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냉동실에 남아 있던 식빵을 노릇하게 구워 와일드 블루베리 잼을 발랐다. 말랑한 반숙 달걀은 해바라기 그림이 있는 에그 컵에 올렸다. 식탁 위의 해바라기가 기억을 오래전 한 순간으로 이끌었다.
통유리로 된 입구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넓은 로비가 나온다.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중심 공간은 위로 시원하게 열려 있고, 계단은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구조 자체가 고흐의 그림처럼 꾸밈이 없어 보인다.
김상근 교수는 고흐의 그림 《론 강 위의 별이 빛나는 밤》과 실제 론 강의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가 론 강입니다.”
나 역시 고흐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조용한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작고 반듯한 교회 앞에 서서 혼잣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여기가 교회구나.”
평범한 강과 교회는 고흐의 시선 앞에서 다르게 보인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으며 그의 거칠고도 섬세한 표현을 단지 병력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나는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 강둑으로 기어올라온 사람처럼.”
인생을 깊이 들여다본 화가에게 세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의 광적인 열정과 지독한 집요함, 그것을 감내하는 처절함과 부러질 듯한 나약함에 끌려들어 갔다. 그곳에는 서툴렀지만 치열했던 서른일곱 살 고흐의 인생이 벽에 걸려 있었다.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이 해바라기의 고향은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이다.’ 스님은 그곳 기념품점에서 사 온 해바라기 씨를 암자에 심고 꽃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잔잔한 기쁨을 글로 남겼다. 마당 없는 집에 사는 나는 고흐의 그림이 있는 북마크 몇 개와 해바라기가 그려진 에그 컵을 사 왔다.
멀리서만 보던 화가의 자취를 직접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여행이 주는 입체적인 선물 아닐까. 오늘 아침 식탁 위의 해바라기 에그 컵은 법정 스님과 고흐, 그리고 나를 하나의 기억 속에 머무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