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걷다

걷기의 인문학

by 종이벌레

읽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걷는 사람으로서의 삶의 자세가 만들어낸 상호 의존적인 결과물이기는 하겠지만 내가 걷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특히 산을 걷게 되면서부터 세상과 삶에 관한 아름다움의 범주가 무한대로 넓어지고 의식은 다채로워졌다.

산을 걷는다는 것은 지금 살아있는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최고의 순간들이기에 나를 변화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최적의 매개체가 된다.

“나의 내면이 풍요롭지 않다면 풍경의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소로우의 문장을 더듬어가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의 최고봉. 한라산을 걸었습니다.

풍부하고 눈부신 자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에 부족한 어휘력의 한계를 또다시 깨닫게 된다. 인간의 언어로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그들의 황홀한 광경을 조건 없이 대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받은 시간이라고, 지금, 현재를 오롯이 즐기면 그만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림청선정 <대한민국의 100대 명산>을 걸으면서 26번째의 산이 한라산이 되었다. 100대 명산이 아니더라도 국토면적의 63프로가 산림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 아직 못 걸어본 산들이 무수히 많은데 한라산을 걸음으로 눈이 높아져버린 것이 아닌지 우려가 좀 되는 상황. 그렇더라도 숲을 걷는다는 것은 나의 삶에서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영원한 탯줄이 되었으니 어느 곳이나명산이라 생각하면서 잠깐의 흔들림도 흩어져버렸다.


내가 오래도록 건강히 살았으면 하는 욕망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면 되도록 아름다운 지구의 땅을 지칠 때까지 걸어보고 싶은 바람에서다. 걷는 사람으로 하나뿐이었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감히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