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날
오공주 여행 2
세월을 따라 변해온 도시, 대구!
대학 시절을 거쳐 8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여 어설픈 신혼생활을 시작했었고,
아픈 첫째를 키우며 특수학교 교사로 웃고 울던 날들을 보냈고,
캐나다로 떠나기 전 반년을 또 머물렀으니 나는 반쯤 대구 토박이나 다름없다.
그 도시만큼 나이 들고 변해온 나와 옛 친구들,
이번에는 오롯이 여행자의 시선으로 대구를 마주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따뜻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오는 풍경들.
거의 새벽녘에 잠이 들었는데도 일찍 눈이 떠졌다. 우리는 숙소에서 엎어지면 닿을 거리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둘째 날의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작년 제주 여행에선 방주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각자의 삶을 살다 얼마 만에 함께 드리는 예배인가!
누구랄 것도 없이 준비찬양 첫 소절에 모두가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웃음을 참다못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오공주 뒷좌석엔 권사님쯤 되는 분과 부부가 앉아 경건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권사님의 찬양 목청이 마치 기차 화통을 삶아 드신 듯, 힘차고 거침없었다.
최상의 데시벨과 심연의 깊은 파동이 어우러져 울려 퍼지는 압도적인 찬양 소리에, 우리 모두는 경기를 할 뻔했다.
옆자리의 오기가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웃음을 참고 있는데 ‘고음불가 부부’의 급발진 찬양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참느라 그야말로 진땀을 흘렸다. 그날의 예배는, 경건함보다 웃음이 앞섰던 배꼽 빠지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이후, '권사님과 고음불가 급발진 찬양’은
우리의 여행 내내 대화마다 양념처럼 떠올라 맛깔스러운 고명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배꼽까지 저당 잡힌 예배를 드리고 나서 우리는 '공주 품위 유지비'를 지참하고 당당하게 서문시장으로 오픈런했다.
일요일이라 문을 늦게 여는 가게들이 있어 처음엔 좀 썰렁했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로 북적이며, 시장은 활기로 가득 찼다. 물건을 고르고, 사고, 길거리 음식을 맛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공주들의 눈과 입도 쉴 틈이 없었다.
어묵 하나, 땅콩빵 시식, 생과일주스 한 잔으로 기력을 보충하며 우리는 시장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나는 지급받은 ‘공주 품위 유지비’로 아이들 잠옷을 한 벌씩 사고, 눈길이 자꾸 머물던 롱원피스 하나를 골랐다.
타국에 사는 나를 위해 친구들이 원피스에 어울리는 구두와 재킷을 골라 주겠다며 시장을 한 바퀴 다 돌고 시장과 그리 멀지 않은 백화점 매장을 샅샅이 훑었다. 십만 원 쓰기 프로젝트를 미완 수했다고 알뜰함을 자랑했건만, 나는 원피스 값의 몇 배가 넘는 나름 고가의 재킷과 구두를 사고 말았다.
가성비 좋은 옷 하나 샀을 뿐인데 집까지 새로 바꿀 기세였으니 본말전도가 따로 없지 아니한가!
백화점 아이쇼핑과 지하상가 탐험으로
서너 시간을 훌쩍 보내도 지칠 줄 모르는 오공주들.
빌딩 밖으로 나오니 어둑해진 거리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하루의 피로와 허기를 말끔히 씻어줄 연막창 집으로 향했다.
돌솥밥에 커피와 달달한 빵으로 채운 점심은 온데간데없고, 노릇하게 구워지는 막창과 된장찌개,
서비스로 나온 막국수까지 폭풍 흡입하며 다시 한번 웃음꽃을 피웠다.
배가 부르니 피로가 몰려왔지만, 저물어 가는 여행의 마지막 밤이 아쉽기만 했다.
내년에 갈 여행지를 의논하며 아쉬움을 달래 보았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 오공주들,
오기
예상치 못한 준비물로 모두를 편하게 해주는,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은 귀요미.
(이번엔 익스텐션 전기코드를 챙겨 와 덕분에 모두들 폰 충전을 편하게 했다.)
수기
늘 운전으로 여행을 총괄하며 글솜씨까지 겸비해,
여행 때마다 블로그 수기를 작성하는 재주꾼.
(이번엔 브런치에 올릴 내 글로 대신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없기를,)
정이
모르는 꽃과 풀이 없을 정도로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 땅콩과 단감으로 푸짐한 여행을 만들어 주는 언니. (참고로, 직접 농사지은 거라 더 특별했다).
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맛집 검색과 길 안내를 척척,
두루두루 솔선수범하는 센스쟁이 언니.
(언니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도린
친구들과 언니들 덕분에 늘~~
날로 먹는, 자칭 미모 담당, 타칭 유머 담당 뻥쟁이.
이상, 맛집 투어도, 쇼핑도, 예배도, 무엇보다 함께 웃고 공감할 오공주들이 있어 이번 여행도 굿, 굿,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