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가 귀여운 손글씨체라면 또 어떨까요? 러브레터가 고딕체라면 어떨까요?
한 번쯤 상상해 보셨나요? 러브레터에 딱딱한 고딕체가 쓰이면 진심 어린 고백보다는 통지서 같고, 반대로 보고서에 아기자기한 손글씨체를 쓰면 차분한 분석이 아니라 속마음을 담은 편지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이런 엉뚱한 상상 속에서 저는 “서체가 생각보다 보이는 것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구나”라는 걸 자주 느낍니다. 왜 이렇게 중요한 걸까?라는 질문도 덩달아 떠오르고요.
서체는 정보요소이자 디자인요소로써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특히 UX/UI나 편집디자인에서는 그래픽보다 폰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디자인 요소 중 하나인 ‘서체’가 왜 중요한지, 어떤 원리로 디자인의 분위기를 결정하는지, 그리고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팁까지 함께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위의 보고서 예시와 같은 맥락으로 같은 문장인데도 폰트만 바꿔도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셨을 거예요. 예를 들어 “사랑해”라는 말을 굵직한 고딕체로 쓰면 마치 명령문처럼 딱딱하게 보이고, 손글씨체로 쓰면 금세 따뜻하고 다정한 고백으로 변해요.
이처럼 폰트는 단순히 글자를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디자인 전체 분위기를 규정하는 시각적 언어예요. 타이포그래피 심리학에서는 글자의 형태가 감정과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해요. 각진 획은 엄격함과 권위를, 둥근 획은 친근함과 부드러움을 전달한다고 얘기한답니다.
또한 폰트는 가독성과 분위기라는 두 축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가독성은 정보를 얼마나 쉽게 읽히게 하는가의 문제라면, 분위기는 글자가 가진 시각적 뉘앙스예요. 디자인에서는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만 좋은 결과물이 나오죠. 가독성만 강조하면 밋밋해 보이고, 분위기만 강조하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폰트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옷차림이나 표정과도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폰트를 고르느냐가, 디자인의 첫인상과 전체 무드를 결정짓는 핵심 선택이 되는 거죠.
서체(Typeface)는 글자의 전체적인 디자인 스타일을 뜻하고, 폰트(Font)는 그 서체 안에서 크기, 굵기, 스타일(Regular, Bold, Italic 등)까지 포함한 실제 파일 단위를 말해요. 예를 들어 “나눔 고딕”이라는 서체가 있다면, 그 안의 Bold, Light, Italic 각각이 폰트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서체는 시각적 영역에서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작동해요. 하나는 가독성, 또 하나는 분위기예요. 가독성은 말 그대로 얼마나 편하게 잘 읽히는가에 관한 문제예요. 글자가 아무리 멋져 보여도 읽기 힘들면 정보 전달은 실패한 거예요. 반대로 분위기는 글자가 주는 시각적 인상이에요. 각지고 단단한 글꼴은 엄격함을 주고, 둥글고 가벼운 글꼴은 친근함을 주죠.
그래서 서체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는 단순히 ‘글자’만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의 언어를 빚어내는 작업을 하게 돼요. 획의 굵기, 두께, 자간(글자 사이 간격), 행간(줄 사이 간격) 같은 디테일이 모여 글자의 성격을 완성하거든요. 예를 들어 자간이 좁으면 긴장감 있고 밀도 높은 느낌을 주고, 행간이 넓으면 여유롭고 안정된 무드를 만들어줘요. 결국 폰트는 글자에 옷을 입히듯, 같은 내용을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꿀 수 있는 도구인 셈이에요. 서체의 형태를 나누는 가장 기본적으로 개념은 세리프(Serif)와 산세리프(Sans Serif)예요. 세리프는 획 끝에 장식이 있는 서체로, 전통적이고 신뢰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요. 그래서 신문이나 책, 공공기관 자료에 많이 쓰이죠. 반대로 산세리프는 장식 없이 깔끔한 형태라서 현대적이고 단순한 인상을 주고, 디지털 화면이나 스타트업 브랜드에서 자주 활용돼요.
