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한 시간의 유예를 두고 만난 그 남자

오상원의 소설 「유예」를 읽으며

by 윤슬

눈을 뜬다. 무엇엔가 놀라 눈을 뜬다.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 무분별한 꿈의 잔상들을 털어버린다.

고요하다. 홀로 누워 있는 방, 잠자리는 따뜻하다. 스펀지 두툼하게 들어간 담요가 전기장판의 뜨거운 열기를 덜어내어 안온하게 만들어준다. 몇 년 전 홈쇼핑에서 원플러스 원으로 산 거위털 이불이 숨 죽은 지 꽤 되었지만 그래도 한겨울 밤을 나기에는 그런대로 쏠쏠하다. 조각조각 잇대어 꿰맨 자리의 실밥이 뜯어져 너실너실한 베갯잇을 손으로 매만져 납작하게 만들어 놓은 베개 밑자리에 손을 넣어 더듬는다. 쉰 넘은 중년의 몸이 차가움은 견딜 수 없어 이불은 팔로 누르고 다리로 눌러 바람 들어올 틈 없이 돌돌 말아 덮으면서도 베개 밑은 차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머리에는 전기장판의 열기가 닿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을 뜬 채로 누워 있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모아지지 않은 채로 흩어진다. 대기 중에 흩날리는 진눈깨비처럼 나불대는 의식의 파편들을 털어내듯 도리질을 하고는 담요를 걷어낸다. 몸을 뒤틀어가며 전기장판의 열기를 느끼려 든다. 뜨겁다. 양말을 신지 않은 발에 닿는 열기가 뜨겁고 옷 사이를 뚫고 들어와 닿는 열기가 뜨겁다. 그 뜨거움을 더 깊이 느끼고 싶어 담요를 홱 밀치고 아예 드러눕는다. 으음, 좋다! 그래, 이 맛이지? 혼자 묻고 혼자 답하며 흐흐거린다.

세 시 십오 분이다. 눈을 뜨고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보았을 때 두 시 십구 분이었는데, 어느새 한 시간이 다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30분까지만 누워 있자. 유예를 두는 사이 전기장판의 코드를 뺀다. 그리고는 남은 열기를 찾아 곳곳에 몸을 부린다.

사치다. 탐욕이다. 거실로 나가 책상 앞에 앉으면 한 시간의 유예를 두고 몸을 웅크린 채 가마니 속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있을 것이다. 손과 발을 묶인 채 돌덩어리처럼 차가워져 가는 남자가 있을 것이다. 오락가락하는 의식의 파편들 속에서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를 각인시켜가는 남자가 있을 것이다.


생사를 같이 했던 전우야 정말 그립구나 그리워~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 정말 용감했던 전우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정의에 사나이가~

마지막 남긴 그 한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이 몸은 죽어서도 조국을 정말 지키겠노라고~

- 전오승 작사 작곡 <전우가 남긴 한마디>


살아남은 자들의 노래다. 어린 시절 흑백텔레비전에서 화려하게 흘러나오던 노래가 귓가에 맴돌더니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이제는 유튜브 채널에서 빠른 템포로 흥겹게 흘러나오는 노래, 가수의 음성엔 슬픔이 짙게 깔렸다.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에서 용감했던 정의의 사나이가 죽어서도 조국을 지키겠노라고……’ 남겼다는 말 한마디가 따라 불러보는 중년의 가슴에도 아픔으로 스친다. 노래는 마디마다 밑으로 처졌다가 위로 솟구치고 다시 밑으로 처지다가 간신히 올라선다. 목 끝부분 ‘ㄱ’이 머물렀다 터져 나오는 자리가 아리고 쓰리다. 그러나 작가 오상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소속 사단은? 학벌은? 고향은? 군인에 나온 동기는?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미국에 대한 감정은? 그럼……동무의 말은 하나도 이치에 당치 않소.

동무는 아직도 계급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소. 출신 계급을 탓하지는 않소. 오해하지 마시오. 그 근성이 나쁘다는 것뿐이오.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유를 주겠소. 한 시간 후, 동무의 답변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거요.

