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날
추석 준비 ―
“전복을 장에 내다 팔면 백환이지만,
내 새꾸 입에 들어가면 천환 같어.”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속 한 장면이다.
해녀로 평생 물질을 하다 숨병이 걸린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 귀한 전복을 딸에게 먹이며 건넨 말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드라마 속 모녀의 모습이 어린 시절의 추억과 너무 닮아 티슈를 옆에 끼고 눈물을 찍어 가며 보았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명절은 단순히 제사를 지내는 날이 아니었다.
‘평소에 먹지 못했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방앗간에서 불린 쌀을 빻아 와
동부콩으로 소를 만들어 온 가족이 송편을 빚고,
호박전, 육전, 고구마 전을 구우면 참기 힘들 만큼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온 집 안에 가득 퍼졌다.
돔베기와 조기를 찌고, 소고기를 두드려 간장 양념을 발라 지지며 엄마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졌다.
작은 아부지는 짚으로 놋제기를 반짝이게 닦으시고 아부지는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지방을 쓰셨다. 사과, 배, 대추, 밤을 쳐서 제기에 정갈히 올리는 일은 막내삼춘의 몫이었다.
나는 할매와 아부지 눈을 피해 정지(부엌) 주변을 서성이며 침을 꼴딱 삼켰다.
그럴 때면 엄마가 슬며시 부엌으로 날 불렀다.
막 부친 전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주시며 마치 당신이 배부른 양 뿌듯해하셨다.
“엄마, 아부지나 할매한테 들키면 우짤라꼬…”
내가 걱정스레 속삭이면,
엄마는 특유의 너스레로 나를 안심시켰다.
“죽은 조상님도 이해하실 끼라.
그라고 내사, 죽은 조상보다
내 새꾸 입에 맛난 거 들어가는 게 더 좋다.”
이민후 해마다 밴쿠버에서는 달력 속의 명절만 지나갔다.
송편도 전도 없는, 그저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동기간들과 통화로 명절 인사를 나누는 날쯤으로 흘러갔던 추석.
오랜만에 한국에서 맞이한 추석을 위해 아침부터 음식장만으로 동분서주했다. 고사리, 부지깽이, 고비나물을 물에 불려 놓고 야외 개스불 위에는 도가니와 사골이 펄펄 끓었다. 배추와 무로 나박김치를 담그고, 명절이면 빠질 수 없는 전과 갈비찜 준비가 이어졌다. 음식을 장만하며 내일이면 엄마 아부지 산소에 성묘 갈 생각을 하자 소환된 어린 시절 엄마의 부엌!
미소 짓던 엄마의 얼굴이, 뜨끈한 전을 입에 넣어 주던 엄마의 손길이, 철 지난여름 바닷가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이민생활 26년 차, 나의 음식솜씨는 여전하다. 추석 음식을 장만하며 오랜만에 추석다운 추석을 맞이할 생각에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