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날
부산여행 1
인터불고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오공주 대구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인공 폭포수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나는 동대구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밴쿠버에 사는 베프와, 밴쿠버에 살았던 베프.
반가운 얼굴들이 부산역에 마중 나와 있었다.
낯선 땅에서 친구로 연을 맺은 지 24년,
가치관과 지향점이 비슷하고 말이 잘 통하다 보니
척박하고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가장 큰 의지가 되어준 친구들이다.
오공주들이 나의 지나온 삶을 지금도 비추어주는 ‘현재완료진행형’ 같은 인연이라면,
밴쿠버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민의 시간 속에서 지금도 함께 써 내려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진행형’의 인연이라 할 수 있다.
고단한 삶 한가운데서 서로를 붙들어 주었고,
지금도 서로의 하루를 함께 채워 가고 있으며,
앞으로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함께할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삼인방이 밴쿠버에 함께 살던 시절에는 번개도 수시로 치고, 단거리·중거리·장거리 여행도 참 많이 다녔다.
밴쿠버 근교는 물론이고 미국 오레곤 코스트까지, 차를 몰고 훌쩍 떠났던 우리, 수없이 많은 추억과 해프닝이 있었다.
이제 한 친구는 역이민해 노모를 돌보며 수년째 병구완 중이다. 그래서 한국 방문 때마다 이렇게 다시 함께 하는 시간이 더없이 반갑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뵐 겸 한국을 찾은 친구, 그리고 이제 엄마를 떠나보낸 나.
우리는 각자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이 부산 여행을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미리 도착한 친구들과 처음 향한 곳은 오륙도였다. 오륙도를 바라보니 조용필 오빠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떠올랐고, 얼마 전 큰언니와 함께 다녀온 거제와 통영의 바다도 기억 속에서 파도를 타고 밀려왔다. 부슬부슬 내릴 듯 말 듯한 안개비가 먼바다를 감싸며 오륙도의 운치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동해와 남해가 갈라지는 분기점 위에 선 오륙도.
예순을 바라보는 지금,
나는 인생의 어느 갈림길에 서 있는 걸까.
일을 줄이거나 슬슬 마무리해도 될 나이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둥지를 지키며
고단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
이번 여행이 서로에게 잠시 숨 고를 쉼이 되고,
조용한 격려가 되어 주길.
채워지던 상념들은 철썩이는 파도에 부서져, 하얀 포말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마음 한켠이 서로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오륙도의 풍광에 흠뻑 젖어보았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을 뒤로하고 우리 삼인방은 첫날밤을 보낼 숙소로 향했다.
쿠폰 활용의 대모 격인 친구가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하니, 압도적인 뷰가 눈앞에 펼쳐졌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장쾌한 풍경을 따라, 부촌으로 급부상한 도시답게 쭉쭉 솟아오른 고층 빌딩들의 불빛,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행렬, 그리고 멀리 광안대교까지 가늠되는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그 장면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침에 먹은 브런치가 과했는지 더부룩한 속을 달래려 시원한 복지리로 저녁을 마친 뒤, 해운대로 향했다. 아슴한 밤빛과 빌딩 숲에서 번져 나오는 불빛이 밤바다에 일렁였다. 그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어둠 속에서도 잔잔히 이어지는 수평선이 가슴을 서늘하게 적셨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백사장을 거닐며 무념무상, 파도 소리만 가슴으로 담았다.
대학생활 막바지,
부산의 한 특수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던 시절
처음으로 찾았던 해운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해운대 밤바다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여울져 오는 밤바다에 어리는 불빛,
부서져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우리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부산에서의 첫날밤은 길고도 따뜻하게 흘러갔다.
창밖엔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