 찌웠다. 맨드름하게 찌우고 우락부락하게 찌우며 칼날처럼 날카롭게 자신의 몸을 갈았다. 바드득 바드득 한길바닥에 달라붙어 사람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위세를 부렸다.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휘잉휘잉 날아서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만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그 위세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그 계절 혹독한 추위에 장군의 칭호를 붙여 동장군이라 일컬으며 몸을 한껏 움츠렸다. 그리고는 문 밖에 나오는 것을 극히 꺼려 아랫목 구들에 누워 한 계절을 보낼 요량을 했다.

  그러나 혹독한 시련의 계절에게도 시련이 닥쳐 봄을 불러오는 비가 내리고 말았다. 요란한 천둥과 번개를 내리치며 비를 내렸다. 목우봄비 곡우봄비, 그것은 겨울의 끝자락에 내리며 땅 속 깊숙한 곳에 깃들어 겨우내 잠을 자던 짐승들을 호통 쳐 깨웠다. 어서 일어나라고 어서 잠자리를 털고 나와 기지개를 켜라고 호통을 쳤다. 경칩은 이미 따스한 날이다. 아직 춘분까지는 보름이 남아 있고, 곡우까지는 또 청명 너머 보름이니 한 달이 족히 남아 있지만, 하늘이 땅에 딛고 살아가는 구순한 사람들을 위해 내린 온화한 미소, 춘우(春雨) 봄비는 이미 혹한의 무리들에게 점령당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땅에 박힌 날카로운 비수(匕首) 얼음덩이들을 쓸어가 버린 지 오래되었다. 보름씩이나 지났다. 그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촐싹 맞은 개구리 놈이든 음흉하게 똬리를 틀고 앉은 배암 놈들이건 모두 일어나 봄을 맞으라고 이불을 걷어치워 버린다. 꽁꽁 얼어 있던 흙살들이 몸을 풀어 쩍쩍 갈라지니 그것들을 이불마냥 덮고 잠들어 있던 놈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기지개를 켤밖에 별 가 없는 것이다.

  바늘이 자시(子時)를 지나고 축시(丑時)에 들어서면 세상은 암흑이다. 밤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밤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말라고 켜놓은 등대 불빛만이 하늘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별빛마냥 깜빡깜빡 세상을 비추어도 도대체 물러날 기색 없이 떡 버티고 들앉아 있는 어둠은 분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먹빛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묽기가 달라지면서 흑이 백을 향해가는 빛의 속성마저도 축시의 어둠은 농담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어둠의 시간, 칠흑의 순간들에는 찰나가 없다. 섬광처럼 지나가는 촉수의 찰나도 어둠에 묻혀 가늠이 되지 않으니 그것은 없는 것이다. 하여 사람들을 잠재운 시간 축시에는 귀신들이 활동을 한다. 사람들이 사는 곳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사람들이 만지던 물건들에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도 모를 온기를 더듬느라 왕성하게 움직이며 눈을 둥싯거린다.

  이토록 어둠의 시간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떠들썩하게 음식을 먹고 사물을 두들긴다. 경칩의 아침을 맞아 영롱하게 빛나는 가마 상여를 타고 도영과 천문이의 추억이 서린 세방의 바다를 향해 떠나갈 큰 어른 소희의 영정을 앞에 두고 모여 앉아 닭죽을 먹는다. 석교리 영감 강 초시도 아낙 사당과 함께 앉아 닭죽을 먹고 술을 마신다. 지내온 정으로야 석별이라는 말이 안타깝고 그지없이 슬프나 또 씻긴 몸과 영혼이 떠나는 길이 적적하지 않도록 밤새 놀아주는 업살이 설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으슬으슬 한기(寒氣)가 드는 몸을 다스리려면 먹어둘 수밖에 없으리라.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한 마당에 도사리고 있으니 뜨듯한 국물에 쌉싸름하니 목에 감기는 한 잔의 술에 데우는 마음엔 슬픔이 가득이라 또 한 판 놀아주는 것이 음덕이리니,   

  

  “자아, 다들 맛있게 드셨습껴? 걍 따땃허고 보드란 것이 목 안으로 넘어가니, 거어 콱 맥혀 있던 속이 다아 풀리고, 거기다가 술까지 넉넉허게 마셔놓으니, 아니 이놈 가상자도 사지가 쫘악 풀려 노글노글하니 한 판 흐드러지게 놀지 않고는 그냥은 못 가겄구만요.”

