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No 끈기인 거야.

by 양마리

요즘 유행하는 'After like'라는 노래의 킬링 파트를 활용해 제목을 만들어봤다. 다들 음정, 박자를 맞춰 부르셨길 바라며 글을 시작해 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나는 끈기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끈기를 사전에 검색하니 두 가지 뜻이 나온다. 1. 물건의 끈끈한 기운. 2.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 나는 땀을 흘리면 쉽게 끈적해져 인간 딱풀이 되므로 1번의 끈기는 있지만, 2번이 없는 것 같다. 아니, 2번이 확실히 없다.


그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8살의 나는 장난을 치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다. 한 시를 가만있지를 않는 내게 질려버린 엄마는 '1분 동안 가만히 서있기' 벌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30초도 채 되지 않아 엉엉 울어버렸다. 성인이 되어 엄마가 이 얘기를 해줬을 때 나는 깔깔 웃었지만 한편으로 울적해졌다. 여전히 난 '1분 동안 가만히 서있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견디는 능력은 늘 부족했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 삶에 더 큰 구멍을 만들어 갔다.


중학교 때는 연합고사 공부를 하기 싫어 매일 놀았다. 가끔 공부가 재밌어지면 미친 듯이 파다가, 금세 질려서 그만두기 일쑤였다. 3학년 수학 선생님이었던, 너구리를 닮은 박 선생님은 '네가 연합고사에 붙으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고 하셨다. 나의 자의식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1교시 동안 조용히 버티는 것도 어려운 내가 체계적인 학습이라니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될놈될이라고 하던가! 나는 기적의 공부법을 찾고야 만다. 그것은 바로 돌려돌려 공부법. 질릴만하면 과목을 바꿨다. 함수를 공부하다가 질리면 영어 단어를 외우고, 갑자기 아편전쟁의 원인을 중얼중얼 외웠다. 견디기에 취약한 나에게는 최선의 공부법이었다. 남은 4개월을 그렇게 공부하고 원하던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손에 장을 지진다던 수학 선생님은 웃으며 나를 축하해 주셨다. 나의 끈기 없음이 미약한 성과를 내기 시작한 기념적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장래희망도, 아르바이트도, 연애도 3개월을 가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이 계속됐다. '뭐. 꼭 꾸준히 하는 게 좋은 건가? 사람마다 다른 거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도 사실 내 속은 타고 있었다. '나도 뭔가를 꾸준히 하고 싶다. 끝장을 보고 싶다. 어떤 분야의 *잘알*이 되고 싶다.'라는 열망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 있지 않나.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버리면 그게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은 느낌. '저는 끈기가 없어요. 그래서 제 인생은 용두사미랍니다!'라고 인정해버리는 건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그래서 나는 끈기라는 존재를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수납했다. 다시는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길 바라며. 그러나 안타깝게도 삶은 속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평범한 날, 나는 친구에게 새로운 취미를 소개하고 있었다. 듣던 친구가 '그 취미는 또 언제 그만둘 거야?'라며 장난을 쳤다. 내가 자학개그로 종종 사용해오던 방식인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조금 억울다. 난 뭔가를 시작할 때 언제나 진심이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열정이 활활 불타고 있는데 찬물을 쫙 끼얹다니! 그렇지만 난 억울할 자격도 없었다. 영리한 내 친구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합리적 추론을 했을 뿐, 거짓이나 과장은 없는 100% 사실이니까. 괜히 풀이 죽어 집에 돌아갔다. 나를 잘 아는 친구가 그렇게 말하니 제대로 확인을 받은 느낌이었다. 러나 슬프게도 나는 바뀔 수도 없으며 바꿀 의지도 없는 사람이었다. 끈기가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끈기 있게 노력을 해서 변화한단 말인가.

나는 끈기가 없어도 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물귀신처럼 들러붙어있는 끈기를 떼내지 못할 바에야 같이 죽어버리자는 작전이었다. 내가 찾아낸 몇 가지 이유 중 천만다행인 것부터 말하겠다. 나는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고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이 난리통 속에서 나는 1분 동안 가만히 있을 필요도, 자리에 앉아 끈질기게 서류를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다. 이곳은 가벼운 엉덩이와 발걸음이 나를 성실으로 포장해주는 곳, 오랜 고민과 번뇌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더 빛나는 곳이다. 끈기 없이 돌아다니며 주워 모은 나의 경험과 생각들이 원료가 되는 나의 파라다이스.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직장이다. 만약 내가 끈기가 생명인 개발자나 연구원이 되고 싶다는 헛된 꿈을 꾸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아주 운이 좋게 그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면..? 정말 아찔하다. 아마 나는 5개월 정도 꾸역꾸역 일한 뒤 해고되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라고..' 혼잣말을 하며 술을 먹고, 양치도 안 하고 잠드는 생활을 반복했으리라 확신한다.


또 다행인 것은 많은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내가 변덕을 부리며 이것저것 시도했던 것들은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나를 조금씩 키워냈다. 수영을 할 때는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것, 외국어는 쪽팔려도 입으로 말해야 실력이 좋아지는 것, 팀스포츠는 상상 이상의 뭉클함과 짜릿함을 선사한다는 것을 배웠다. 한때 소방관을 꿈꾸며 희생하는 삶의 가치를 배웠고, 카페 알바를 한 달 만에 그만두며 음료를 뚝딱 만들어내는 알바생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들인지 깨달았으며, 뉴진스의 춤을 배우면서 아이돌 라이브 못 한다고 욕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통감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경험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해서 이 모든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렇게 나의 세계를 넓혀왔다.

구구절절 썼지만 사실 별다른 좋은 점은 없는 것 같다. 당연히 있는 게 좋지 없는 게 좋겠나. 그러나 더 이상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싶기에 나의 끈기 없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떠돌이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그래서 지루할 틈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