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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Apr 07. 2023

12화. 까치 한 마리 짙게 우는 아침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소리는 멈추었다. 장구장단에 대금이 어우러지고, 해금이 어우러져 흥을 올린다. 빠른 가락이 아쟁의 활을 타고 흐르며 강의 물살을 조율해 간다. 두툼하게 묶인 지전다발이 도영의 몸짓에 따라 강물을 굽이굽이 거슬러가고 비늘을 돋우며 슬픔을 달래는 통한의 골짜기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고 씻어낸다. 굿판을 다스리며 신들을 맞아들이던 소희의 격정의 순간들처럼 도영의 지전 다발이 위로 돌고 아래로 돌며 고개를 넘어간다. ‘어너 어어허 넘차 어이가리 넘자 너화넘~’ 그리고 길을 찾는다. 양 어깨에 지전다발 두툼하게 올려놓고 산신에게 붙잡히지 않고 용왕에게 붙잡히지 않을 길을 찾아 한 마리 거대한 참매처럼 매서운 눈길로 사방을 살펴 인도해 간다. 그러나, 가는 길이라고 어찌 미련이 없겠는가. 이따금씩 멈추어 뒤돌아본다. ‘그래, 그랬었지…….’ 고개를 끄덕이고, ‘그래, 그랬었구나……!’ 뒤늦게 깨닫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 미련의 발걸음이 두고 온 사람들의 모습을 굽어본다.


  이별은 누구에게라도 슬픈 것. 그래서 웃으며 따라가는 사람들……. 흰옷 입은 여인들, 그들 모두가 믿는 것은 환생이지만 환생이 없다 하여 기어코 서럽다 하겠는가. 한 많은 세상 멋모르고 태어나서 아픈 이별 속에서도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춤을 추었던 사람의 마당으로 찾아왔던 동박새 겨울사랑 봄으로 지던 날들, 겨울 죽인 경이로운 봄날의 하얗던 밤 추었던 춤이 그림자 서생의 부채 사북의 자리에 앉는다.


  바닥을 치고 앉은 부채가 높이 한 곳에 올라 점을 찍는다. 옛일을 회상이라도 하려는가.

  상연지 꽃 탐스럽게 핀 계절 피향정 언덕에 올라 달 떠오는 밤, 추녀 끝에 눈을 모은다. 살포시 내려오던 부채 활짝 피어 서생의 무릎을 돌아 어깨 위로 솟고, 서생의 눈빛은 다리 괴고 앉은 언덕 작은 꽃을 본다. 이름이 없어 풀꽃이라 해도 향기만은 그윽한 여린 송이를 말없이 바라본다. 연당 향기 품은 여운 그대로 부챗살 활짝 펴 들고 달빛에 닿는 바람으로 일렁인다. 가여운 사랑, 혼백으로 찾아오면 설레는 웃음 활짝 피우며 안길 듯 달려오다 살짝 멈춰 뒤돌아서서며 머뭇거리던 사람, 그 사람을 안고 놀던 밤들은 겅중겅중 느릿느릿 학의 걸음으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연당 향기에 취해 이름이 없어서 향기 그윽한 여린 송이에 취해 지금지금 걷고 사뿐사뿐 걸으며 달을 두고 춤을 추었다. 그것이 멀지 않은 날들의 일인 것 같지만 그것은 아주 먼 소싯적의 일이 되어버리고…….

  하얀 저고리와 치마 그 빛깔이 서럽고 서러워서 걸음을 떼다가 멈추어 뒤로 물리고 살금살금 다가서다가 곧바로 크게 걸음 떼어 뒤로 물러서던 밤들……. 그것은 비밀이어야 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귀신의 시샘이 두 연인의 밤을 엿보았는가.

  어슷어슷 걸음을 걸으며 풀쩍 뛰어 부채를 펴 들고 한껏 멋을 부리던 밤, 찡긋 웃으며 사랑을 속삭이던 것이 누구의 눈에 들어가고 귀에 들어갔던가.

  덕스러운 말을 잊은 속삭임들…….

  무섭게 지켜내던 밤들…….

  강한 폐습의 밤들…….

  그 밤들 사이에서 피향정 언덕에 올라 두둥실 솟아 내려다보는 달빛을 보며 결단 지어보려 했다.

  “나의 이 사랑을, 이름이 없어서 향기로만 피어나는 여린 송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묻고 또 물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 무엇 한 가지도 주어볼 수 없는 나약한 남성. 사라진 남성, 숨 막히는 시간들 속에서 조여 오는 강인한 의지들…….

