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게레스에 만난 달리

너의 상상력, 어디까지 갈 수 있니?

by 에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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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달리의 고향 피게레스(Figueres)에 내렸다. 이곳은 오직 달리 미술관을 찾는 이들만 오가는 듯했다. 기차에서 혼자 내렸고 걷는 내내 도시는 낮잠을 자는 듯 조용했다. 골목길을 따라 미술관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모여들어 거리는 북적였다.


20분쯤 걷자 멀리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 위에 솟아 있는 거대한 흰 달걀들의 행렬, ‘달리스럽다’는 말이 떠오르는 기묘한 미술관이었다. 그 안에는 달리와 그의 영원한 뮤즈 갈라가 함께 잠들어 있었다.


건물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특이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링컨의 대형 초상화였다. 멀리서 보면 링컨의 얼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아름다운 여성의 누드가 드러나는 반전은 무척 신선했다. 시점과 거리마다 전혀 다른 이미지가 나타나는 이 그림 앞에서 나도 앞뒤로 오가며 한참을 올려다봤다.


격식 있는 다른 미술관의 익숙함 대신, 장난기 가득한 작품들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설치와 영상 작품들은 ‘미술’과 ‘전시’라는 개념을 유쾌하게 비틀고 있었다. ‘이래도 고상한 체할 거야?’ 나는 어느새 작은 구멍에 눈을 들이대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몸을 구부려 다른 각도를 찾아냈다. ‘이건 뭐지?’ ‘이래도 돼?’ 혼란 끝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내 기억 속의 달리는 파리 지하철역에서 개미핥기를 산책시키던 사람, 늘어진 시계의 화가 정도였다. 과장되고 부담스러운 이미지. 그러나 작품을 하나씩 마주할수록 그 인상은 서서히 무너졌다. 늘어진 시계는 시간 속에서 녹아내리는 불안이었고 그의 과장은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건드리고 있었다.


웃기지만 묵직하고, 낯설지만 설득력 있는 작품들 앞에서 내 안에 굳어 있던 관습의 틀은 망치로 두들겨지듯 깨졌다. 그 자유로움 앞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고, 그가 한없이 부러워졌다.


달리는 하루 종일 무슨 공상을 하며 살았을까. 그의 머릿속은 어떤 색으로 가득했을까. 들어오기 전과 나갈 때, 마음의 간극이 가장 컸던 곳이 달리 미술관이었다. 조용한 소도시 분위기 속에서 엉뚱하고도 개성 있는 공간을 마주했기에 그 인상은 더 강렬했다.


‘사람은 어떻게 천재가 되는가.’ 그 비법이 궁금했던 달리가 말한다. “오, 살바도르, 진실을 알았구나! 바로 천재인 척하면 천재가 되는 것을.”


나도 이제부터 ‘달리인 척’하면, 달리스럽게 나만의 세계를 내보일 수 있을까. 내 안의 소용돌이를 주저 없이 드러낼 용기—그 기묘한 자유가,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오기를. 카이저수염의 코믹한 얼굴로 그가 보여준 것은 내 안의 질서를 흔드는 ‘기분 좋은 혼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