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主顯節, Epiphany)

성찰

by 도린

주현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타나셨음을

기념하는 절기다.

전통적으로는 1월 6일이나,

나라에 따라서는

1월 2일부터 8일 사이의

주일에 지켜지기도 한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한 사건을 통해,
구세주가 특정 민족이나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드러났음을 선포하는 날이다.


이 절기는 성탄절보다 오래된 축일로,
예수님의 탄생뿐 아니라
세례와 가나의 혼인 잔치까지,
그분의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현현’을 함께 기억해 왔다.


보이지 않던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역사 안에 들어오신 사건,
성육신의 신비가
이 절기 안에 담겨 있다.


성탄절이 아기의 인성을 바라보게 한다면,
주현절은 그 연약함 안에

감추어진 신성을 보게 한다.
찾아오신 구세주를 넘어,
세상 앞에 드러나신

구세주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주현절은
과거의 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분의 드러남 이후,
어떤 삶이 세상 앞에

놓이게 되었는가를 묻는 절기다.


우리 또한 공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집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이웃이 되고
직장에서의 역할이 되며,
공동체의 얼굴이 된다.


공적인 삶은 늘 쉽지 않다.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어야 하고,
말 한마디와 태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향해 드러나야 할 신앙이
오히려 교리와 자신들만의 논리 안에
갇혀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빛이 되어야 할 믿음이 어둠의 경계가 되고,

공감하고 포용하던 모습은 희미해져

고집스러운 신념이 되어

판단의 잣대가 되는 순간들.


자신이 붙들고 있는 신앙과 신념이
사람을 품는 손이 아니라
정죄하고 가르는 도구로 작동할 때,
드러남은 복음이 아니라 폭력이 된다.


주현절은 그 지점을 조용히 비춘다.
공적인 신앙이란
옳음을 증명하는 태도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책임을 감당하는 삶임을.


그리고 그 빛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신앙인으로서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옳다고 믿으며 내세웠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앞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이 부끄러움은
자기혐오가 아니라
깨어 있음일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나 자신을 점검할 자리에
서 있다는 뜻이니까.


주현절의 빛은
완전한 사람 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는 사람,
그 부끄러움으로 다시 방향을 잡는 사람 위에
조용히 비춰진다.


주현절 이후의 시간은
부끄러움을 지우는 삶이 아니라,
그 부끄러움이 나를

더 낮은 자리로 이끌도록
허락하는 일상일 것이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앞서지 않더라도,
세상 한가운데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빛으로 남아 있는 삶.


그것이
주현절이 내게 남긴 가르침이며,
공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일 것이다.


동방 정교회라 불리는 오소독스 교회(Orthodox Church)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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