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지나고 맞이하는 12월 26일, Boxing Day. 이름만 들으면 권투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날입니다.
중세 영국, 귀족이나 부유한 가정에서는 1년 동안 자신을 섬긴 하인들에게 --선물 상자(Christmas Box)--를 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돈, 작은 선물, 옷이나 생필품이 담겼고, 하인들은 크리스마스 당일 열심히 일한 뒤 다음 날 상자를 받으며 작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교회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성탄절 동안 교회에 놓인 헌금함, Alms Box를 12월 26일에 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바로 이 ‘Box를 여는 날’에서 Boxing Day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캐나다에서 Boxing Day는 전국 공통의 공식 휴일은 아니지만, 주(Province)마다 적용이 다르고 관행적으로 공공기관이나 은행 등은 문을 닫고 쉽니다. 그럼에도 이날을 가장 분주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 대규모 세일입니다.
블랙프라이데이에 버금가는 폭탄 세일이 쇼핑몰을 가득 채우고, TV나 노트북, 청소기, 스마트폰 같은 전자제품의 할인 폭이 특히 큽니다. 의류와 가구, 스포츠용품까지 대폭 할인되며, 요즘은 온라인 쇼핑이 중심이 되어 Boxing Week, 나아가 Boxing Month Sale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때는 새벽부터 줄을 서고, 인파가 몰려 크고 작은 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집에서 편안하게 화면 너머로 쇼핑을 즐기는 풍경이 더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Boxing Day는 단순히 쇼핑하는 날만이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의 여운을 이어 여유롭게 쉬는 날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이나 친구, 지인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날이기도 합니다. 캐나다에서는 NHL 하키 시즌이 한창이라,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스크린 앞에서 응원하는 모습도 흔합니다.
원래 Boxing Day는 베푸는 날,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는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쇼핑과 할인 축제로 자리 잡았지만, 꼭 필요한 물건을 조금 더 가벼운 가격으로 구입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의 여운을 이어 작은 사랑을 나누는 날로 보내는 것도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한 상자에 담겨 우리 곁에 선물처럼 와 주었듯이, Boxing Day에는 그 따뜻한 여열을 조금씩, 천천히 흘려보내는 것이지요.
항상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지내지만, 제가 하는 일의 특성상 연말은 정말 몸이 두서너 개쯤 되었으면 싶을 만큼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24일부터 28일까지, 짧지만 소중한 오일 간의 휴식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Boxing Day가 이어지는 연말, 크고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고, 함께 있음으로 충분히 따뜻하고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봅니다. 바쁘게 달려온 한 해의 끝자락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몸과 마음이 가볍게 쉬어갈 수 있기를요.
그리고 꼭 필요한 물건 하나쯤, 혹은 마음에 오래 담아 두었던 무언가를, 한 해 동안 수고한 나 자신을 위해 골라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