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숙제 뭐였더라?’ 뒤적뒤적 업무일지를 확인한다. 오늘은 8단원의 두 번째 시간이다. 그럼 영어 단어 3번씩 써오기를 검사하는 날이지. 나는 숙제를 좋아하는 선생님이다. 숙제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언어 교육에 숙제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 언어에 자주 노출시키는 게 나의 임무이므로 하루에 10분만 투자하면 술술 해낼 수 있는(아이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숙제를 매 시간 내주고 있다. 이제 4학년 2반 어린이들이 올 시간이다. 책상 줄을 맞추고, 앞 반 어린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지운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Welcome!’이라고 인사하며 수업을 시작한다. 앞문을 지나면서부터 아이들은 숙제 이야기로 여념이 없다. ‘야 너 숙제했어?’ ‘오늘 단어야, 문장이야?’라며 말이다. 내 얼굴을 보면 숙제가 생각나나 보다. 교실에 앉아 간단한 찬트와 노래를 부른 뒤 드디어 숙제 검사 시간이 왔다. ‘지금부터 숙제 검사할게요. 숙제 요정들 나와서 도장받아 가세요.’ 이때 어린이들은 아래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1번 유형. 숙제를 해와서 여유로운 아이들. 이 유형은 10번 숙제를 내면 9번을 완수하는 성실형 아이들이다. 숙제를 알림장에 스스로 메모하고, 기한이 오기 전에 미리 숙제를 끝내 놓는 모습은 그들이 11살이라는 것을 잊게 할 정도. 어른인 나도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잘 해내는 걸까? 나이를 떠나 그들을 존경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런 학생들이 반의 몇 퍼센트나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할까? 놀랍게도 꽤 많다. 약 70~80% 정도. 11살 어린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성실하고, 더 치열하며, 인생에 최선이다. 그러나 그들도 가끔 실수를 하는데 그건 바로 친구와의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다. 내가 가끔 숙제 검사를 잊은 날, 그들은 아쉬운 마음에 ‘선생님 숙제 검사 안 해요?’라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다. 그렇게 2번, 3번 유형 친구들에게 큰 원성을 산다.
2번 유형. 숙제를 안 해와서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 이 유형은 숙제를 안 해왔다는 사실에 몹시 불안해하면서도 숙제를 안 해오는 모순을 지니고 사는 녀석들이다. 특히 이 유형은 교사를 현혹시키는 데 아주 능하다. 숙제 검사 시간이 다가오면 갑자기 울상이 되어 교탁으로 걸어 나온다. 그러고 나서는 ‘선생님… 주말 동안 가족들이랑 멀리 캠핑을 갔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숙제 못 했어요. 정말 죄송해요.’라며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가끔은 캠핑에서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자세히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어디로 캠핑을 갔으며, 어떤 메뉴를 먹었고, 동생이 얼마나 칭얼거렸는지까지. 하지만 절대 속아선 안 되지. 이 숙제는 무려 5일 전에 내준 숙제란 말이다. 주말을 제외하고도 숙제를 할 수 있는 날은 3일이나 더 있었다고! 이처럼 아주 다양한 핑계로 선생님을 현혹시키는 유형이다. ‘선생님… 유인물을 가방에 넣어놨는데 없어졌어요.’ ‘선생님… 유인물을 동생이 찢었어요.’ ‘선생님… 엄마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유인물을 버렸어요.’ 그들의 가방에는 유인물을 갈아버리는 파쇄기가 있는 걸까, 엄마와 동생은 항상 유인물 실종 용의자가 된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나에게 많은 의문을 남기는 그들이다. 한때는 그들의 눈빛에서 진정성을 느껴 넘어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나는 어엿한 5년 차이기에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다음번에는 꼭 해오세요.’라며 숙제 확인란에 X라고 표시할 뿐이다.
마지막 3번 유형. 숙제를 안 해와도 태연한 아이들. 아. 생각만 해도 다시금 나의 혈압을 올리는 기특한 존재여. 이들은 숙제를 안 해왔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지 않는 별난 녀석들이다. 숙제를 못 해온 핑계를 대지도 않고, 숙제 검사까지 남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써서 간절함을 보이려는 의지도 없다. 어떤 날은 숙제를 하고도 본인이 안 한 줄 알고 노트를 숨기는 날도 있었다.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 어린이를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4학년 2반의 민준. 사실 3번 유형은 70명 중 민준 한 명뿐이다. 민준은 10번 숙제를 내주면 10번 안 해오는 신기록을 경신한 친구이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써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로 민준의 노트를 펴보면 가슴이 추를 매단 듯 마음이 묵직하고 답답해진다. 노트를 순서대로 쓰지 못해 뒤죽박죽 단원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또 대충 붙여놔 떨어져 버린 유인물도 한 가득이다. 민준은 숙제만 안 해오는 것이 아니다. 수업 시간에 욕을 중얼거리거나 반복적인 소리를 내 친구들의 화를 돋운다. 참다 참다못해 손을 들며 ‘선생님 박민준 또 이상한 소리 내요!’라고 울화를 터뜨리는 주변 아이들. 수업 시간에 적어도 3~4번은 이런 일이 벌어진다. 민준은 어쩌다가 이렇게 별난 아이가 되었을까.
