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허락된 우울은 15평 남짓

by 양마리

엄마가 작명소에 다녀왔다. 새 이름을 가지고 싶다며, 56년의 원한을 풀겠다며 말이다. 엄마는 평생 동안 자기 이름을 싫어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면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를 정도로. 평생을 그 이름으로 살다가 뒤늦게 이름을 바꾸려 결심한 것은 엄마가 새 직장을 위한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부터다. 새 직장에서는 세련된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기분 좋은 각오였다. 우리 가족 역시 대찬성이었다. 작은 이모는 쌍수를 들고 반기며 엄마에게 작명비까지 쥐어주었다. 들뜬 기분으로 작명소에 다녀온 엄마는 여러 이름이 적힌 종이를 펼쳐 보였다. 엄마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어떤 이름이 좋을지 토론하던 와중에 엄마가 ‘우리 이사 가려나 봐.’라며 사주 이야기를 꺼냈다. 작명가가 사주 공부를 조금 했다며 사주를 봐줬는데 엄마에게 이사운이 들었다고 했다. 전혀 계획이 없던 터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지만, 항상 마음은 굴뚝같았던 터라 귀가 쫑긋 열렸다.


‘그래서 우린 어디로 이사 가야 한대?’

‘□□동이나 ○○동이 좋다는데 난 □□동이라면 치가 떨려.’

‘아무리 그래도 치가 떨릴 정도야?’

‘당연하지. 엄마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데…’




9살이 되던 어느 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삿짐을 싸게 된다. 우리가 살던 집은 방이 2개 있는 아담한 주택이었다. 그곳은 네 가족의 추억이 가득한 아지트였다.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는 소식에 내심 속상했다. 접시를 신문지로 싸고 있던 엄마에게 칭얼거리며 왜 가야 하냐고 이유를 물었다. 엄마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우리 이사 가야 해. 그렇지만 전학 가진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줬다. 나는 허전한 기분으로 내가 아끼던 물건들을 챙겨 떠났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동의 한 아파트. 엄마는 앞으로 이곳에서 지낼 거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아담한 15평의 투룸 아파트였다. 이전 집과 비교하면 무척 좁았지만 신축이라 깔끔했고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좋았다. 경비실도 있었고 집 앞 놀이터도 있었다. 그러나 아빠는 없었다. 내게 아주 다정하고 재밌었던, 하지만 아주 바빴던 아빠는 사라졌다. 왜인지는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여기선 우리 셋만 살기로, 어른들은 이미 약속했던 모양이다.


새로운 집에서 지내는 나날들은 꽤 나쁘지 않았다. 어린 나는 새 집이 맘에 들었는지 친구들을 자주 초대했다. 친구들과 딱지를 치고 한참 놀다 보면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언니와 함께 저녁밥을 먹었다. 어떤 날은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들로 상을 차렸고, 어떤 날은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엄마는 브랜드 옷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늦은 저녁이 돼서야 퇴근했기 때문에 우리끼리 먹는 밥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엄마 '엄마 왔다~!'라고 힘차게 외치며 들어왔다. 우리는 현관문 앞으로 달려 나가 엄마를 맞이했다. 마는 엄마가 없었던 시간을 보상하듯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우리를 정성스럽게 씻기고, 잠들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그렇게 매일을 버텼고 우리는 빠르게 커나갔다.


하지만 여자 혼자 아이 둘 키우기가 그리 쉽기만 했을까. 아빠와의 이별로 큰 상처를 받았던 엄마는 우울증에 빠졌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했고, 우리의 학습지 과외만은 멈추지 않았으며, 주말마다 함께 나들이를 갔다. 마음은 지옥 한가운데 서 있지만 양육이라는 끈만은 끈질기게 쥐고 있었다. 신은 왜 엄마의 몸부림을 어여삐 봐주시지 않았을까? 이쯤 돼서 뜻밖의 행운을 선물하는 게 신의 역할 아닌가. 하게도 우리에게 그런 축복은 주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아빠가 남기고 간 빚을 알리는 청구서가 쉬지 않고 날아왔다. 집안 사정은 나날이 어려워졌고 가스가 끊기는 달이 많아졌다. 뜨거운 물로 씻기 위해 부탄가스를 사 오고, 큰 주전자에 물을 가득 부어 끓인 다음, 찬물에 섞어서 샤워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다.