  훨훨 날아서 어디로든 도망을 칠 수밖에……. 허허로운 들판을 날고, 높이 솟은 봉우리 그 깊은 골짜기를 날고, 성난 파도가 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바다를 건너서 장구소리 흐드러지게 휘갈기는 놈 꿈속으로 들어가 내려놓았다. 떨어지지 않으려 울며불며 발버둥 치는 나의 여린 풀꽃을 내려놓았다.

  홍화물 곱게 물들인 도포자락을 들추고 하얀 명주실로 짜 올린 바지와 저고리를 입은 사내놈이 검은빛 오련하게 돋아 오르는 갓을 내리누르고 어금어금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서 한 마리 거대한 새가 되어 날아가고 말았다.


  그날을 잊지 않고 찾아온 옛사랑 도영, 소희는 마루 끝에 앉아 신발을 내려다본다. 천문이가 꿈속에서 보았던 신발이다. 아무리 찾아도 끝내 찾을 수 없었던 짝 잃은 붉은 꽃신, 그것을 도영이 가지고 와 댓돌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소희의 작고 조붓한 발을 신발에 넣어주고는 매만진다. 고개를 수그린 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소희와 더불어 살아오던 사람들이 수런거린다.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을 아는 것이다. 상두꾼들이 소희 누워 잠든 방으로 들어간다. 기수와 희수가 망연히 서서 ‘아이고오—아이고오--’ 곡소리조차 잊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곳에서 상두꾼들이 소희 잠든 관을 들어 올린다. 오동나무로 만든 관이 들썩 움직인다. 망연자실 서 있던 가희가 관을 붙잡고 힘을 주어 당긴다. 엉 엉 소리 내어 울면서 자꾸 잡아당긴다. 상두꾼들이 잠시 멈춘다. 관을 내려놓는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는 뜻일 게다. 가희가 관을 붙잡고 울음을 운다. “우리 엄마 어떻게 하느냐”라고 관을 쓸며 울음을 운다. “엄마! 엄마! - -” 퉁퉁 부어 발갛게 물든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 상복 깃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기수와 희수가 꺾 꺽 소리 내어 울고 며느리도 울고 사위도 황망함 속에서 눈물을 닦는다.

  이윽고 상두꾼들이 관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곽머리가 문지방을 나서자 엎어져 있는 바가지를 힘껏 내리친다. 이내 쩍 소리가 나며 바가지가 와지끈 부서진다. 이제 이승과의 인연을 끊는 것이다. 두고 가는 정의 끈을 자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마당에서 웅성거리면서 길을 튼다. 이제 준비를 마친 상여에 올라타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모든 것이 허망하게 흘러가고 있다. 천수도 종수도 나와 있는 마당에서 꺼이꺼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영과 함께 서서 사람들의 하는 양을 바라보는 소희가 천수와 종수를 바라며 눈물을 짓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궂은 곳이든 험한 곳이든 함께 다닌 식솔들이다. 아쟁소리 비틀어 올리며 심금을 울릴 때 뿔피리소리 애잔하게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애간장을 녹일 때 그 소리에 맞추어 얼마나 많은 망자들을 씻겨 보냈던가. 얼마나 허리가 휘게 춤을 추며 눈물을 흘렸던가.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다 지나간 그 무엇이 되고 말았다. 이 세상 마치고 돌아가서 버리덕이 공주님의 아드님들 문전에 들어 지나온 삶을 돌이켜 마주 보았을 때 행여 부족함은 없을까, 행여 두고 온 죄는 없을까. 두려움이 앞서지만 차마……. 내가 쌓았을 공덕은, 내가 쌓아 올렸을 복덕은 차마,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마지막 배웅을 해주는 시숙부들에게 그 식솔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서글픔이 밀려들어온다. 다만, 자신보다 더 많이 늙고 병들고 꼬불거리는 저들이 종천하는 날 마중 나와 반갑게 맞아줄 수 있다면, 그런 복이나마 누릴 수 있다면 적잖은 호사련만……. 차마, 더는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몸을 맡긴다.

