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둘째 날

by 도린

예비 사돈과의 만남



“사돈과 땅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돈 사이는 쉽지 않고, 때로는 조심스러운 관계라는 뜻일 터이다. 둘째 날의 과제는 사부인이 되실 분을 만나는 것이었다. 한국 방문 일정 중 꼭 인사를 드리고 한복까지 맞출 계획이었다. 열한 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몸은 지쳤고, 시차적응 난조로 밤새 잠을 설쳐 정신은 몽롱했지만 긴장과 설렘이 교차했다.


사실 예비 사부인과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다. 5월 초 엄마 소천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의성까지 먼 길을 조문 와 주셨다. 그때의 고마움이 마음에 오래 머물러, 이번 만남이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서울 지리에 어두운 나를 생각해, 예비 사돈께서 간밤 머물던 선배 집 앞까지 와 주셨다. 다소 격식을 차리고 조신한 척해야 해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처음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예비사돈께서도 조곤조곤 말씀을 이어가 주셔서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보리굴비와 육즙 가득한 떡갈비, 김가루를 넣어 무친 청포묵,

비트로 곱게 물들인 나박김치, 구수한 된장찌개와 누룽지까지—한 가지, 한 가지가 이렇게 맛있을 일이냐구~
예비사돈 앞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고 젓가락이 자꾸만 바빠졌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카페에 들렀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달콤한 조각 케이크를 곁들이며 또다시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대화는 어느새 웃음으로 번지고, 사소한 일상과 자녀 이야기, 그리고 나이 들수록 깊어지는 부모 된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낯설 줄 알았던 만남이 생각보다 따뜻하고 편안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가 저물고 있었다. 다행히 고향으로 내려가는 막차 버스를 동서울터미널에서 미리 예약해 두었기에 마음은 한결 여유로웠다.


그러나 터미널로 향하는 길은 끝없이 막혀 있었다. 마치 거대한 강줄기가 흐르지 못한 채 고여 있는 듯, 도로 전체가 차량들로 빼곡히 들어차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였다.

예비사돈은 미안해했고, 나는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끝없는 정체 속에서 결국 의성행 버스를 포기하고 조카가 있는 구미로 가기로 했다.


서두를 필요 없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 그제야 마음의 조바심이 누그러지고 서울의 저녁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해 질 녘 서울의 황혼, 노을빛을 머금은 해가 빌딩 숲 사이로 기울며 한강을 물들이고 있었다. 교통 체증 덕분에 버스 대신 기차를 타게 되었으니, 오히려 더 운치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이런 예기치 못한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집과 일터를 벗어나 일상에서 일탈로 이어진 오랜만의 자유가 은근히 마음을 흔들어 주었다.

버스 대신 기차, 계획 대신 우연, 피곤 대신 자유 한 스푼을 장착하자 버스를 대신한 기차 여행이 특별한 보너스로 다가왔다.


KTX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서울의 야경을 관망하며 마중 나와 있을 조카를 만나고 내일 큰언니를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좌충우돌의 하루였지만, 따뜻하고 인자하신 예비사돈을 만나 한국 방문 둘째 날의 임무를 기분 좋게 완수했다.



P.S. 막히는 길에 발 동동 구르던 우리를 위해,
KTX 표를 예매해 카톡으로 보내준 오늘의 구원투수—밖사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