또한 서체의 형태는 둥근 형태의 글꼴은 부드럽고 친근해서 캐주얼 브랜드나 어린이 대상 디자인에 잘 어울려요. 반대로 각진 형태의 서체는 단단하고 차가운 인상을 줘서 전문성, 권위, 혹은 강한 에너지를 표현할 때 효과적이에요. 곡선이 많은 손글씨와 같은 형태는 여성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폰트를 쓰느냐에 따라 감정의 톤이 완전히 달라지는 효과를 가지고 와요.
서체의 형태가 가장 많이 활용되고 고려되는 영역 중 하나는 브랜드 톤 앤 매너이랍니다. 브랜드가 가진 성격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혹은 전문적인지에 따라 폰트 선택이 달라져야 하죠. 예를 들어 ‘친근한 생활용품 브랜드’가 지나치게 각지고 딱딱한 폰트를 쓰면 브랜드가 주고 싶은 인상과 괴리감이 생겨요. 반대로 금융이나 법률 같은 분야에서 지나치게 귀여운 서체를 쓰면 신뢰성을 잃게 되겠죠. 그래서 폰트는 단순히 예쁜 글자를 고르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번역하는 중요한 언어 되기도 한답니다.
실무 디자인 작업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반복되는 서체와 관련한 오류들이 있어요. 이런 실수들은 대부분 ‘서체의 본질’을 놓치거나 ‘사용 환경’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서 생기고, 결과적으로 디자인의 전달력이 떨어지게 만들어요.
첫 번째는 실무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오류는 디자인의 의도를 무시한 채 서체를 선택하는 것이에요.
많은 경우 서체를 고를 때 “예뻐 보인다”거나 “트렌디하다”는 이유로만 결정해 버리는데, 이는 디자인의 본질에서 벗어난 접근이에요. 사실 서체 선택은 반드시 디자인의 주제, 타겟층, 그리고 콘셉트를 먼저 정의한 뒤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제가 전문성과 신뢰성을 강조해야 하는 보고서라면 안정적이고 단정한 서체가 필요하고, 타깃이 어린이 거나 캐주얼 브랜드라면 둥글고 친근한 서체가 더 적합합니다. 또 감성적인 캠페인이라면 손글씨풍 서체가 어울릴 수 있지만, 금융이나 법률 같은 보수적인 산업에서는 오히려 신뢰를 해칠 수 있죠.
즉, 서체는 디자인 기획이 세운 방향성과 긴밀히 연결되어야 합니다. 주제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타깃은 누구인가, 그리고 디자인이 어떤 분위기와 태도를 보여주고자 하는가를 명확히 정의하고 나서야, 그 의도를 가장 설득력 있게 시각화할 수 있는 서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서체는 개인적 취향의 산물이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되어야 하는 디자인 언어라는 점이 중요해요.
두 번째는 매체별 특성을 무시하는 경우예요.
서체는 그 자체로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보이는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인쇄물에서 쓰이는 서체와 웹 화면에서 쓰이는 서체는 요구되는 조건이 다르고, 모바일 앱이나 작은 기기에서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죠. 예를 들어 인쇄물에서는 종이 질감, 잉크 번짐, 해상도 차이에 따라 획의 굵기나 자간이 다르게 보일 수 있고, 화면에서는 해상도와 픽셀 렌더링에 따라 같은 글자 크기라도 선명도가 달라집니다. 특히 모바일 화면처럼 작은 사이즈에서는 지나치게 얇은 서체는 잘 읽히지 않고, 큰 전광판이나 LED 스크린에서는 세밀한 디테일이 무의미하게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매체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서체를 모든 환경에 동일하게 적용하면, 어느 매체에서는 의도와 달리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전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서체 선택은 항상 ‘이 글자가 어디에서, 어떤 크기로, 어떤 사람들에게 읽힐 것인가’라는 맥락적 질문을 동반해야만 합니다.
