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자리가 변했다

군중 속의 고독에서 가까운 관계 속의 고독으로

by 에우름

철학 교양 시간, 창가에 혼자 앉은 나에게 교수님이 갑작스레 질문하였다.
“학생은 언제 고독한가?”
학생들의 모든 시선은 있는 듯 없는 듯 있던 나에게 쏠렸다.


“으음… 지금요. 많은 사람이 있는 교실이지만 이 모두가 낯설게 느껴질 때요.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군중 속의 고독….”


교수님이 그 말을 반복한 뒤로 수업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수업 시간 내내 내 대답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난 후 몇몇 남학생들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고독해? 외로워?” 그 말에 나는 그저 미소 지었다.


스무 살의 학생이 어느새 예순 살의 할머니가 되었다. 그 사이에는 큰 사랑도, 깊은 상처도, 수없이 많은 날들이 흘러갔다. ‘할머니’라는 호칭이 낯설던 내가 어느새 그 이름에 익숙해졌고, 세월을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삶의 변화는 마음의 아림까지 바꾸어놓았다.


그사이 고독의 자리도 함께 변했다. 군중 속의 고독에서, 가까운 관계 속의 고독으로.


이제는 군중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갖는다. 낯 모른 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백색소음이 되었고, 엇갈리는 시선들의 틈으로 가볍게 호흡을 한다.


지금의 나는 오히려 맺어진 인연들 사이에서 더 고독하다. 사랑하는 이들의 말은 때로 사금파리처럼 박힌다. 친밀하다는 자격으로 건네진 말 앞에서 반박하고 싶지만 말없이 고개를 돌린다. 편하게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쌓여온 관계의 무게가 나를 침묵시킨다.


가끔은 일부러 ‘정적의 시간’ 안으로 숨어든다. 문을 꼭 닫아걸고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묵직한 고독이 내려앉는 이 시간에 나는 피터 비에리가 말한 ‘내적 강박’과 ‘자기기만’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자기 결정적 삶’의 의미를 조금은 체감한다.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그렇게 나는 갈바람에 고독을 반려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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