  허허거리며 앞으로 나온 가상제가 도굿대를 휘둘러가며 사설을 늘어놓는다.

  “자아, 이제 다시래기를 참말로 잘 혀서 이 고을 저 고을 명성이 자자헌 영감 강 초시를 모실 것인디, 만약에 박수를 많이 치는 사람은 복을 그냥 많이 받을 것이지마는, 뭐가 그리 잘났다고오 별쭝나게 박수도 안치고 허는 사람은 복을 받을라믄 받고 말라믄 마시기요.”

  미투리 얹은머리를 까닥거리고 도굿대를 어깨 위로 올려 을러대던 가상제가 들어가고 사당 뒤꽁무니에 달려 나온다.

  언제 갈아입었는가. 아낙네 사당이 하얀 저고리에 하얀 치마를 입고서 심 거사 강 초시 지팡이를 붙잡고 걸어 들어온다. 꽹과리 소리가 마당 가득 울려 퍼지고 쇄납 소리가 흥겹게 울려 나오는데 심 거사 강 초시는 누덕누덕 기운 도포에 술띠는 길게 늘이고 첨벙첨벙 걸어온다. 그리고는 도굿대춤을 한 판 추는 데로 가상제가 들어와 푹푹 찔러댄다.

  “어허이, 뭣이 이렇게 툭툭 찔렀쌓는고?”

  “거사님, 거사님, 저어 건넛마을 이 생원댁에서 개가 새끼 날라고 헌다고 정문(경문)하러 오시라는디, 어찔라요, 가실라요오 안 가실라요?”

  “뭣이, 개가 새끼 난다고 나더러 정문하러 오라고오?”

  눈을 있는 대로 까막거리고 팔자수염을 움찔움찔해 가며 말을 되묻는다.

  “다녀오시오. 다녀오셔. 많이 벌어갖고 오시기요.”

  가상제가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며 부추긴다.

  “차암, 벌어먹는 팔자도 더럽세쎄. 아, 사람도 아니고 개 새끼 난다고 나더러 정문하러 오라고오야?”

  오지게 기가 막히는지 말도 안 나오는 행신을 한다.

  “뭐 그라고 저라고 헐 것 없이 가셔서 많이 벌어갖고 오시기요.”

  “으이, 산고달도 되고 했응께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가상제가 돌아들어가는 사이 언제 들었는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뺑덕이네가 북과 장구를 들고 들어온다.

  “어이, 마누라아!”

  사당이 미처 다 부르기도 전에 꽹과리와 장구를 들고 와서는 심 거사에게 안긴다.

  “거참, 동작도 빠르세. 마누라, 저 건넛마을 이 생원 댁에서 개 새끼 난다고 정문하러 오란께 가긴 가야 쓰겄는디, 내가 요새 잠 껄쩍찌근헌 것이 있네에.”

  “영감, 뭣이 또 그렇게 껄쩍찌근 허다고 히 싸 요?”

  말하는 사이 중이 와서 사당을 찝쩍거린다. 그러자 사당이 조아라 손장난을 하며 웃어댄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심 거사는 알 리 없는데

  “뭣이 꺼쩍지근하냐고? 요새 뒷골 중놈이 들락날락하는 것 같은디이, 워매, 뭐매. 그 중 놈 내 얘기 좀 들어보게. 동네 지사 날짜는 다 알고 댕기고, 동네 혼자 사는 과부 냄새는 슬슬 다 맡고 댕기고오, 쩌어 썩은 대추나무에다가 고쟁이 하나만 걸쳐 놓아도 침 질질 흘리고 환장허고 댕기는는 중놈이 있네.”

  “으응.”

  “옛 말에 십벌지목이라는 말이 있네.”

  “시뻘주먹?”

  “으이.”

  “시뻘주먹이 시뻘주먹이지 멋이다요?”

  “그것이 뭔 말인고 허니, 열 번을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아 이 말이여.”

