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함보다 한 걸음 더
친구 차를 타고 가던 중, 불쑥 말했다.
“이제부터는 용감하게 살아 볼 거야.”
운전하던 친구가 고개를 홱 돌리며 되물었다.
“더 이상 뭘 용감하게?”
“앞을 봐야지.” 웃으며 답했다.
그동안 얼마나 나 자신을 제약하며 여행해 왔는지 하나씩 꺼내놓았다. 익숙한 일상에선 무던히 감춰졌던 소심함이 여행 중에는 또렷이 드러났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여행은 그 떨림을 따라가는 일이다. 책과 그림 속에서 마음을 흔든 공간을 찾아, 그 작가와 화가의 시대와 철학을 마주하는 길이다. 일상의 권태와 현실의 압박에서 잠시 고개를 돌려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그렇게 체득된 여행의 경험은 사고의 경계를 허물고 지금을 살아내는 감각으로 남는다.
마음속에 오래 접어둔 장소에 가면 그곳만의 특유의 공기와 빛, 쌓인 시간과 그 틈새에 스민 이야기가 있다. 공간의 묘한 기운에 숨이 턱 막힐 때도 있다. 누군가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몰아친다. 나는 감정이 흐르는 대로 걷고 머무는, 그런 홀로 여행을 좋아한다. 외로움마저 즐길 여유도 생겼다.
혼자만의 여행에서 불확실한 순간을 줄이기 위해 몇 가지 규칙을 세웠고 그 덕에 불편하거나 당황할 일은 드물었다. 그중 꼭 지키려고 했던 것은 해가 지기 전 숙소에 돌아오는 일이었다. 다만 그렇게 포기한 야경은 잔상이 되어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왔다.
멋진 야경은 전망 좋은 호텔에 머물며 느긋하게 즐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아침 뷔페식당과 재즈가 흐르는 저녁 루프탑에서, 이른 아침의 신비로움, 붉은 석양의 침잠, 그리고 밤의 몽환적인 파르테논까지 하루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때는 다행히 모아 두었던 호텔 마일리지를 사용했다. 하지만 대부분 랜드마크가 보이는 좋은 호텔은 비용이 부담스러워 야경을 포기할 때가 더 많다.
피렌체의 아름다운 석양을 보기 위해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랐다. 르네상스의 기원이 된 도시 한가운데로 올리브빛의 아르노 강이 천천히 흐르고 붉은 기와지붕과 종탑들은 따뜻한 빛에 잠기고 있었다. 두오모의 종소리에 실려 서서히 붉어지는 단테의 도시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옆에서 와인병과 유리잔을 꺼내 들고 있던 두 여인은 통화를 시작했다. 그들은 전화 너머 누군가에게 눈앞의 광경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전하며 마지막에 “I love you”라고 사랑스럽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가벼운 흥분이 담겨 있었고 얼굴엔 들뜬 감정이 묻어났다. 그 완벽한 순간, 문득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생각났다. 석양의 마지막까지 보려면 나의 규칙을 깨야만 했다.
캄캄한 골목길을 30여 분 걷거나, 노선을 잘 모르는 버스에 올라타거나, 홀로 택시를 타야 했다. 어느 쪽도 마음이 선뜻 끌리지 않았다.
노을이 짙어질수록 마음속엔 초조함과 불안감이 번져갔다. 결국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를 되뇌며 붉게 물든 찬란한 도시를 등지고 언덕을 내려왔다.
석조 건물 사이로 언뜻 비추는 노을의 잔빛을 흘긋 보며 좁고 긴 골목을 터덜터덜 걸어 호텔로 돌아갔다. 내가 만든 소심한 규칙이 내 자유로움을 막아서고 있었다.
트래킹을 같이 하던 두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한 사람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또 다른 사람은 “아깝다!”며 자신이 그 장면을 놓친 듯 몹시 안타까워했다.
역시 두 사람도 나의 소심함이 꽤나 답답한 모양이었다. 어쩌다 녹화해 둔 두오모 종소리와 노을이 닿던 피렌체의 풍경을 보면 그 아름다움 사이로 머뭇거리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피렌체 언덕에서의 후회와 비슷한 망설임은 다른 여행에서도 가끔씩 찾아왔다. 그런 순간이 반복될수록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고집은 서서히 누그러졌고 다음 여행엔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소심한 여행자에게도 배짱이 천천히 자라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건 당연한 거지, 조심하는 거니까!”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나 행글라이더도 타보고 싶어,”
그러자 친구의 걱정이 툭 튀어나왔다.
“잘못하면 그거 타다가 심장 놀랄 수 있어.”
오래전 인터라켄에서 꼭 타보고 싶었지만 일행이 있어 아쉬워하며 돌아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도 그게 좀 아까워.” 내가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번 단호히 말했다.
“그때는 젊었고 지금은 무리야.” 나의 소심함을 이기려면, 엄마처럼 염려하는 잔소리쟁이 친구의 마음부터 달래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소심함에 갇혀 놓친 순간들은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친구의 말처럼 조심은 하겠지만 ‘쫄보 여행자’의 쭈뼛거리던 그 한 걸음,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내디뎌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