― 오상원 「유예」 (문학과 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5~156쪽, 이하 동일)


이름이라고 해봐야 소대장일 뿐인 남자에게 학벌이나 고향은 아련한 추억의 어느 한 부분일 뿐이다. 군인에 나온 동기든 공산주의나 미국에 대한 감정이든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다만 한 시간의 유예가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불어온다. 창문이 덜컹거린다. 도로가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의 삭신이 부러질 듯 휘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로를 휩쓸고 가는 바람 사이로 떨어진 나뭇잎들과 가느다란 삭정들이 어울려가는 소리도 들려온다. 출렁이는 강물을 타고 무리 지어 쏘다니던 겨울새들이 깃털을 웅크린 채 떨며 내는 소리도 꾸욱 꾹 들려온다.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비 또는 눈이 내리면서 살얼음이 생기는 곳이 많겠다고 알려오던 안전문자가 비로소 생각난다. 날마다 호들갑이야, 눈살을 찌푸리던 중년의 귓가에 바람은 세차게 불어와서 춥다.

하얀 종이에 인쇄되어 나온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난로를 켜고 회전의자에 앉아 내내 읽어보지만 머리는 아직도 정전(停電)이다. 결국 일어선다. 몇 걸음을 걸어 커피포트에 물을 붓는다. 뚜껑을 닫고 스위치를 누른다. 연락이 닿았는가. 찌르르 소리가 나더니 물이 흔들린다. 사방으로 튄다. 투명한 벽에 마구 부딪치며 요동을 친다. 몸통이 흔들린다. 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터져 나온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밥 연기처럼 하얗게 퍼져나간다. 커피와 프림과 설탕이 조화롭게 담겨있는 짧은 막대 봉지를 들고서 콧노래를 부른다. 그리고는 흥에 겨워 몸을 흔들어대며 춤을 춘다. 봉지를 뜯어 항아리컵에 쏟고는 물을 붓는다. 키다리 숟가락으로 노를 젓는다. 키다리놈이 밑바닥에서 뻑뻑하지만 이만하면 되었으려니 컵을 들고 책상 앞에 앉는다.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김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시간은 흘러 네 시 사십 분이다.


북으로 북으로 쏜살같이 진격은 계속되었다. 수차의 전투가 일어났다. 그가 인솔한 수색대는 적의 배후 깊숙이 파고들어갔다. 자주 본대와의 연락이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초조한 소대원의 얼굴은 무전사에게만 쏠려갔다. 후퇴다! 이미 길은 적에 의해 모두 차단되었다. 적의 어느 면을 뚫고 남하할 것인가? 자주 소전투가 벌어졌다. 한 명 두 명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될 수 있는 한 적과의 접근을 피하면서 산으로 타고 올라갔다. 기아와 피로, 점점 낙오되고 줄어가는 소대원. 첩첩이 쌓인 눈과 추위, 그리고 알 수 없는 방향을 더듬으며 온갖 자연의 악조건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연이어 계속되는 눈보라 속에 무릎까지 덮이는 눈 속을 헤매다 방향을 잃은 그들은 악전고투 끝에 산 밑을 더듬어 내려와서 가까운 그 어느 마을로 파고들어갔다. 텅 빈 마을 집집마다 스산히 흩어진 채 눈 속에 호젓이 파묻혀 있다. 적이 들어온 흔적도 지나간 흔적도 없다. 됐다. 소대원들은 뿔뿔이 헤쳐져서 먹을 것을 샅샅이 뒤졌다. 아무것도 없다. 겨우 얼어빠진 감자 한 자루뿐. 이빨에 서벅서벅 얼음이 마주치는 감자 알맹이를 씹었다. 모두 기운에 지쳐 쓰러졌다. 일시에 피곤과 허기가 연덩어리(납덩이의 북한어) 처럼 내린다. 발가락마다 얼음이 박혔다. 눈보라는 더욱 세차게 몰아치고 밤이 다가왔다. 산속의 밤은 급히 내린다. 선임 하사만이 피로를 씹어가며 문설주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밖은 휘몰아치는 눈보라뿐. 선임 하사도 잠시 눈을 붙였다. 마치 기습이라도 있을 듯한 밤이다. (157~158쪽)