  “아이고오, 여보 영감.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나 한티는 영감밲이 없소. 그렁게 걱정 붙들어매고오. 어서 가서 하룻밤 푸욱 주무시고 돈이나 잠 많이 벌어가지고 오~ 시~ 요.”

  “야아, 가긴 가겄으나 나 가기 전에 그리도 개 잘 팔라고 개타령이나 한 번 불러보고 가야 쓰겄네에.”

  “그러시오.”     


   개 사가게에

   개 사가게에

   돈 갖고 개 사가게

   이 개개 개개야

   저 개개 개개야~~

   이 개 이 개 애~~     


  짜부라진 갓을 출렁거리며 지팡이를 들어 올려가면서 개타령을 부르던 심 거사의 타령이 자꾸 같은 곳에서 맴을 돈다. 복숭아뼈에 닿을 만큼 기다랗게 매단 북이 덜렁덜렁 다리 사이로 엉겨 들고 한쪽 손에 들고 있던 꽹과리가 곰방대 긴 장죽과 함께 오르내리며 덜렁거린다. 그러는 사이 함께 개타령을 부르던 사당의 소리가 잦아드는 성싶은지 지팡이로 땅을 굴려가며 사당을 찾는다. 맷방석에 둘러앉아 굿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앞을 못 보는 심 거사의 사정이 딱해 보이는지 사당의 못된 행실을 일러주며 타박을 한다. 바람이 건듯건듯 불어 차양에 걸려 있는 백열등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옷깃을 파고들어 살갗을 스쳐가는 동안에도 축시 어두운 밤에 사람들은 흥에 겨워 웃어가며 사당의 엉뚱한 짓을 심 거사에게 일러바친다.

  십벌지목을 시뻘 주먹으로 받으며 자신에게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당신밖에 없다고 다짐을 놓던 아낙이 동네방네 여인네들을 다 훔쳐 놀던 중놈과 어우러져 한판 즐거움을 엮어낸다. 잘 깎아놓은 밤톨 같은 얼굴이 곱상하다. 허우대는 크고 걸지게 생겨먹은 놈이 머리에는 수숫대를 엮어 만든 송낙을 쓰고 송낙 꼭지머리에는 장삼빛깔 붉은 천으로 댕기 묶듯 묶어 놓았다. 그런 놈이 잘 다려 풀 먹인 가사를 입고 바랑을 멘 채로 심 거사 등 뒤에서 사당과 껴안고 둥실 거리며 춤을 춘다. 얼마나 깨소금 쏟아지게 즐겁고 흐뭇한지 그 웃는 얼굴에서 번지르르 기름기가 좔좔 쏟아지듯 흐른다. 목에 건 백팔염주는 단 한 번도 굴려보지 않은 것처럼 매끈둥하게 빛이 나는데 흥은 흥대로 올라 축시 검은 밤이 무색하게 즐겁다.

  “어야, 마누라아!”

  세상이 떠내려갈 듯 호령이 날 선 부름 소리가 동네를 떠들썩하게 울려 퍼진다.

  “예에에~~예!”

  혼비백산하여 둥그러지고 자빠질 듯이 거꾸러지며 달려와 선다.

  “자네 어디 갔다 오는가?”

  “어디 갔다 왔냐고? 오줌 누고 왔어.”

  지팡이를 부여잡고 엉거주춤 서서 묻는 심 거사에게 자꾸만 처져 내리는 배를 추어올리며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한다. 구경하는 호상꾼 아짐 하나가 어믄짓 하다가 왔다고 일러주지만

  “오줌 누고 왔다고? 아까 물 무지하니 퍼먹대.”

  “밑도 허한께 오줌도 자주 나오요.”