  상두꾼들이 관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서로 조심조심하라고 일러가며 운구한다. 관이 상여틀 한가운데 대체 위에 놓이도록 올린다. 노를 젓는 사공의 뱃노래 가락을 타며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갈 듯한 배의 형상을 한 틀이다. 조심스러운 손길들이 이내 이층으로 된 상여 본체를 관 위로 덮는다. 그리고는 생대나무 네 개를 앞 뒤로 꽂아 꽃대를 세운다. 양팔을 하늘 향해 벌린 것처럼 질러 세운다. 그 꽃대 위에 담배꽃을 꽂고는 지전다발을 흘러내리게 꽂는다. 그리고는 꽃대 네 개의 끝에 하얀 천을 묶어 상여 위를 덮는다. 어둡고 답답하다. 호사스럽기 이를 데 없는 상여가 편안하지만은 않다. 용이며 닭이며 관세음보살이며 팔선녀까지 꼭두를 끼우고 세워 누가 보더라도 빠진 데 없이 아름다운 형상이건만, 듬직한 장정들의 어깨 위에 올라 세방으로 갈 것이지만 어쩐지 멀미가 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상여를 들기 위한 준비가 끝났나? 앞소리꾼이 어- 어- 어 소리를 지른다. 늘 보아왔던 것처럼 상두꾼들이 상여를 들어 올리기 위한 소리인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멀미가 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든다. 뒤를 돌아다보고 싶다. 생각 같아서 벌떡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사람들은 왜 사지를 꽁꽁 묶고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들었더란 말인가. 참으로 미련스럽게 꽝꽝 묶어놓았다. 도대체 옴짝달싹할 수 없이 만들어 놓았다. 물이라도 있으면 마시고 싶은데, 속이 답답한데, 어디로 간 것인가?

  “어디 있소? 어디 있소?”

  “…….”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란 말이요.”

  날 선 목소리로 불러보건만 어디로 간 것인지 대답이 없다.


  “어, 동만이, 순서를 정히야지. 얼릉얼릉 호상꾼들 줄서게 하고…….”

  “이, 알겄네. 우선 질베부터 틀에 묶어야는디, 묶었능가?”

  “다 묶었구만요.”

  “자아, 아짐들 서둘러 줄 서시오.”

  “글고 조기가 맨 앞에 서야제에. 그 뒤로 명정 서고 공포가 서야제에. 그 뒤로 만장들 서고 운아삽손은 어디로 간거여?”

  “아야, 삽손 빨리 빨리 안서냐?”

  서두르는 소리들이 퍼지며 발걸음들이 뛰느라 걷느라 바쁘다. 상두꾼들이 상여를 들고 발을 맞추며 움직이자 호상꾼 아낙들이 길게 늘어뜨린 하얀 천을 붙잡고 서서 앞소리꾼을 향해 선다. 그러는 사이 호상계장이 질서를 잡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상여틀에 묶은 질베가 물을 가르듯 넓게 선 맨 앞으로 영여(앵이)가 서 있다. 두 개의 대 위에 올라앉은 작은 가마 안에 소희의 신발이 들어 있다. 살아 있을 적 신었던 신발을 넣은 영여 뒤로 영정사진이 섰다. 기수의 아들이 들고 서 있는 영정 속의 소희는 또 어찌 이리 고요한가. 봄비가 내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라 해도 사람들의 몸은 아직 겨울이라 쌀쌀한 아침 영정 속의 소희는 말갛게 고요하다. 입을 꽉 다물고 표정 없이 찍은 사진이 어쩐지 쓸쓸하다. 그 옆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곳에 소희의 이름을 적은 붉은 깃발 조기와 명정이 서고 공포가 섰다. 그 뒤에 꽹과리 북 장구를 든 악공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서 앞소리꾼의 애소리에 맞추어 장단을 맞춘다.


   허어 어허어 어허~ 으으어어 어어어~

    재~해 ~에 에~ 에~에헤~에~ 호상~

    제~해 ~에에~ 에~에헤~에~ 호상이로구나~

    나~무~여 허어 어허어 어히~ 여~ 어~ 로구나

    다 냐 다 허~ 여어 허~어로구나

    나무 나무여~아~미~타~불


    동에로 뻗은 가지 금호보살 열리시고

    남에로 뻗은 가지 목토보살 열렸네

    서에로 뻗은 가지 수호보살 열리시고

    북에로 뻗은 가지 화보살 열렸네

    나무야 나무야 나무나무 나무야

    나무 불이나~아~미~타~불     


  어쩐지 앞소리꾼의 소리가 다른 때에 비해 길게 늘어지며 서글프게 들려온다. 호상이로구나~~라고 하면서도 목 안에 가래가 웅크리고 앉아 소리를 막고 터주지 않는 것처럼 그 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나온다.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어이를 갈꺼나 어이를 갈꺼나나