민준은 학습 더딤을 겪고 있다. ‘D-O-G’ 강아지를 영어로 발음할 줄 모르고, 여전히 ‘b’와 ‘d’를 구분하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붙잡고 가르치려고 하면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버린다. 도망간 민준을 쫓아 복도를 뛰다 보면 어마어마한 현타가 찾아온다. 공부를 하기 싫어 도망가는 어린이를 붙잡아 가두고, 영어 알파벳을 가르치는 게 나의 일이라니. 일의 기쁨도, 슬픔도 아닌 죄책감이 나를 좀먹는다. 여러 모습으로 보아 민준은 ADHD일지도 모르겠다. 민준에게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기한에 맞게 숙제를 하는 일은 달리기를 못하는 아이에게 달리기 1등을 하라는 요구처럼 멀고 아득한 것일지도 모른다. 8살부터 11살까지, 뭐 하나 쉬운 곳 없는 학교에서 민준은 어떻게 살아왔을지. 그 삶을 그려보면 민준이 조금 애틋해지는 것이었다. 민준이 지나온 4년의 시간이 온통 불행했으면 어떡하지. 모난 돌이 정을 맞느라 흠집이 잔뜩 났으면 어떡하지. 그리고 그 흠집 중 내가 낸 것은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깊을까. 하며 말이다.
민준이 쉬는 시간에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준을 맞았다. 무슨 일인고 하니 민준이 음악 교실에 있는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영어와 음악을 같이 가르치고 있기에 교실도 영어 교실, 음악 교실 두 개를 사용하고 있었다. 민준은 거의 처음으로 가만히 서서 나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맑은 눈으로 내게 온 진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참 곤란한 요구였다. 내가 가르치는 3학년, 4학년 어린이들은 모두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몇 번 열어주었다가 4명이 동시에 피아노를 쳐 어마어마한 소음을 만들다가 건반 하나를 고장 낸 일이 있었기에 음악 교실을 개방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끝에 민준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민준이 숙제 4번 해오면 민준이만 살짝 열어줄게. 대신 이건 너랑 나의 비밀이야.’라고 말이다. 민준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아주 약간의 기대로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수업 시간에 만난 민준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려 몸을 꿈틀대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숙제 4번만 해오면 되는데 굳이 집중까지…’ 그러나 민준은 스스로 생각한 도리가 있는지 수업 시간에 집중하려 무던히 애를 썼다. 그리고 숙제를 알려주는 시간이 오면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민준에게서 의지를 발견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민준은 그로부터 4번의 숙제를 완수한 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음악 교실에 가자는 듯 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웃는 얼굴로 열쇠를 들고 음악 교실로 향했다. 내가 열쇠로 문을 여는 동안 민준이는 문 앞에서 빼꼼 발을 들고 피아노를 바라봤다. 문이 열리자마자 민준은 피아노 앞으로 뛰어가 연주를 시작했다. 민준은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연주했다. 나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민준은 소근육 발달이 늦고, 집중력도 낮은 편이니 겨우 동요 한 편 연주하지 않을까라는 못난 예상이 뒤집힌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민준은 어느 곳에도 집중을 빼앗기지 않고 연주에 몰입했다. 가끔 틀리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다시 연주를 이어갔다. 민준이의 성격처럼 무척 빠른, 엇박의 연주였으나 가볍고 경쾌하고 담백했다. 넋을 놓고 듣다 보니 픽사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가 떠올랐다. 피아노와 한 몸이 되어 무아지경에 빠진 조 가드너의 얼굴과 민준의 표정이 겹쳐 보였다. 그러자 민준이 지구에 올 준비를 하며 찾은 마지막 불꽃이 피아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까지 이르렀다.
내가 선율의 바다를 유영하는 동안 민준의 연주가 끝났다. 연주를 마치자 민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피아노 뚜껑을 쾅! 닫더니 인사 하나 없이 멀리 도망가버렸다. 나는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으나 그보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 곡 더 연주해달라고 말하려 했는데… 언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냐는 듯 와다다 뛰어가는 민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바스락거렸다. [summer]를 연주하는 동안 어느 때보다 평화롭던 민준의 얼굴만 떠올랐다. 민준에게 학교 생활은 애초에 적응할 수 없는, 그러나 도망갈 수도 없게 설정된 프로그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민준은 아무리 노력해도 ‘bug’라는 닉네임 말고는 얻을 게 없다. 그 닉네임을 달고 다니면 아무리 사냥을 해도 경험치가 안 쌓인다. 어떤 길드에서도 가입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저 홀로 맵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셧다운 시간을 기다리는 것만이 민준의 일과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민준에게는 이 프로그램이 별난 것 아닐까? 민준은 별난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별나지고 있을 지도.
- 글에 언급한 학년, 반, 이름은 모두 사실과 관계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