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보내며

나의 10대 뉴스

by 도린


1.

일을 하는 중에 카톡 알림이 울렸다.

멈추지 않는 설사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둘러 표를 구해 한국으로 갔다.

욕창과 설사로 의식 없이 누워 계신 엄마를 닦아드리고, 기도해 드리고 찬송을 틀어 드렸다.

옛 추억도 더듬어 보고 실없는 이런 이야기, 저런 넋두리로 엄마 곁을 지켰다.

큰언니 집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에 만개했던 영산홍이 사그라질 무렵,

엄마는 하늘나라로 훠이, 훠이 날갯짓하며 날아가셨다.


2.

그래도 장례식은 슬픔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수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왔던 조카들과 화해했다.

그 만남은 엄마의 가시는 길에 가장 큰 선물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큰 슬픔 속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주고 간 큰 위로 이기도 했다.


3.

개인적인 상실의 시간을 지나, 세상은 또 다른 소식을 전해왔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재선 되었고,

캐나다는 투표 전까지 보수당의 지지율이

자유당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막대한 관세 정책과

캐나다를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겠다는

망발에 가까운 발언들이 오히려 민심을 흔들었다.

흐름 속에서 마크 카니(Mark Carney)가 수상으로 선출되며 자유당의 집권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윤**씨가 탄핵되고 이재명 당선인이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느닷없는 12·3 계엄 이후, 험산준령 같은 파도를 넘어 마침내 온 국민이 이루어낸 결과라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재외동포로 살아가지만 이번만큼은 북미와 고국의 정치 소식에 유난히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던 일 년 여의 시간이었다.

친한 친구와 못 마시는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이럴 땐 치맥 파티가 국룰이니까.


4.

기쁜 소식은 국경을 넘어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에 살던 친구의 딸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신부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유학을 왔고,
신랑은 3대째 북미에 정착해 살아온 홍콩계 중국인이었다.
홍콩식과 아르헨티나식, 그리고 웨스턴 스타일이 섞인 결혼식이었다.
하객만 350명,
식사비만 억대에 이르는 성대한 예식이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밴쿠버답게,
서로 다른 문화의 결혼 풍경을 한자리에서 엿볼 수 있었던 날이었다. 이 결혼이야기는 다음에 더 다루어 보고 싶다.


신랑, 신부 이름이 새겨진 쿠키와 음식을 서빙하시는 분들

5.

일상 속에 찾아든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베프와 함께 뮤지컬 **〈라이언 킹〉**을 보고 왔다.

왜 북미 박스오피스 1위인지 단번에 납득이 갔다.

장대한 스케일과 무대 퍼포먼스가 압도적인, 인생 뮤지컬이었다.

내년 3월, 베프와 큰딸과 함께 보러 갈 또 다른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라이언킹 브로셔,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길

6.

6월 중순, 나에게 또 하나의 풍경이 펼쳐졌다.
베프의 권유로 브런치 작가로 글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글과 댓글로 소통하게 된 작가님들이 생겼다.
‘작가’라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성실 하나로, 꾸준히 글을 써왔다.
좋은 글에 고무되고
각자의 색깔로 창작하는 분들과의 만남은
삶의 또 하나의 생기가 되어주었다.

꾸준히 써온 나의 브런치

7.

제일 좋은 계절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엄마 없는 한국의 첫 방문이었다.

오랜만에 추석 음식을 장만해 명절을 보냈다.

엄마 장례식에도 오지 못했던 조카를 만나

오해를 풀고 서로를 토닥였다.

대상포진으로 고생하시던 시어머니도

많이 회복되셔서 다행이었다.

고향 친구들, 대학 동아리 선배님들,

큰언니와 형부와 조카, 교회 동기들, 밴쿠버 친구들과 이박삼일씩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돌 스케줄 못지않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멋진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은 아직도 꿈만 같다.


한국방문 때 들렀던 양양, 부산, 통영의 바다


8.

가족이라는 이름의 장면도 하나 더 추가되었다.

자녀 없는 상견례를 가졌다.

짧은 만남이라 입 빠른 소리가 될지 모르지만,

예비사위의 인성이 왜 그렇게 좋은지 설명서가 필요 없었다.

예비사돈 내외를 뵙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녀없는 상견례

9.

신앙의 자리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남편의 교회 사임 후, 집 근처 중국인 영어 예배에 참석했었다.

그러다 여러 사정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던 지인들과 작은 예배 공동체를 다시 시작했다.

예배를 사모하는, 순수하고 발랄한 모임이다.


10.

그리고 한 해의 끝자락.

일 년에 한 번, 막내가 차리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결혼 전, 싱글로서 마지막으로 준비하는 식사라

괜스레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온 가족이 감동했던 첫째의 센스 있는 선물에

뒤이어진 윷놀이가 즐거움을 더했다.

가족룩으로 산 옷을 맞춰 입고 인증샷도 남겼다.

크리스마스 만찬
푸들같은 페밀리룩 입고 찰칵

한 해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어제 맞이한 것 같은 2025년, 잘 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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