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읽고 지나가는 책이 아쉬워지기 시작한 때가 2017년 중반이었다. 먼 나라에서 새 책을 빨리 구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었고 무엇보다 손을 지나쳤던 책들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새 책에 대한 욕심을 자제하고 꼭 곁에 두고 싶은 책들만 남기기로 했다. 같은 책을 세 번씩 반복해 읽기로 마음먹고 책 앞장에 몇 번째 읽기인지 기록했다. 독서 노트도 따로 마련했다. 책이 많은데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막상 실천해 보니 달라진 것이 많았다
책은 반복할수록 이전과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해주었다. 나이가 들고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구절에 밑줄 긋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왜 여기에 별표까지 했는지 피식 웃으며 형광펜과 빨간펜을 들고 책을 읽던 그때의 나를 돌아보는 재미는 덤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유고집에서 “손자가 저녁 먹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올 때 나는 막 신이 난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 책을 두 번째 읽었을 때 기억에 없었던 이 글은 예상치 못한 떨림을 주었다. 그사이 나에게 한 달 남짓 된 첫 손자가 와주었기 때문이다. 집밥 한 그릇이 지친 손자에게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 작가의 마음을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이불보에 싸인 갓난아이가 듬직한 청년이 되어 “할머니 저녁 주세요.”라며 찾아오는 상상에 마음이 노글노글해졌다. 오래된 책도 묵은 된장처럼 진한 감칠맛이 있다.
거듭 읽기가 주는 깊이에 더해 느리게 읽는 즐거움도 있다. 2.0의 시력과 빠른 이해력으로 많은 책을 욕심내던 나는 대부분을 단숨에 읽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돋보기 없이는 책을 읽기 어렵고 눈도 쉽게 피로해진다. 급한 성질머리를 아직 버리지 못 나에게 “천천히 가야 해.”라며 일러 주는 것 같다.
요즈음,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있다. 오래전엔 후루룩 넘겼던 책. 더운 여름날의 방학 숙제처럼 하루에 몇 장씩 내 목소리로 읽어 나간다. 얼추 두꺼운 책의 절반쯤을 지나고 있다. 이 책이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줄거리에 급급했던 젊은 날엔 미처 몰랐다. 감정과 사고를 한 올 한 올 걷어올려 만들어 내는 얼개와 그 속에 읽히는 기막힌 표현이 있다. 작가의 묵직한 세밀함에 감탄한다.
느긋하게 읽으며 어설프게 알고 지나쳤던 단어의 뜻도 다시 챙기고 작가가 숨겨둔 의미들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느린 걸음 덕분이다. 나이의 걸음걸이에 맞춰 읽다 보면 뒤처진다는 조바심도 들지만 한 권을 세 번씩 서두르지 않고 꾸준하게 읽어 가려한다. 그렇다고 매 끼니 묵은 맛만 먹을 수 없기에 읽고 싶은 책은 수첩에 적어두고 차분히 하나씩 골라 새롭게 책장에 들인다.
그렇게 책은 느리게 걸어가는 지금의 나를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