   심산험로를 어이를 갈꺼나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바람도 쉬어 넘고

   날짐승도 쉬어가는

   심산험로를 어이를 갈꺼나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북망산천이 멀다고 허는데

   저 건너 안산이 북망일세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우리같은 초로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가난님 보살

   가나님 보살

   가자서라 가자서라

   가난님 보살

   세왕가고 극락가세

   가난님 보살~~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북망산천을 어이 갈꺼나고 장탄식을 하며 소리를 매기고 받는다. 우리네 인생 백 년이고 몇 백 년이고 살 것 같지만 세상에 이름난 영웅호걸도 인명은 재천이라 하늘의 부름을 거역할 수 없으니, 결국 정해진 날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내는 이의 마음이나 가는 이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출천지 효녀 버리덕이 공주의 심성을 타고나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씻김을 하며 지무로 살아온 인생이지만 오늘 경칩 만물이 소생하는 날에 먼 길을 떠나고야 마는 것이다. 다시래기꾼 강 초시와 그의 아낙 사당이 삼십삼천 도솔천을 부르며 팍 싸부러라 팍 부서 부러라 새 생명의 탄생을 염원하며 놀아주던 밤을 보내고야 떠나가지만 그 길이 서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소희의 설움이다.

  얼마를 걷는 길인가. 같은 지산면이라고 해도 세방까지의 거리가 한두 거리가 아니어서 따라오며 배웅을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제 갈 길로 가고 호상꾼과 상두꾼들만이 상주들을 위하며 장지를 향해 간다. 그 길 어디에서 들려오는 노래일까. 심 거사 강 초시와 뺑파 사당의 노래가 상여가는 길 위에 퍼져 흐른다.      


   도화동아~~ 잘 있거라

   무릉촌도 잘 있거라

   한도 많고 설움도 많아

   오늘날 떠나거든

   어느 시절 돌아를 올거나

   오늘은 가다가

   어디 가서 자고 가며

   내일은 가다가

   어디 가서 쉬어갈거나

   박복한 내 팔자야

   여보게 뺑덕이네 / 예에

   길노래나 불러보게 / 그럽시다.


   어이 갈거나 어이 갈꼬

   황성 천리를 어이 갈꼬

   어떤 사람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부귀영화 잘 사는데

   이 놈의 팔자 무삼 팔자

   앞 못 보는 가장 데리고

   몇 날 천리 걸어서

   황성천리를 어이를 갈꼬


  죽어서 올지 살아서 올지 모르는 고향을 두고 가는데 길노래나 부르자며 거들고 나서던 심 거사의 길 떠나는 설움이 강 초시의 목을 타고 소희 가는 길에 놓인다. 소희 천문이 따라다니며 굿을 하던 마당에서 하적(하직)하는 망자들의 떠나는 길 살펴 닦아주던 사설이 심 거사의 한 많은 인생사로 펼쳐지고 있다. 현철하신 곽 씨 부인도 떠난 고향, 출천지 대효녀 심청이도 떠나고 없는 고향 마을 도화동에 무슨 미련이 남아 그리도 서럽고 안타까울 것인가. 훌훌 털고 떠나면 그만일 것을 그리도 서럽게 기약할 수 없는 인생사를 한탄한다.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은 아니었어도 고향 떠나고 집 떠나면 가는 곳이 모두 낯선 타관인데……. 어디 가서 자며 어디 가서 쉬어를 갈 거냐며 탄식을 한다. 그래놓고도 뺑덕이네가 일색이라며 박수를 치고 도굿대춤을 추며 속없이 웃고 떠들어대는 철부지 늙은 거사 심 거사의 소리가 답답하고 무섭다며, 자기를 붙잡아 달라며, 다시 일어나 집으로 달려가려 몸부림을 치던 소희의 관 속을 파고든다. 한여름 먹이를 주어 키우던 우물 속 꽃붕어는 아직 잘 있는가. 문득 소희의 뇌리를 스치고 가는 붉디붉은 꽃의 여운……. 여름날의 두고 온 웃음소리가 청아하게 귓전을 때린다.


  아! 아! 아!     


  가고 싶어라. 나의 살던 고향마을…….

  그곳의 대청마루, 어머니의 태극선 온화한 미소…….

  딸아이 하나를 두고두고 흐뭇하여 자애롭던 아버지의 눈빛     


  나 돌아가고 싶어. 두고 온 그곳이 너무도 그리워 나, 돌아갈래…….



*대문사진: 진도 만가(Daum 이미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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