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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May 22. 2023

에베레스트산의 신비, 누가 최초인가?

전설로 남은 등반가들


               에베레스단순한 산이 아니다.


정복의 이상이자 목표다. 에베레스트는 인간 심리를 뒤흔들어 자신만을 향하도록 하는 이기적인 산이다.


강력한 구심력이 작동하는 신비의 장소. 8848m의 지구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신화 속에 묻힌 전설을 품고 있다.


이 산이 허락한 인류 최초의 등반가는 누구인가. 숱한 음모론의 안개를 걷어내고 위태로운 빙하의 크레바스를 조심스레 지나면서 탐색의 여정을 시작해 본다. 전설로 남은 등반가들을 찾아서.



 1999년 영국은 대단히 들떠 있었다. 그해 온 국민의 시선은 텔레비전에 집중되고 있었다. 새 천년 밀레니엄 시대를 코앞에 두고 의외의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오래전 내면에 묻혀 사라져 버린 추억 한 토막이 뉴스를 통해 소환되고 있었다. 언론은 그 사건을 호기심의 부지깽이로 사정없이 뒤적거려 놓았다.


산을 태울만한 뜨거운 화젯거리로 변모되는 건 시간문제였고. 뉴스는 전기에 감전되듯 삽시간에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역사의 시곗바늘을 백 년 전쯤으로 되돌려 보자. 1920년대 영국은 황혼에 다다른 제국이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쇠락한 기운이 역력히 나타났다. 세계의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낡은 집은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늙은 제국 역시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는 사회적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국면 전환용 이벤트 말이다. 뭐 좋은 게 없을까.



역사는 딱 맞는 한 사람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가 바로 조지 맬러리(1886 ~1924)였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이가 대뜸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서겠다며 등산화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었다.


 성공하면 개인적 영광이요 조국엔 빛나는 영예를 안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맬러리를 유혹했을 것이다.


그가 에베레스트로 떠나기 앞서 뉴욕 타임스와 기자 회견을 가졌다. 왜 산에 가냐고 기자가 물었다.


"산이 저기 있으니까 because it's there". 이 한 마디는 산악계의 전설적 명언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맬러리는 비장한 각오로 마음의 칼을 갈고 있었다. 마치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듯 산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기상이 서려 있었다.


     나는 정상에 오를 거라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더 이상 내가 패배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산이 나를 기습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조지 맬러리 George Malary>

             1924년


슬프게도 설산의 주인 에베레스트는 그를 받아 주지 않은 것 같다. 산을 흔들만한 기개가 넘치고 용광로처럼 끓어오른 열정이 있다 해도 주인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인생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이런 일들을 인생의 도처에서 쉽게 발견한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가까운 세컨드 스텝을 지나던 중 조지 맬러리는 영원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에베레스트 정상정복에 나섰던 한 젊은이의 야망은 이렇게 종말을 고하고 말았. 이제 전설로 남은 사건의 현장을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1924년 6월 8일 맬러리와 동행자 어빈은 아침 일찍 제 사 켐프를 출발하여 역사 속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12시 50분쯤에 정상을 불과 240m 남겨 놓고 있었다.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죽기 전에 정상에 섰을까. 아주 잠깐이라도 발밑의 웅장한 봉우리를 굽어보는 영광을 누렸을까.


자신들이 세계의 정상에 올라선 최초의 인간이라는 만족감을 맛보았을까".

     <피터 퍼스트브룩의 '그래도 후회는 없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 때 의외로 담담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섰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득하고 낯설었다. 인간이 자랑스럽게 쌓아 올린 온갖 문명이 그곳에서는

작고 사소한 점으로만 존재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우주의 한 점 미세한 먼지일 뿐인 인간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끝없는 도전 >


 그것이 정말 알고 싶다. 박영석 대장이 누린 정상 체험을 조지 맬러리가 최초로 맛보았는지 말이다.


 박영석 대장 또한 훗날 맬러리의 길을 따라 죽음의 계곡으로 사라지긴 했지만. 그의 말대로 인생이란 이토록 보잘것없단 말인가.


어쨌든 맬러리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시도는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 출신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는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금의환향했고 졸지에 세계최고의 인물들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가였을까. 과연 맬러리가 아니고 힐러리가 맞단 말인가.


