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덕담

by 도린

병오년!
붉은말의 해다.
말과 관련된 캘리그래피와 달력,
각종 상품들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스타벅스에 진열된 머그컵에도

붉은말이 달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힘차게 달리는 말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시원시원한 한 해를 기원하는
덕담들도 풍성하다.


말은 예로부터 귀족적인 동물로 여겨졌다.
단정한 체형과 윤기 나는 털,
빛나는 갈기와 당당한 걸음걸이.
아라비안 말처럼 우아한 품종들에는
‘귀족’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멋진 외모에

약 340도까지 확보된 넓은 시야,

시원시원하게 질주하는

시속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속도.

참으로 말에는

자랑할 만한 장점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말의 외관과 이미지에 부합하는

새해덕담들이 풍성하게

쏟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 화려한 장점들보다
말이 지닌 연약한 한 지점에 시선을 두고
병오년 새해의 덕담을
나눠보고자 한다.


말은
구토하는 기능이 없다고 한다.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다.
풀을 뜯는 순간에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며 먹이를 삼킨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목은 길고 단단하게
진화해 왔다.


위와 식도를 잇는 괄약근이 매우 강해
한 번 삼킨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말은
먹는 데에도,
달리는 데에도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자기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넘치면 스스로를 해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큰언니와 조카가 함께 운영하는
방앗간에는
‘강자’도 살고 있다.


늘 말을 키우고 싶어 하던
조카의 소원 성취 덕에
강자가 방앗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자리 잡은 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방앗간 손님들이나
내가 곁을 지나갈 때는
아무런 반응도 없던 녀석이
조카만 나타나면
아주 난리도 아니다.


히이이이잉—
푸허푸하—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쏟아낸다.


지난해에는 사상충 감염으로
수의사들마저
안락사를 권했던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조카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말의 질병에 관한 논문을 찾아 읽고
마부들의 조언을 구하며
끝내 강자를
다시 살려냈다.


가끔 조카와 형부 사이에
언짢은 일이 생겨도
“마부는 미워도 말은 이쁘다”며
강자의 목을 쓰다듬다 보면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곤 한단다.


말은 그렇게
사람 사이의 감정까지도
조용히 다독이는
존재다.


병오년, 말의 해.


말은 앞만 보고 달리는 동물이 아니다.
넓게 보고,
천천히 확인하며,
자기 속도로 간다.


힘차게 달리고 도약하되
과욕 부리지 않고
자기 속도에 맞게
오래가는 삶.


한 번 삼킨 것은
잘 소화할 책임이 있다는 것,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앞에서는
더 신중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 해의 덕담으로
마음에 담아본다.


강자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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