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

첫날

by 도린


한국 방문 첫날, 나는 대학 동아리 시절 3년 선배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서울에 연고가 없다 보니, 이 선배 댁은 내게 서울 본가나 다름없다.

이번에도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주셔서 어찌나 고맙고 또 송구하던지, 반가운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일단 유심칩부터 챙겨 넣은 뒤 선배의 차에 올랐다.

마치 고무줄을 늘였다 줄였다 하듯 곡예에 가까운 운전 실력으로 인천대교를 지나 올림픽 대로와, 한강대교를 거쳤다.

비행기 안의 좁아졌던 시야가 고속도로 위에서 순식간에 확 열리더니, 초고층 빌딩들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가 또 멀찍이 밀려났다.

밴쿠버의 잔잔한 풍경에 익숙한 터라, 서울이란 거대한 도시 그 자체가 또 다른 탄성을 자아냈다.

국회의사당의 둥근 돔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63 빌딩의 금빛 외벽과 송도 스카이라인이 반짝였다.


며칠 전까지 콩 볶듯 드글드글하던 무더위가 한풀 꺾여 이제야 살만 하다니, 밴쿠버의 알싸한 공기와 대비되는 습도 높은 한국날씨에 숨이 찼지만, 그 말만으로도 서서히 땀구멍이 반쯤 닫히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식사 자리에는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함께했던 한 살 위 직속 선배 부부도 합류했다. 한국도착 보고 겸 통화를 하다가 술상무 대신 밥상무 자격으로 함께 저녁을 먹자고 졸랐더니 아내와 함께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한강 야경을 자랑하는 거실에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오랜만의 회동이 펼쳐졌다.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자연스레 부부 사이의 앞담뒤담이 오가고,

대화가 무르익자 사람 사는데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등장했다.

바로 물가 상승.

커피, 빵, 과일, 심지어 모기 퇴치 비용까지 치솟는 현실 앞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사는 캐나다나 한국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팍팍한 장바구니 인심과 치솟는 생활비에 성토가 이어졌다.

“우리 집은 모기 메트 비용이 한 달에 십만 원이 훌쩍 넘어.” 불만이 섞인 3년 선배가 던진 한마디에, 부지런히 움직이던 내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안방, 작은방, 거실, 부엌까지 총 아홉 개.

하루 두 번씩 갈아 끼우니, 하루에 열여덟 장이 필요하다.

메트 한 장에 200원 꼴이니 하루 3,600원, 한 달이면 십만 원을 가뿐히 돌파한다는 계산. 그것도 전기료를 제외하고 순전히 모기메트 값으로,


70~80년대 연탄을 떼던 시절, 주로 김장철이 시작되는 늦가을에 연탄을 수백 장씩 들여 겨울을 따뜻하게 낫다. 그런데 유독 벌레에 공포심이 많고 특이체질로 모기 알레르기가 있는 선배는 5월 초부터 10월 말, 어떨 땐 11월 초까지 모기메트를 설치해 둔다고 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곤 하지만 모기를 쫓는 비용이 연탄 연료 비용에 비할 바 아니지 않은가. 격세지감이란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 싶었다.

“연탄보다 비싼 모기!”—그저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모기가 이렇게까지 경제를 흔들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기내에서 허기를 달래지 못한 채 도착한 터라

맛있고 푸짐한 저녁을 배불리 먹고, 달콤한 차까지 곁들인 담소는 한국 방문 첫날을 한층 빛나게 했다.

나뭇짐을 해와 군불을 지피던 어린 시절을 지나,

아침저녁 연탄을 갈던 젊은 날을 넘어,

이제는 모기 메트를 갈아 끼우는 시대라니—

세월의 변화가 주는 속도감이, 급물살을 타고 발전하는 AI 하고도 친구 먹자고 할 판이다.


식사와 담소를 끝내고 직속 선배 부부가 자리를 일어서며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만년필과 메모 노트를 선물로 내밀었다. 나의 권유로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 선배는 만년필로 종이에 필사하는 것을 좋아해 만년필 선물을 많이 한다고 했다.

모기와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건네받은

우아하고 감성충만한 선물이라니!

나는 감동 반 웃음 반으로 선물을 받아 들고,

창밖으로 일렁이는 한강 야경을 잠시 만끽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다음 방문 때는 캐나다산 메이플 시럽 대신 몸값이 귀해진 홈메트 한 박스를 선물로 들고 와야 되나.'

팍팍한 세상, 따스한 환대에 감사하며

한국방문 첫밤이 깊어간다.





비행기 타기전 먹은 프렌치후라이와 커피
한국방문 첫날 선배님 집에서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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