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한 시간의 유예를 두고 만난 그 남자(2)

오상원의 소설 「유예」를 읽으며

by 윤슬

무서리가 핥고 지나간 자리는 쓸쓸하다.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의 가운데 지점에 선 나목(裸木)의 들판은 황량하다.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흔들림으로 울어대는 나목의 소리는 심하게 후려치는 회초리의 소리로 다가와 매섭다. 중년이 문을 열고 나온다. 순간 묵직한 철문이 중년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한다. 당혹감을 느낀 중년이 손에 힘을 준다. 그리고는 세게 문을 잡아당긴다. 치마폭 한 자락 같은 바람이 후욱 밀려나가며 문이 닫힌다. 쾅! 소리가 둔탁하게 울린다.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가 반쯤이나 되게 흘러내렸다. 로즈핑크빛으로 빛나던 머릿결 가르마길이 하얗게 시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동녘 하늘 움푹 파인 곳에 주황 물빛이 오르지 않았다. 저 멀리 와온해변 바닷물 넘실대는 대지로 깊숙이 파고들어가 밤을 보낸 붉은 해가 아직 솔섬 언덕 너머로 올라서지 않았다. 밤새 별들과 거리를 두고 시새움을 키우던 초승달도 졸음에 겨워 시들어가는 가르마 길에 관심을 두지 않고, 막 터널을 빠져나온 화물열차마저 덜커덕덜커덕 새벽잠에 취한 사람들의 지붕 위를 달려가느라 시들어가는 가르마 길 따위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랄 것도 없는 다행을 두고 중년은 계단을 내려선다. 터엉! 우르릉~피잉~~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는 요란하게 들려오고, 계단 밑 우물가 함지박 속을 둥둥 떠다니던 바가지는 꽁꽁 얼어붙어 을씨년스럽다. 우물 턱에 괴어놓았던 빨래판 통은 맥없이 뒹굴어 평상 다리 사이에 처박히고, 어느 때고 주인의 소리가 들리면 다가와 꼬리를 흔들던 충직한 개도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또 하나의 철문이 열린다. 따스한 온기가 와락 밀려든다. 불 꺼진 주방과 거실 사이 벽에 붙은 전자시계가 다섯 시 오십팔 분을 말한다. 시간과 양력과 음력까지, 온도와 습도까지 밝혀주는 빛들에 의지해 안방 앞으로 걸어간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는 스위치를 누른다. 형광등이 켜진다. 거실 안에서는 아직도 삼겹살 구워 먹은 냄새가 난다. 창문을 열어도 쉽게 빠지지 않는 냄새가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작은방 문을 연다. 취준생 아들이 잠에 취해 있다. 쿰쿰한 냄새가 난다. 담배와 커피와 소주의 냄새가 뒤엉키고 구겨진 원고지들 사이로 며칠째 빨지 않은 양말이 던져진 채로 뒹굴던 방, 작은오빠가 군대 가던 날 열어본 방 안에서 나던 메주 뜨는 냄새보다는 한결 개운하지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남자 놈의 냄새가 풍겨온다. 방문을 닫는다.

중년은 안방으로 들어간다. 이불을 돌돌 말고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남편이 잠들어 있다. 며칠째 혼자서 자는 남편에게서도 퀴퀴한 냄새가 난다. 오랫동안 빨지 않은 이불에서 나는 축축한 냄새다.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잠들어 있는 모양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중년이 자신의 몸을 남편의 몸에 부린다. 우우우~~ 고양이 같은 소리를 내며 타고 넘으려 한다. 그러나 어쩐지 넘어가지 않아 애를 먹는 것처럼 타고 넘는 시늉을 한다. 남편이 몸을 눕히며 중년을 끌어안는다. 목을 끌어다 입을 맞춘다. 까칠까칠한 수염이 중년의 얼굴을 찌른다. 아픈 시늉을 하며 옆자리로 눕는다. 싸늘한 기운이 등으로 올라온다. 남편이 돌아눕는다. 기운이 없는 것이지, 흥! 소리를 내어 삐죽하고는 버튼을 누른다. 조금 있으면 침대에 열기가 올라오겠지. 그동안이 추워서 남편의 다리 사이를 비집으며 온기를 더듬는다. 돌아누운 남편의 등에 몸을 들이민다. 따뜻하다. 전기장판의 뜨거움과는 확연히 다른, 흙침대의 40도 열기와는 또 확연히 다른 사람의 온기, 다정한 사람의 냄새, 차가운 줄 미처 몰랐던 몸 구석구석이 흐물흐물 녹아들어 간다.