  “어디 가지 말고 노래 할 때 꼭 옆에 서 있게에. 어디 가지 말어. 으응?”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나 철석같은 다짐도 그때뿐, 사당은 또다시 중과 어우러져 색이 짙은 놀음을 한다. 커다란 손으로 번지르르한 얼굴을 매만지고 부둥켜안고 다리를 걸고 헤헤 실실 춤을 추면서 판이 걸게 밤놀음을 한다. 어깨에 짊어졌던 북을 내려 땅에 부리고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아낙을 찾아보지만 멀지도 않은 곳 세 걸음도 안 되는 곳에서 얼싸절싸 어우러져 노는 사당은 온데간데없다. 당달봉사 심 거사에게만 온데간데없는 아낙을 찾아 목이 쉬도록 불러대던 심 거사의 지팡이가 툭 멈춘다. 신발 하나가 걸린 것이다. 흘러가는 개울물에 떠내려가던 검불들이 걸린 것처럼 걸려드는 신발을 붙잡고 매만지는 심 거사의 모양이 우습기도 하지만 처량하다.      


   서방님 정문하러 편안히 가시오

   오냐 나는 간다 너는 잘 있거라

   이제나 가시면 어느 시절에 올라요

   언제나 올란 줄 나는 모르겄네

   아이고 답답 아이고 답답 설운 시상

   차마 서러워 못살겄네

   요놈의 시상을 어찌어찌 살꼬오  

   

  노래나 부르지 않았으면 밉지나 않지. 철석같은 약속의 말을 노래해 놓고 정문하러 간 자리에 물기도 마르지 않았건만 ‘어서 가서 영원히 오지 말라’ 고 손을 까분다. 밉살스런 말과 행동과 다짐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웃음을 남기면서도 불을 지른다. 어느 만큼 타다가 스르르 꺼질망정 초상집 마당에서 사람들 가슴에 타오른 불길이 심 거사의 더듬더듬 더듬어가는 발걸음에 꽹과리 쇄납 합주 흥건하게 울려 배웅한다.


   노승노승 들어를 오소

   노승노승 들어를 오소 ~~

   담밖에 노승 들어를 오소     


  손을 눈썹 위에 올리고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이 주춤주춤 들어온다. 그리고는 헤헤 웃으며 손을 맞잡고 예쁘다고 매만지며 좋아라 웃음을 웃는다. 다시래기 하는 사람들 말로 지랄 염병을 한다. 어느 구석에선가는 귀신들은 다 죽었능갑다고, 저런 놈들 안 잡어가고 뭐 하고 댕기는 줄 모르겠다고 입을 오물오물해 가며 욕을 한 동이나 되게 퍼붓는다. 안 그래도 축시라 귀신들이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이라 아무것도 모른 채로 욕을 곱씹어댄다.


  경칩을 맞는 밤이 깊어간다. 축시가 아무리 깊은 밤이라 하여도 이 날은 보름이라, 시나브로 빛을 잃어간 그믐달이 조금씩 차올라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는 날 밤이라 세상은 밝다. 구석지에 들어앉아 젊은 시절 다른 여인의 품에서 놀아나던 서방이 늘그막에야 집이라고 돌아와 조강지처를 찾던 그 서러운 밤을 잊지 못한 여인의 설움이 귀신을 불렀던가. 하지만 귀신은 다가올 수 없었다.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기도 하겠지만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부음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모여 앉아 다시래기 굿판을 벌이는 자리라 더듬을 수가 없는 것이다.

  큰 어른 소희 가시는 길에 다시래기 없어 갈 수 있겠는가. 강 거사와 그의 아낙 사당이 벌이는 굿 한 판이 없어서 그 먼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춘우 빈 가지 환하게 비쳐 들어오는 창호 문살 밖에서 속살거리는 날들을 세어가며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 도영의 손에 이끌려가는 길, 그 길에 축시는 머뭇거리다가 인시를 맞는다. 극렬한 어둠은 가고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이 오는 것이다. 비로소 사람이 새 숨을 쉬는 시각, 그 생명이 움트는 시각에 옥주골 지산면 소포리 소개나루터 사람들 생명을 맞잡는다.   

  

  중놈을 찾아 마당을 한 바퀴 휘돌던 심 거사가 오다가다 꼿꼿이 서서 피 빼짝 흘리다가 오그라져 뒤질 여편네라고 욕을 해대는 것에 한편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다 함께 중놈을 찾아 휘돈다. 그 틈에 가상제는 도굿대를 세워놓고는 심 거사 귀에 중놈 신발이라고 고자질을 한다. 얼굴이 벌게지며 사당을 잡아 족치려거니 중놈을 잡아 족치려거니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틈에 사당이 나동그라진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여보 영감, 배 아퍼 죽겄소. 그렁게 아니고 내가 산기가 있능갑소.”

