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고요를 찾아서

마크 로스코와 독대하다

by 에우름


지치고 뜨거웠던 여름날, 꿈쩍하기도 싫어 마루 바닥에 가만히 누운 채 작은 숨만 쉬고 있었다. 캐나다의 조용한 삶에 익숙해진 나는 석 달째 한국에 머무는 동안 어쩐지 사람들의 다정한 관심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인왕산 밑에 자리한 여행 작가의 집으로 숨어들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창동의 가파른 경사길에 접해있던 그 집은 1층이었지만 뒷면에는 창문이 없어 반지하의 느낌이었다. 주인장은 거실에 있는 큰 키의 몬스테라와 발코니에 있는 조팝나무의 물을 줄 것을 당부하고 트레킹 여행을 떠났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삼 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아래층에 주로 머물렀다. 창문이 없는 욕실에서 풍기는 서늘한 습기 냄새가 공간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너무 덥다!’ 내 몸은 캐나다의 건조한 날씨에 길들여진 걸까? 끈적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무기력한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핸드폰을 집어들고 다음 날 떠나는 당일치기 일본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래, 잠시 이곳에서 도망치자. DIC 미술관의 마크 로스코를 보러 가자.’


나리타 공항에서 전철로 30분, 치바현의 작은 역 '게이사이 사쿠라'에 도착했다.‘ 사쿠라’라는 역의 이름만으로 하늘거리는 하얀 벚꽃 아래 환하게 웃는 사람들이 그려졌다. 역 앞에는 한산한 분위기와는 달리 넓은 교차로가 있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작은 상점들과 낡은 간판,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 느릿한 흐름까지. 그 모든 것이 옛 시골 역을 닮아 있었다.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는 소박한 셔틀버스는 마을 길을 벗어나 철도 신호등을 지나고 간간이 보이는 일본풍 집과 가게들을 스치며 논밭 사이 시골길을 달렸다. 문득 레트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20여 년 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2004년 초, 대학 연구원으로 규슈 미야자키 대학에서 첫 외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여러가지 서툴었고 비가 뿌리는 흐릿한 날씨와 온돌이 아닌 히터로 난방되던 교직원 기숙사는 꽤나 추웠다. 하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벙거지 모자를 쓰고 오르던 공원, 학교 앞에서 마셨던 생맥주처럼 따뜻했던 순간들뿐. 시간이 덮어준 마법이다.



버스는 미술관의 매표소 옆 정류장에 멈췄다. 입구를 지나 그늘진 오솔길 끝에 말끔한 잔디밭과 넓은 연못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벚나무와 후박나무의 짙은 녹음이 그 둘레를 감싸고 있었다. 그 한쪽에 회색 벽돌의 원통형 건물이 단단한 기품으로 서 있었다. DIC 가와무라 미술관이었다. 어떤 이는 이 건물을 작은 성 같다고도 말하지만 나에겐 어릴 적 동네의 큰 쌀 창고가 먼저 떠올랐다. 절제된 외관에 우아한 조경이 더해지자 비로소 성으로 승격되는 듯했다. 수련 연못 위를 떠도는 백조들과 몇몇 관람객만이 그 고적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긴,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 더위에 누가 미술관에 오겠는가.


미술관에는 피카소, 모네, 램브란트, 앤디 워홀, 헨리 무어 등의 작품도 있었지만 내가 찾은 건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었다. 로스코에 대한 사랑은 고흐에게 느끼는 열정도 뭉크를 바라볼 때의 모성애도 아니다. 로스코의 거대한 그림은 말없이 나를 헤아려 주는 친구 같다. 로스코는 말했다. “나는 추상주의가 아니다. 색채나 형태 혹은 그 밖의 어떤 것과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비극이나 황홀감, 운명 등 인간의 근원적인 표현이다.” 어쩌면 그의 그림이 내 마음을 이토록 깊이 건드리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DIC 가와무라 미술관 홈페이지

긴 복도의 마지막에 로스코의 대형 그림 7점만 모아 놓은 ‘로스코 방’이 있었다. 칠각형의 그 특별한 방은 그림의 분위기에 맞춰 조도가 낮게 조정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길고 낮은 검은 가죽 의자 몇 개 놓여 있었다.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을 45cm 거리에서 감상하길 바랐다. 산만한 시선을 거두고 온몸으로 색채를 받아들이며 깊이 몰입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엉켜버린 시냅스의 스위치를 내리고 깊은 동굴처럼 명상에 잠긴다. 검은색 테두리 안에 어두운 붉은빛이 채워진 그림 앞에 앉았다. 두껍게 칠해진 검은 사각형은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견고한 프레임같았고 그 안의 색채는 내 가슴에 찰랑대는 붉은 우울을 담고 있었다. 조심스레 숨어있던 나를 불러내었다. 나와 로스코의 침묵의 독대였다. 관객도 없고, 그림을 지키는 여직원은 반듯한 자세로 졸고 있었다.


DIC 가와무라 미술관 홈페이지


한참을 로스코 방에 머문 뒤 미술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샤갈의 대형 작품이 한 점 전시되어 있었다. 화려한 색채의 화가 샤갈과 조용한 명상의 화가 로스코가 한 공간 안에 대표 주자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에 미소가 지어졌다. 스페인의 가우디 성당과 높은 산의 불일암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개성 강한 친구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두 화가가 주는 다른 평온 앞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날, 공간이 전해준 조용한 울림을 안고 미술관을 나왔다.


무더웠던 7월의 어느 밤, 땀과 여운에 취해 서울로 돌아왔다. 때마침 쏟아지는 소나기가 온몸을 식혀 주었다. 그날은 마치 다정한 친구를 찾아가 담담히 속내를 털어놓고 돌아온 하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