세 번째는 서체 수의 과잉 사용과 통일성 부족이 있어요.
흔히 초보 디자이너들이 빠지는 함정이 바로 ‘다양한 서체를 쓰면 더 풍부해 보이겠지?’라는 생각인데,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습니다. 제목에는 한 가지, 본문에는 또 다른 것, 캡션이나 강조 문구에는 또 다른 서체를 쓰다 보면, 전체 디자인의 시각적 언어가 제각각 흩어져 버리게 돼요. 이렇게 되면 독자는 ‘어떤 정보가 중심인지,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지고, 브랜드나 프로젝트의 메시지가 흐릿해집니다. 사실 서체는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오히려 한두 개의 서체 패밀리를 중심으로 일관된 구조를 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에요. 굵기(weight), 크기(size), 스타일(italic, bold 등)만으로도 충분히 위계를 줄 수 있고,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자연스럽게 부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좋은 디자인은 다양한 서체의 나열이 아니라, 제한된 서체 체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질서와 균형에서 탄생합니다.
네 번째는 강조와 대비의 오용, 혹은 과도한 사용이에요.
디자인에서 대비(Contrast)는 시선을 끌고 위계를 만드는 중요한 도구지만, 지나치게 사용하면 오히려 연결성을 잃게 돼요. 예를 들어 제목은 지나치게 굵고 크고, 본문은 너무 얇고 작은 경우 두 영역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디자인이 하나의 톤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강조는 분명 필요하지만, 강조가 많아질수록 강조되지 않은 나머지가 상대적으로 힘을 잃게 되죠. 또 얇은 서체(Thin, Light)는 세련된 분위기를 줄 수 있지만, 작은 크기에서는 가독성을 해치고, 반대로 굵고 장식적인 서체는 작은 크기에서 글자가 뭉개져 읽기 어렵게 됩니다. 결국 강조와 대비는 디자인 전체의 조율 속에서 적절한 리듬감을 만들어야 하고, 서체의 두께와 크기 변화는 메시지를 명확히 하기 위한 도구일 뿐 ‘과시적인 장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니어 디자이너 시절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이 서체가 이 디자인에 어울리는지”를 판단하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예쁘고 멋져 보이는 것과 실제 디자인에 잘 맞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죠. 결국 이런 판단은 프로젝트의 성격과 목적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야 가능하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이런 감각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에요. 여러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해 보고, 다양한 디자인 레퍼런스를 꾸준히 보면서 경험치가 쌓여야 비로소 판단 기준이 생기게 된답니다.
그렇다면 단기간에 이 기준을 세우고 인사이트는 만드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서체 선택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준을 머릿속에 두고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효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
공공/기관 디자인 → 신뢰성과 명확성
공공기관 안내문, 정부 보고서, 정책 자료처럼 불특정 다수가 읽는 문서는 무엇보다 명확해야 합니다. 장식적인 개성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죠. 따라서 가독성이 높고 안정적인 세리프나 산세리프 계열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해요.
추천 서체 : 나눔 고딕, 본고딕(Noto Sans KR), kopub 바탕체, 프리텐다드(Pretendard)
체크포인트 : 장시간 읽어도 눈의 피로감이 적은가 / 작은 글자 크기에서도 판독이 잘 되는가? 문서의 신뢰성과 어울리는 단정한 인상을 주는가?
브랜드/스타트업 디자인 → 개성과 차별성
브랜드나 스타트업의 디자인에서는 다른 브랜드와 구별되는 개성이 중요해요 수많은 경쟁 속에서 눈에 띄려면, 브랜드가 가진 톤 앤 매너를 잘 반영하는 독창적인 서체를 선택해야 해요. 다만 개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칫 신뢰성을 잃을 수 있어요
추천 서체 : 배민체, 빙그레 체, 에스코어 드림, 나눔 스퀘어 네오, G마켓 산스
체크포인트 : 로고/슬로건 서체와 본문 서체가 서로 잘 어울리는가? / 개성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일관성을 유지하는가? / 신뢰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독창성이 발휘되는가?