  “뭣이여? 산기가 있어? 긍께 애기가 나올라능 거여?”

  “예. 그렁가빈게 애기가 잘 나오게 정문을 좀 해주시오.”

  “그리여. 그람 내가 독경을 히주어야지.”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드러누워 아이고오를 외친다.


   삼십삼천 도솔천

   홀애비 죽은 넋이는 과부방에다 몰아넣고

   과부 죽은 넋이는  홀애비방에다 몰아넣어라

   처녀 죽은 넋이는 총각방에다 몰아넣고

   총각 죽은 넋이는 처녀방에다 몰아넣어라

   동지섣달 남의 아내 ㅇㅇㅇㅇ

   붕알이 얼어죽은 귀신

   너도 먹고 물러가라

   도 먹고 물러가거라

   무당 죽은 넋이는 방울통에다 몰아넣고

   기생 죽은 넋이는 장구통에다 몰아넣어라

   동에 동방 청제지신 너도 먹고 물러가고

   남에 남방 적제지신 너도 먹고 물러가고

   서에 서방 백제지신 너도 먹고 물러가고

   북에 북방 흑제지신 너도 먹고 물러가라

   정성이 부족하야 호박떡이 설었구나

   명태대가리 꼼짝마라 날만 새면 내 것이다


  세상없는 멋쟁이 남자라고 말들을 한다. 광이 나게 닦아놓은  흰 구두를 신고 흰 양복 빼입고 어디고 가면 동네 가시나들 몰려들어 줄을 섰노라고, 아낙을 시도 때도 없이 울렸더라고 말을 듣는 사내놈이 당달봉사 노릇으로 곰방대 긴 장죽으로 바닥을 두들겨가며 노래를 부른다. 팔을 들어 올렸다 내리고 가슴을 접어가며 애가 잦게 불러댄다. 한편으로는 웃어가면서 호박떡이 설었다고 부르며 웃고 명태대가리는 꼼짝 마라고 자기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웃는다. 모든 것이 하룻밤 놀음이라 절절할 것도 애절할 것도 없지만 사람들을 웃기고 부모 잃은 자식들을 위로하고 웃게 해 주려는 심사로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리고는 배가 아프다고 드러누워 아이고 소리를 목청껏 외치는 사당을 위해 ‘에이고, 에이고’ 힘은 자기가 쓸 테니 아기만 낳으라고 말하며 꽁꽁 힘을 쓴다. 그런다고 아기가 나오나, 산고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닐진대 ‘그냥 팍 싸부러라아.’ 고함을 치고 ‘그냥 팍 부서부러라.’ 외치면서 무탈하게 나오기를 고대한다. 중놈이 와서 배를 주무르고 가상제가 배를 주무르면서 그 짬에도 놀음을 한다. 결국 온갖 방정이 초상집 마당을 떠들썩하게 울릴 때 드디어 아기가 나왔다고 소리를 지른다. 중놈의 손에 들려 나온 아기가 다시래기의 마지막 절정을 뒤흔든다.

  겨우내 깊은 땅 속에 들어가 잠을 자던 짐승들도 덮고 자던 흙을 털고 나오는 경칩을 위해 우수에는 천둥이 치고 번개가 사람들 사는 땅 위를 헤집고 가며 목우봄비 곡우봄비를 내렸던 것처럼 큰 어른 소희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옥주골 소포나루 사람들은 축시가 인시를 맞는 새벽에 새 생명을 태어나게 했다. 백동비녀 꽂은 소희 밤이 깊도록 새벽이 다 오도록 자들의 몸과 영혼을 씻어 올려주며 환생의 춤을 추었던 것처럼 옥주골 사람들 울며 웃으며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환생의 염원을 담아냈다. 자시가 축시를 건너 인시로 오는 길목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울음을 목놓아 불러낸 것이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에~~ 아리랑 음 음 음 아라리가 났네~~’를 부르며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 구순한 사람들의 얼굴 가득 웃음꽃은 피어나고 말았다.  


*대문사진: Daum 이미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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