한 시간의 유예를 두고 만난 그 남자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산속에서 선임 하사마저 잃었다. 햇볕이 조용히 깃드는 양지쪽으로 기어가서 늙은 떡갈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이대로……”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임 하사를 기억했다. 비애도, 슬픔도, 고독도 없는, 다만 눈 속에 덮인 산속의 적막만이 얼굴 위에 내리던 날, 햇볕이 따스히 그 입가에 미소를 지키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삶이 그를 속인다.


밤이 온다. 또 새벽이 온다. 모든 것을 잊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눈을 헤치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 이것이 그에게 남은 전부였다. 총을 둘러멜 기운도 없어 허리에다 붙들어 매었다. 그는 다자꾸 흩어지는 의식을 가다듬어가며 발을 옮겼다.

한 주일째 되던 저녁, 어슴푸레 저녁이 깃들 무렵 그는 이 험한 준령을 정복하고야 말았다.

다음 날, 해가 어언간 높아졌을 무렵에 그는 눈을 떴다. 그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눈앞, C자형으로 산줄기가 돌아나간 그 옴폭 파인 복판에 집들이 점점이 산재하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모르고 눈 속에서 밤을 보냈다니……소복이 집들이 돌려 앉은 마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눈물을 머금으며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집 문들이 제멋대로 열어젖혀진 채로 황량하다. 눈이 마을 하나 가득히 쌓인 채 발자국 하나 없다. 돼지우리, 소, 헛간, 아! 사람들이 사는 곳!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열어젖힌 장롱……방바닥 하나 가득히 먼지 속에 흩어진 물건들……옷! 찢어진 낡은 옷들! 그는 그 옷들을 주워서 꽉 움켜쥐었다. 사람 냄새……땟국에 젖은 사람 냄새……방 안을 둘러본다. 너무도 황량하다.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황량해질 수는 없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아무리 몇 번이고 보아 온 그것이었다 할지라도……

― 오상원 「유예」 (문학과 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64~165쪽, 이하 동일)


얼마나 그리운 것들인가. 일상이 무너진 세상, 전쟁이 평화로웠던 모든 것들을 삼켜버린 세상,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저 사람은 누구인지, 나는 왜 그에게 총을 쏘아야만 하는지……흉물스러운 무기는, 그것을 부른 광기(狂氣) 어린 시대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인민군과 맞서 싸우다가 죽어간 전우는 남한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북이 고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구겨진 기슭마다 닳아져서 떨어진 고향집 주소를 건네주며 죽어가던 전우에게 남한을 위해 싸워야만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누구도 알 수 없는,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줄 수 없는 참혹한 시대의 그 어느 날, 한 시간의 유예를 두고 만난 그 남자는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회상했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고 기억해냈다. 비록 집집마다 문들이 제멋대로 열어젖혀진 채로 황량했지만, 눈이 마을 하나 가득히 쌓인 채 발자국 하나 없이 황량했지만, 그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고 했다. 모든 부대원을 잃고 홀로 살아남아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성마저 상실한 채 헤맸던 시간들 속에서 마침내 닿은 사람들이 사는 곳, 그곳엔 사람이 없었다. 열어젖힌 장롱과 찢어진 낡은 옷들이 흩어져 뒹굴고 있는……땟국에 젖은 사람들의 냄새가 먼지처럼 허공을 떠돌며 부유하는 공간,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은 모조리 피난을 갔을까? 모조리 어딘가로 끌려갔을까? 이후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남자는 모른다. 다만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황량해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아무리 몇 번이고 보아 온 장면이었다 할지라도 이렇게 황량해질 수는 없지 않으냐고 의아해할 뿐…….

이제 얼마 후면 모든 것은 끝날 것이다. 눈이 함빡 쌓인 흰 둑길을 따라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 선 언덕을 따라 남쪽으로 똑바로 걷다가……연발하는 총성을 마치 외부세계에서 들려오는 잡음처럼 들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이상한 발자국 소리를 듣고 한쪽 벽으로 몸을 피했다. 흙이 부서진 벽 구멍으로 밖의 동정을 살폈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다. 스산한 내 정신의 탓인가?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확실히 사람들의 음성을 들은 것 같았다.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서린다. 그는 담 구멍을 통하여 사방을 유심히 살폈다. 약 50미터쯤 떨어진 맞은편 초가집 뒤 언덕길을 타고 한 떼가 몰려가고 있다. 그들은 얼마 안 가 걸음을 멈췄다.

