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와 바람소리가 잦아들 줄 모릅니다.
한때는 ASMR 삼아 틀어 두고
잠들던 소리였는데
요즘은 밤새 잠을 끊어 놓는
배경음이 되었습니다.
부스스 눈을 뜨면
새벽녘에 겨우 이어 붙인 잠의 여파로
몸 여기저기가 뻐근합니다.
일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유난히 바빴던 연말을 지나며
왼쪽 중간 손가락이 묵직하게 욱신거립니다.
마치 이 겨울 장마의 습기가
관절마다 스며든 듯합니다.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이곳의 날씨.
습기 없이 뽀송뽀송한 여름의 밴쿠버는
별명답게 천당 아래 999당이 분명합니다.
그 여름에 반해 이민을 왔지만,
10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이어지는 우기에는
‘레인쿠버’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실감하게 됩니다.
이곳의 겨울비는 쉬지도 않고 주야장천 내립니다.
밤새 내린 비와 몰아친 바람에
펜스가 쓰러졌다는 친구의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커피 한 잔을 수혈하듯 들이켜고
일터로 가기 위해 언덕에 세워둔 차로 향했습니다.
도로 전체는 부러진 가지들로 어지러웠고,
차 유리 앞뒤와 보닛, 트렁크 위에도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출근을 하니
이런저런 비 피해 소식이
스몰토크의 중심에 떡 하니 자리 잡았습니다.
습지를 메워 형성된 지대가 낮은
아보츠포드 시티 주변은
이미 상습적인 홍수 지역이 되었고,
아이 다섯을 둔 젊은 엄마가
쓰러진 나무둥치에 깔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이민 초기엔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이젠 호우처럼 굵고 사나워졌습니다.
우산 대신 후디에 달린 모자만 눌러써도
괜찮던 비였고,
주로 밤새 내리다 낮이면 그쳐
소강상태도 꽤 길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비의 양상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지구가 많이 아픈가 봅니다.
어느덧 초로의 입구에 들어선 나의 몸도
예전 같지 않다는 수식어가 붙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체력이 된 듯합니다.
비 오는 날이면 관절이 먼저 반응하고,
날씨 앱보다 내 몸이 더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점점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거칠어지는 기상 징후를 보고 있자니
이울고 있는 건 하늘만이 아니라
내 몸의 계절도 함께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웃음 끝이 씁쓸해집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비 와도 친구 먹고,
몸이 투정 부리면 달래 가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수밖에요.
무너진 친구의 펜스도 다시 세워지고,
나의 몸도 달래고 아껴 가며
또 한 번 분기탱천하여
레인쿠버의 일상을 살아가야겠지요.
콩이야 팥이야 하며
알콩달콩 비와 함께.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게, 씩씩하게
겨울을 건너시길.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