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날
양양에서 서울, 서울에서 대구
빠르게 변화하고 분화되어 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물리적인 거리나 힘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걸
이번 한국 방문이 말해 주었다.
가족, 친구, 선배, 후배와의 만남,
그리고 함께한 여행의 시간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느끼고 사유하며
가슴 한켠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이번 양양 여행은
‘영광합창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학창 시절이, 그때의 노래가
다시 얽히고 이어져
새로운 인연으로 되살아난 시간이었다.
보리밭, 청산에 살으리라, 철새, 남촌,
그리운 금강산 같은 아름답고 수려한 가곡들,
보리피리, 새타령, 꽃 파는 아가씨, 인당수 같은
구성진 가락으로 애간장을 녹이던 민요곡들,
그리고 헨델의 메시아, 주의 영광 같은 대곡들이
사중합창으로 어우러질 때의
그 가슴 벅차고 짜릿한 경험은
오래도록 우리를 결속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여름방학이면 여러 교회와 중·고등학교를 돌며
지방 순회공연을 했고,
학기 말이면 학교 강당에서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무대가 끝나고 박수와 갈채 속에
늘 앵콜곡으로 불렀던 노래는 ‘주기도문’이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서너 시간씩 이어지던 정기 합창 연습.
전공 공부보다 더 열심히
합창에 몰입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알토 파트장을 거쳐
늘 웃음을 담당하던 친교부장이었다.
전국 대학 합창제에 참가할 때면
총장님의 특별 배려로
대형버스가 제공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 합창단들의
무대가 끝나고
두어 시간에 걸친 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그 시간,
승패를 떠나 하나가 된 웅장한 합창이 울려 퍼졌다.
“누구의 주제런가”
누군가 첫 소절을 시작하면
어느새 그리운 금강산이
사부합창으로 울려 퍼졌고,
이어 보리밭, 파랑새, 때로는 흘러간 가요들까지
합창의 묘미를 더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일터로 흩어져 살아가면서도
동문 합창제를 통해
그 인연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대구에서 서울,
서울에서 양양으로,
그리고 다시
양양에서 서울을 거쳐 대구로.
짧지만 밀도 깊었던 이박삼일의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남은 것은 풍경보다 사람,
그리고 마음이었다.
나를 환대해 주고 혼자로 두지 않았던
영원한 선배님들에게 감사한다.
풍부한 화수분처럼
늘 물심양면으로 풍성함을 나누어주는 화진 언니,
편안하고 구수하면서도
섬세한 따스함으로 챙겨주신 홍규 선배님,
총괄 책임으로 여행의 전반을 이끌며
운전까지 도맡아 수고해 주신 인석 선배님,
그리고 나의 영원한 옆지기에게.
말로 다 하지 못한 고마움은
따스한 포옹으로 대신하고,
헤어짐의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며 달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