의문의 씨앗은 아직도 수수께끼의 덤불 속에 남아 있다. 맬러리는 정상을 올라가다 죽었을까 아니면 정상에서 내려오다 죽었을까.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의심의 동굴에서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호기심의 연기를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역사적 진실공방 게임은 호기심의 불에 기름을 뿌리기 시작했다. 속성상 가만있을 인간들이 아니지 않은가.


밀레니엄을 코앞에 앞둔 1999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본다. bbc 다큐멘터리 제작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비와 스텝들을 동원하고 에베레스트로 떠났다. 오직 맬러리가 남긴 해묵은 숙제 하나를 풀기 위해서였다.


 맬러리냐 힐러리냐의 문제를 놓고 이제는 반드시 결판내고야 말겠다는 일종의 역사적 사명감. 뭐 그런 게 작용했을 터였다.



수색팀들이 정상 부근에서 맬러리의 시신이 발견했다. 칠십 년 넘게 에베레스트에 누워있던 맬러리는 동결 상태로 피부는 밀랍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몸은 자일에 묶인 채 미라와 같이 굳은 채로 말이다. 시신 밑에는 그가 직접 쓴 편지가 아직도 수신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은 물론 세계가 경악했다. 홀연히 영원 속으로 사라져 신비 속에 묻힌 산 사나이. 조지 맬러리. 그가 이런 모습으로 돌아와 후대의 인류를 만나보리라 누가 예측이나 했으랴.


 맬러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해서 그 자체가 정상 정복의 증거물은 되지 못했다. 아니 의혹만 더 커졌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등정 후냐 등정 전 사고냐를 놓고 여론이 뱀의 혀처럼 갈렸음은 당연한 일일 터.


희망과 상상, 추측 등에 기대어 사람들은 진실의 생살에다 의심의 군살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이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라인홀드 메스너가 나섰다. 그는 맬러리가 등정했던 루트를 따라 정상 정복에 나섰던 것이다.


 또한 맬러리가 당시 착용한 등산 복장과 장비들을 감안하여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의 답안지엔 무어라 적혀 있었을까.


     "나는 단독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후에야

      맬러리와 어빈이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정황들에 비추어 그들이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는 쪽으로 해석한다 해도 말이다.

      단지 안타까운 일은

      그들이 자신들의 실패담을

      설명할 수 있도록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 라인홀드 메스너의 에베레스트의 미스터리 >

      


이와 동시에 현존하는 산악계의 전설은 인류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에다 방점을 찍는데 인색하진 않다. 모든 상황에 비추어볼 때 맬러리와 어빈은 정상 정복에 실패했음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한 마침표인가. 그렇다. 이제 에베레스트의 전설은 비비고 기댈 조그만 언덕조차 남은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라인홀드 메스너는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고 지나간다. 그의 한 마디는 마지막까지 묘한 반향을 일으키며 감정을 울렁이게 만든다.


"나는 맬러리가 소머벨에게 빌렸다는 카메라가 하루빨리     발견되기를 바란다.

그 안에 있는 필름이 제대로 현상되기를 바라면서.


 그렇지만 그 사진들 속에 맬러리의 정상 등정의 모습이 들어있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카메라 없이도 나는 그의 마지막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실패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 라인홀드 메스너의 에베레스트의 미스터리 >


 전설은 전설로, 신비는 신비로 그냥 남아 있는 게 더 좋다. 조지 맬러리의 에베레스트 등정기는 전설로 남아 있다.


 에베레스트는 눈 속에 그의 행적을 고이 묻어놓고 신화로 인을 쳐 놓은 지 오래다. 그러니 어찌 열어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제 그들이 에베레스트에서 영면할 수 있도록 보내주어야 한다.


에베레스트를 누가 최초로 등정했는가. 맬러리 아니면 힐러리?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답은 이미 라인홀드 메스너가 주고 있다. 히말라야 높은 고봉들을 지나 우리에게 강력한 되울림을 주고 있는 그 메시지 말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 그는 실패조차 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 진리는 멀지 않다. 무엇이든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시도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이는 인생 전반에 걸쳐 적용되어야 할 교훈이 아닐까 싶다.


조지 맬러리는 죽었으나 그는 아직도 이 교훈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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