멀리서 보기에도 확실히 군인임에 틀림없다. 미국 전투 복장도 끼여 있는 듯하다. 벌써 아군 선내에 들어와 있는 것인가? 그러면……? 그는 숨죽여 이 광경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좀 수상쩍은 데가 있다. 누비옷을 입은 군인의 그 누비옷의 형식이 문제다. 그는 좀 더 자세히 이 정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맞은편 초가집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담벽을 따라 교묘히 소 헛간과 짚 낟가리 등, 엄폐물을 이용하여 그 집 뒷마당까지 갈 수 있었다. 뒷담장에 몸을 숨기고 무너진 담 구멍으로 그들의 일거일동을 지켰다. 눈앞의 그림자처럼 아른거린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동무……총살. 이 두 마디가 그의 머릿속에 못 박혔다. 눈앞이 아찔하다. 그는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그들의 일거일동을 살폈다. 머리가 텁수룩하고 야윈 얼굴에, 내의 바람의 한 청년이 양손을 등 뒤로 묶인 채 맨 발로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동무는 우리 인민의 처사에 대하여 이의가 있소?”

그 위엄으로 보아 대장인가 싶다.

“생명체와 도구는 다른 것이오. 내 이상 무엇을 더 말하고 싶겠소? 나는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확실히 호흡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오. 나는 기쁘오. 내가 한 개 기계나 도구가 아니었다는 것, 하나의 생명체인 인간으로서 살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죽어간다는 것, 이것이 한없이 기쁠 뿐입니다.”

명확한 차가운 음성이었다.

“좋소.”

경멸적인 조소가 입술에 어렸다. (165~166쪽)


눈앞이 빙빙 돈다. 그는 마치 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자기인 것만 같았다. 순간 그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한 수단이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쏴야 한다. 그는 사수를 겨누었다. 숨죽이는 순간, 이미 그의 총구에서는 빗발같이 총알이 쏟아져 나갔다. 쓰러진다. 분명히 두 놈이 쓰러졌다. 그는 다음다음 연달아 쏘았다. 일순간이 지나자 응수가 왔다. 이마에선 줄곧 땀이 흐른다. 눈앞이 돈다. 전신의 근육이 개머리판의 진동에 따라 약동한다. 의식이 자주 흐린다. 그는 푹 고개를 묻고 쓰러졌다. 위기일발, 다시 겨눈다. 또 어깨 위에 급격한 진동이 지나간다. 다자꾸 흩어지는 의식, 놈들의 사격이 뚝 그쳤다. 적은 전후 좌우방으로 흩어져서 육박하여오고 있다. 의식을 잃은 난사, 그는 벌떡 일어섰다. (167쪽)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한 수단이다’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포로병을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한다. 바로 자신이 피살을 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의 사수(射手)를 겨누어 방아쇠를 당긴다. 머리가 텁수룩하고 야윈 얼굴에 내의 바람으로 양손을 등 뒤로 묶인 채 맨 발로 서 있던 청년은 생명체와 도구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확실히 호흡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라고도 했다. 자신이 한 개 기계나 도구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인 인간으로서 살아 있었기에 인간으로서 죽어간다는 것, 그것이 한없이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작가 오상원은 포로가 된 내의 바람의 청년을 ‘피해자’라고 명명했다. 전쟁터에 군인으로 나와 적들에게 붙잡힌 사람들을 우리는 ‘포로’라고 지칭한다. 그런데 작가 오상원은 포로를 피해자라고 불렀다. ‘생명체와 도구는 다른 것’이라는 말, ‘한 개 기계나 도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선택한다’는 말……전쟁은 전사한 전우든 포로가 된 전우든 살아남은 전우든 간에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흉물스러운 무기들이 찌르지 않으면 찔리게 되는 숨 막히는 전쟁터, 그곳에서 아군에게 적은, 적군에게 아군은 일면식도 없었지만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과 동년배인 그 누군가를 향해 총을 쏘아대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담배를 말아 피우고 기지개를 켜는……상실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생명체를 가진 인간이 아닌 한 개의 기계나 도구 같은 것으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다.

중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넓은 창문으로 비쳐 드는 감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본다. 쉴 새 없이 휘청거리는 가지들을 바라보며 드문드문 코를 고는 남편의 소리를 듣는다. 이불을 들추어 어깨까지 덮어주고는 돌아눕는다. 아침이 밝으면 숭늉을 끓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 가지의 반찬도 생각한다. 열한 시 반이 다 되도록 일어나지 않을 취준생 아들놈의 면접 날짜를 꼽아보다가 까무룩 잠에 빠져들어 간다. 중년의 아침, 중년의 하루치 일상에도 한 시간의 유예가 주어지는 것이다. 아침 숭늉이 끓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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