사박사박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 부서지던 눈을 밟고 등 뒤에 따발총구를 느끼며 인민군 병사를 따라 들어와 갇힌 곳, 움 속에서 가마니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린다. 한 시간을 남겨놓고 북으로의 진격을, 남으로의 후퇴를 떠올린다.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소전투, 기아와 피로, 첩첩이 쌓인 눈과 추위 속에서 길을 잃은 소부대원들, 몇은 낙오되고 몇은 쓰러져 갔다. 아무 일 없이 아침이 찾아온 이튿날에도 눈과 기아와 추위 속에서 전투는 계속되고, 마지막 한마디는 어김없이 들려온다.

“소대장님……북한 출신입니다. 홀몸입니다. 남한에는……누구도 없습니다. 이것이 이북 제 고향 주소입니다.”

소대장을 부르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는 부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는 특별하게 해 줄 만한 무엇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포켓을 찾아 소지품을 더듬는 자신의 손은 항시 죽어간 부하의 시체보다 더 차가웠다고 말한다. 소대장인 자신을 우러러 쳐다보며 마지막 숨을 쉬는 부하의 적막한 눈빛과 적막을 더듬어가며 죽음을 재는 눈빛에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그 무엇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겨진 기슭마다 닳아 떨어진 고향의 주소가 적힌 종잇장을 받아 들고 부하의 손을 꽉 쥐어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춥다. 남자가 춥고 중년이 춥다.

기억은 기억을 부르고 자꾸만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필름은 돌아간다. 붉은 피가 하얀 눈을 호젓이 물들여가며 자신의 삶을 끝맺을 때 일 초 일 각까지 정확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을 해둔다. 그 틈을 비집고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공과목은? 왜 동무는 법과를 선택했었소? 어렸을 때부터 벌써 동무는 출신 계급적인 인습에 젖어 있었소. 그것을 버리시오.

나는 동무와 같은 인물을 아끼고 싶소. 나는 동무를 어느 때라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가지고 있소. 문지방으로 스미어오는 가는 실바람에 스칠 때마다 화롯불이 붉게 번지어 갔다.

나는 동무를 훌륭한 청년으로 보고 있소. 자, 담배를 태우시오.

꾸부러진 부젓가락으로 재 위를 헤칠 때마다 더욱 붉게 불빛이 번진다.

그렇다면 동무처럼 불쌍한 청년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거요. 나는 심히 유감스럽소. 동무의 그 태도가 참으로 유감이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왜 동무는 그렇게 내 얼굴을 차갑게 치어다보고만 있소? 한마디 대답도 없이 입을 다문 채……알겠소. 나는 동무가 지키고 있는 그 침묵으로 동무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소. 유감이오.

주고받던 대화, 조그만 방 안, 깨어진 질화로가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는 무겁게 몸을 뒤틀었다. 희미하게 또 과거가 이어온다. (160~161쪽)


산다는 것에 의미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선임 하사가 그러했듯 무심히 오는 삶과 무심히 가는 삶을 꿰맞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얼마나 간절했을까. 한 개비의 담배……폐부를 찌르듯 파고드는 한 모금의 연기……깨어진 질화로 속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꽃 그 따스한 온기……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한 순간의 안락, 따스한 유혹에 그냥 있는 대로 허물어져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살아 있는 목숨이기에……유예의 시간이 그에게 주어져 있기에……하지만 그는 ‘그렇다면 동무처럼 불쌍한 청년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거요. 나는 심히 유감스럽소. 동무의 그 태도가 참으로 유감이오.’라고 말하는 순간에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라고 다짐의 말을 한다. 독백으로 들려주는 말,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 그것은 깨끗하게 죽어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마지막 열정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는 이미 새벽이 가까워서였다. 산속의 새벽은 아름답다. 눈 속에 덮인 산속의 새벽은 더욱 그렇다. 나뭇가지마다 소복이 쌓인 눈이 햇빛에 반짝인다. 해가 적이 높아졌을 때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선임 하사는 피에 붉게 젖은 한쪽 다리를 꽉 움켜쥔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 검붉은 피가 오른편 어깻죽지와 등에 짙게 얼룩져 있다. 그는 급히 선임 하사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조용히 눈을 뜬다. 그리고 소대장을 보자 쓸쓸히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 그는 선임하사를 꽉 끌어안고 뺨을 비벼대었다. 단 둘뿐! 이제는 단둘이 남았을 뿐이었다.

