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특정한 미술관을 찾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한 도시에 머물며 그 주변의 미술관들을 둘러보기도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건축물들을 보기 위해 머물던 중에 호안 미로 미술관을 들렀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들었던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의 그림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아침, 챙겨 온 옷들로는 몹시 더워 반팔의 파란 원피스를 샀다. 옷이 가벼워진 만큼 기분도 가뿐해졌고 시티 투어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버스는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한 발 내딛는 순간 돌턱에 걸려 버스 아래로 고꾸라졌다. 넘어지는 찰나, 나는 슬로비디오처럼 쓰러지는 또 다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달려왔고 나는 괜찮다며 벌떡 일어났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사람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는 것이다. 미술관 앞에서 내려 걸어가며 버스 안의 시선들이 모아지는 듯 내 뒤통수는 더 뜨거워졌다.
나는 전시장을 도는 내내 까진 무릎과 화끈거리는 민망함 때문에 애꿎게 화가를 탓했다. “볼 것도 없는데 괜히 왔어.” 지금도 그곳에서 어떤 작품을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텅 빈 전시실 한편에서 입맞춤을 나누던 젊은 커플의 모습이 유독 예뻤고 미술관 내부로 들어온 천창의 빛과 완만한 동선, 낮게 자리한 흰빛 건물이 좋았다.
2025년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호안 미로 전시가 열렸다. 다른 미술관 일정 사이에 우연히 들렀던 전시였다. 전시장은 어두웠고 관람객도 많아 복잡했다. 그 어수선한 공간에서 나는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되었다. 달과 별이 떠다니는, 기교를 부리지 않은 그림들. 손자를 위해 그렸다고 전해지는 낙서 같은 그림들. 그 단순하고 선명한 선과 색이 소멸되어 가던 나의 순수성을 건드렸다.
호안 미로와 몇 번 얽히다 보니 이제는 조금 가까워졌다. 학창 시절에는 스쳐 지나쳤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당황스러움 속에 불편했던 화가. 넓은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던 하얀 수염의 노화가는 단순한 그림으로 내 삶까지 가볍게 만든다. 이제는 나도 그의 그림 앞에서 손자들 생각을 하며 웃고 있다. 별과 달 위에 은근슬쩍 올라타 파란 색면을 떠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