그런 것쯤은 모두 견딜만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엄마가 직장에 나간 사이 이름 모를 아저씨들이 우르르 찾아오는 일이었다. 평화로운 한낮에 자주 찾아오던 그들은 현관을 아주 세게 -- 두드렸다. 집 앞에 공룡이 찾아온 것 같았다. 엄마는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는 쥐 죽은 듯, 모든 행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 앉아 숨소리조차 참아야 했다. 그러나 용한 빚쟁이들은 사람의 냄새를 잘 맡았다. 우리가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잠시만 문을 열라고 회유했다. 지친 우리가 현관 걸쇠를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자, 그들은 아빠가 여기 사는 걸 안다며 아빠의 행방을 실토하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진실을 모르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바들바들 떨었다. 훗날 언니는 이 이야기를 하며 갑자기 나에게 사과를 했다. ‘너한테 미안해. 나 그때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벨이 울리면 모르는 척 너한테 나가보라고 했어. 그래서 어린 네가 항상 문을 열었어. 난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라고 말이다. 언니는 다 잊었나 보다. 현관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면 항상 나보다 10cm쯤은 큰 언니가 있었는데. 아저씨에게 ‘우린 아빠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엄마는 아직 안 왔어요.’라고 말하던 든든한 언니가 있어서 나는 문을 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언니와 내가 그러했듯 엄마 역시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터다. 그러나 엄마에게 남겨진 것은 어린 두 딸과 남편이 남기고 간 신용불량자라는 낙인뿐이었다. 그녀에게 밤은 길었고, 우울은 깊었다. 그때 엄마는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렸다. 6층 베란다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고통 없이 즉사할 수 있는 높이인지 가늠해봤다. 많이 아프겠지. 생각하면서도 남겨질 아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두 딸, 아빠가 없어도 엄마만 있으면 괜찮다던 두 딸을 어떻게 놓아야 할까.


엄마는 다 같이 쥐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니는

죽었을까?


엄마는

지난한 삶을 스스로 멈췄을까…


엄마는 신의 행운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신이 되기로 했다. 쥐약을 먹는 대신 질긴 생을 버텨보기로 한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살아남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언니는 중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며 여행을 즐기는 씩씩한 30대가 되었고, 엄마는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나는 솔로를 좋아하는 유쾌한 50대가 되었다. 우리는 다행히도 11살, 13살, 41살에 멈추지 않고 똘똘 뭉쳐 삶이라는 가시밭길을 굴러왔다. 서로가 가시에 찔리지 않게 꼭 안은 채, 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이 사라질 때까지 잔뜩 웅크린 채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웅크린 몸을 풀었다. 이렇게 살아남은 우리에게, 엄마에게 ‘그렇게 죽으면 애가 무슨 죄야.’라며 쉽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엄마를 너무 잘 안다. 우리 엄마는 남에게 나쁜 소리라도 한 날이면 나에게 조심스레 전화를 건다. '엄마 얘기 잠깐 들어줄 수 있을까?'라며 말이다. 남의 마음에 낸 작은 생채기도 밤새 곱씹는, 선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엄마가 죽음을 떠올리기까지, 쥐약을 먹는 상상에 이르기까지,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아무도 엄마를 비난할 수 없다. 삶을 저버릴 수 있었던 나 조차도 엄마를 탓할 수 없는 이다.




어느 날, 퇴근길에 신호를 잘못 받아 곳을 지나게 되었다. 나는 문득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아파트 구석구석에 붙어있는 얄팍한 좋은 기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이곳이 아픈 기억만 있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싶었다. 주차를 마친 뒤 아파트 입구 계단을 오르자 보이는 그곳. 그래도 조금은 반가울 줄 알았는데 음산하고 차가운 공기만 맴돌았다. 그냥 나갈까 고민했지만 예전 우리 집이 보고 싶었다. 우리 세 가족이 살던 작은 집. 빠른 걸음으로 우리 집 베란다가 보이는 뒤쪽으로 향했다. 1층부터 차례로 시선을 올렸다. 1층… 2층… 3층… 4층… 5층… 저기다. 601호. 베란다에는 화분 몇 개가 덩그러니 나와 있었다.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엄마가 베란다에 나타났다. 엄마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빨래를 털어 널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불러봐도 엄마에게 닿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엄마의 모습을 지켜봤다. 엄마는 빨래를 다 널고서 베란다 창살에 기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초여름의 저녁 날씨를 온 감각으로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표정은 홀가분해 보이기도, 슬퍼 보이기도 했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41살의 엄마는 눈물겹게 어렸다. 어린 엄마는 누구도 구원해주지 않는 긴긴밤을 보내고 있었다. 깊은숨을 몰아쉬는 엄마를 바라보며, 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가 이 시간을 버텨내길 작게 소망는 것뿐이었다.




엄마가 삶을 버렸던 이곳,

그리고 다시 삶을 붙잡은 이곳에서 지금의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해사하게 웃는다. 그 웃음은 엄마에게 무척 잘 어울려서 눈물이 난다. 그 웃음은 너무 따뜻해서 자꾸만 보고 싶다. 그 웃음을 봐야 사는 맛을 느낀다. 마는 11살에도, 지금도 나를 살게 한다.


부탄가스 묶음을 살 돈이 없어 하나만 사서 돌아오던,

우편함에 꽂힌 독촉장을 보고 짙은 울분을 삼키던,

아이들이 키우던 햄스터가 죽자 화단에 무덤을 만들,

나무젓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무덤에 꽂던,

햄스터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자며 손을 모으던,

그러면서도 6층 가장자리 집 베란다에서

삶의 마지막을 려보던 엄마는… 나의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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