“소대장님, 인제는 제 차례가 된 모양입니다.”

그는 조용히 선임 하사의 얼굴을 지켰다. 슬픈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오랜 군대 생활에 이겨온 굳은 의지가 엿보일 뿐이다.

선임 하사, 그는 이차 대전 시 일본군에 소집되어 남양 전투에 종군하다 북지로 이동,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포로 생활 이 개월을 거치고 팔로군(八路軍), 국부군, 시조(時潮)가 변전(變轉)하는 대로 이역(異域)을 표류하다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군문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군대 생활이 무엇보다도 즐겁다는 그, 전투가 자기 생활 속에서 제일 신이 나는 순간이라는 그였다.

“사람은 서로 죽이게끔 마련이오. 역사란 인간이 인간을 학살해온 기록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오? 나는 전투가 제일 재미있소. 전투가 일어나면 호흡이 벅차고 내가 겨눈 총구에 적의 심장이 아른거릴 때마다 나는 희열을 느낍니다. 그 순간 역사가 조각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사람이란 별게 아니라 곧 싸우는 것을 의미하고, 싸우다 쓰러지는 것을 의미할 겝니다.”

이것이 지금껏 살아온 태도였다. 이것뿐이다. 인제 그는 총에 맞았다. 자기 차례가 된 것을 알 뿐이다. 어렴풋이 희미한 기억을 타고 선임 하사의 음성이 떠오른다. 그는 몸을 조금 일으키려고 꿈지럭거리다가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바른편 팔 위에 경련이 일어난다. 혓바닥을 꾹 깨물고 고통의 일순을 넘겼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선임 하사의 생각이 이어온다.

“소대장님, 제 위치는 결정되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분명히 말을 끝낸 선임 하사는 햇볕이 조용히 깃드는 양지쪽으로 기어가서 늙은 떡갈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햇볕을 받아가며 조용히 내리감은 눈, 비애도, 슬픔도, 고독도, 그 어느 하나도 없다. 다만 눈 속에 덮인 산속의 적막, 이것이 그의 얼굴 위에 내릴 뿐이다. 의식을 잃은 듯 몸이 점점 비스듬히 허물어지다가 털썩 쓰러졌다. 그는 급히 다가서서 선임 하사를 일으키려 하였다. 그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입가에 미소가 가벼이 흐른다. 햇볕이 따스히 그 입가의 미소를 지킨다.

“이대로……” (161~163쪽)


이제 혼자가 되었다. 전투를 거쳐 오는 동안 맥없이 쓰러져갔던 부대원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간다. 우러러 올려보던 적막한 눈빛들이 남기던 마지막 한마디들도 점점 가물가물해진다. 선임 하사도 떠나갔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종잡을 수 없는 적들의 총탄에 맞아 쓰러져 갔다. 한쪽 다리가 피에 젖었고, 오른편 어깻죽지와 등도 검붉은 피로 물들인 채 떠나갔다.

“소대장님, 인제는 제 차례가 된 모양입니다.” 말하던 선임 하사는 군대 생활이 무엇보다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전투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제일 신나는 순간이라고도 말했다. 또한 그는

사람은 서로 죽이게끔 마련이라 했고, 역사란 인간이 인간을 학살해온 기록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자신은 전투가 일어나면 호흡이 벅차고 자신이 겨눈 총구에 적의 심장이 아른거릴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그 순간 역사는 조각되고 사람은 싸우다 쓰러지는 것을 의미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소대장 그에게 주어진 유예의 시간도 다만 그의 차례가 된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햇볕이 조용히 깃드는 양지쪽으로 기어가서 늙은 떡갈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만 “이대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떠나간 선임 하사처럼 자기 차례임을 알고 순하게 떠나야 하는 것이다. < 유예(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