이벤트/캠페인 디자인 → 주목성과 감정 자극
이벤트나 캠페인은 짧은 순간에 눈길을 끌고 감정을 자극해야 하는 디자인입니다. 강렬하고 굵은 서체, 혹은 실험적인 디스플레이 서체가 자주 쓰입니다. 다만 장식성이 너무 과하면 메시지가 왜곡될 수 있으니 행사 성격에 맞는 톤 조율이 중요해요.
추천 서체 : 엘리스 DX 널리 체, 티머니 둥근, HS산토끼체, 여기 어때 잘난 체, 문경감홍사과체
체크포인트 : 멀리서도 한눈에 읽히는가? / 글자 형태 때문에 메시지가 묻히지 않는가? / 행사 성격(축제, 캠페인, 학술행사 등)에 맞는 형태인가?
UX/UI 디자인 → 사용자 경험과 가독성
앱이나 웹 화면은 특수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짧은 시간 안에 정보를 빠르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거나 개성 강한 서체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화면 크기와 해상도, 다양한 디바이스 환경을 고려했을 때 단순하고 명확한 산세리프 계열이 가장 많이 선택된답니다.
추천 서체 : Apple SD, Roboto, Noto Sans KR, Pretendard
체크포인트 : 작은 크기에서도 판독성이 유지되는가? / 다양한 브라우저·OS·해상도에서 표현이 일관적인가? / UI 구성 요소(버튼, 라벨 등)와 본문이 톤 앤 매너를 유지하는가?
서체 선택은 “예쁘니까 이거!”가 아니라 프로젝트의 목적과 환경에 맞는 옷을 골라 입히는 일이에요.
공공은 단정한 정장, 브랜드는 개성 있는 데일리룩, 이벤트는 반짝이는 파티룩, UX/UI는 편안하고 명확한 실루엣처럼요. 중요한 건 멋보다 맥락·매체·일관성이에요.
주니어 디자이너 시기 때는 이 기준이 특히 흔들리기 쉬워요. 그러나 시안을 여러 번 갈아보고, 서로 다른 서체를 같은 문장에 입혀 보면서 비교하다 보면 점점 판단의 기준이 생겨요. 어느 순간 “아, 이 디자인엔 이 서체지!” 하고 감이 찾아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선택 전 3초 체크만 해봐요.
이 서체가 표현하려는 톤과 맞나요?
실제 노출 매체에서 충분히 잘 읽히나요?
전체 시안과 일관된 체계를 유지하나요?
오늘도 디자인에 맞는 옷을 한 벌 고른다는 마음으로, 더 똑똑하고 더 신중하게 서체를 선택을 해보면 좋겠어요. 그 꾸준함이 쌓여서, 더 설득력 있고 눈에 띄는 시안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저게 맞을까… 이게 맞을까… 아, 아무것도 안 맞는 것 같으면 어떡하지?”
폰트 고를 땐 늘 이런 고민이 따라붙는 것 같아요. 이 시안에는 뭐가 어울릴까 싶다가도, 새로운 걸 쓰고 싶지만 마감은 코앞이고, 저작권이나 찾는 번거로움 때문에 결국 늘 쓰던 걸 쓰게 되곤 해요.
근데 사실 이거, 다들 똑같이 겪는 고민이더라고요. 검색창에 ‘폰트 추천’, ‘자주 쓰는 폰트’ 같은 글이 넘쳐나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완벽한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냥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괜찮은 선택”을 해보는 것도 좋아요. 어차피 그 과정이 쌓여서, 언젠가 자연스럽게 “아, 이 디자인에는 이거지!” 하는 감이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세운 기준과 인사이트로 하나씩 선택하고 부딪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