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만 다를 뿐입니다

'틀리다와 다르다'의 사이에서

by 에우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60대의 여성 연기자가 일상 에피소드를 가볍고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었다. 이야기 도중 ‘틀리다’라는 단어가 나오니 옆에 앉은 젊은 예능인이 환히 웃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선생님, 다르다지요.” 나이 든 연기자는 “아, 맞아요. 그래요. 다르다지요.”라며 작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무심히 TV를 보던 나는 그 연기자의 얼굴에 설핏 비친 당황스러움에 마음이 쓰였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던 복잡한 감정을 알 듯했다.


우리는 요즘 불리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다. 받아쓰기에 ‘하였습니다’가 아닌 ‘하였읍니다’를 써야만 빨간 동그라미를 받았다. 말의 쓰임새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빨간색 펜을 가리켜 파란색이라고 하면 틀렸다고 했다. 그리고 ‘너와 나의 의견이 틀리다’는 말은 ‘같지 않다’는 뜻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였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라고 한다. ‘그래, 바꾸면 되지.’ 생각하며 그때부터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도 초등학교 졸업생이 되었다. 이제는 ‘읍니다’대신 ‘습니다’를 능숙하게 쓰고 있다. ‘다르다’도 상황에 맞게 바르게 쓰려 노력한다. 혹시라도 ‘틀리다’라고 말할 때는 지적이 나오기 전에 ‘아차!’ 하며 다시 고쳐 말한다. 왜 '다르다'로 말해야 하는지도 잘 이해한다. 언어 규칙들을 더 체계적으로 하고 언어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도 정리해야 한다. 바뀌어야 했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처럼 달라지는 세상과 언어의 흐름에 각자의 속도로 맞춰가고 있다.


그 모든 변화를 이해하면서도, 만약 내가 그 연기자의 입장이었다면 그 순간은 꽤 씁쓸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쓰이던 말이 지금은 꼭 맞지 않다고 하여 즉시 고쳐야 하는 세상이 조금 야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연하다며 그 기준을 들이미는 사람들의 모습에 괜히 마음 한켠이 헛헛해진다.

나이 든 이들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느라 힘들고 버겁기도 하다.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 주춤거리는 노인의 손끝에서도 세상의 빠름은 비친다. 앱으로 예약하지 못한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 직원 앞에 줄을 선 어르신의 모습에서도 시대의 변화는 선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하려고 애쓰고 있다.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다르다’의 뜻을 담은 ‘틀리다’를, 오래된 말버릇처럼 불쑥 튀어나온 그 말을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봐주면 어떠한가? 어쩌면 ‘틀리다’를 지적했던 젊은 예능인도 그 말에 스며든 세월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정답이 하나뿐이라는 생각은 마음을 위축시킨다. 그런 점에서 ‘다르다’라는 말은 참 축복 같은 언어다. ‘다름’은 이 세상을 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시기와 개별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다를 수 있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틀릴 수도 있다. ‘다르다’라는 말에는 이미 그런 차이를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작은 실수쯤은 슬쩍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