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 그리고 내 안의 콜라보

by 에우름


「그런 사람이 있다」

세상이 말리는 길을 굳이 떠나는 사람이 있다

눈이 폭포처럼 내리는 광야를 홀로 가는 사람이 있다

별 하나 없는 밤, 폭설이 지운 길을

맨손으로 헤치며 어둠을 걷어내는 사람이 있다

그 길 끝,

절벽 같은 밤을 딛고 아침을 깨우는 사람이 있다

김수원 (2022 시민 공모작)



신촌역 지하철 유리문에 붙은 짧은 시 한 편이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첫 문장 “세상이 말리는 길.” 그 아래 ‘시민 공모작’이라는 표기 옆에는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어쩌면 그 시인은 삶을 대하는 방식이 나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친구를 기다리던 카페에서 작은 노트에 시 한 줄이 불러낸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그날 밤, 휘갈겨 쓴 글을 노트북에 옮기며 그제야 알았다. 시 앞에서 내 마음이 글이 된 건 처음이었다.


나는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글을 좋아한다. 툭 던지는 문장보다 맥락을 차근차근 풀어내는 글이 내 마음을 정돈해 준다. 그래서 파스칼 메르시어의 글을 좋아하고, 한때는 기형도의 솔직한 문체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시도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었지만, 그 작품들은 대체로 모호하지 않고 또렷했다.


소설 같은 긴 호흡의 글은 대체로 작가가 주도한다. 의도에 따라 강하게 몰아붙이기도 하고, 살살 달래듯 내비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주도권은 언제나 작가에게 있다.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이 멈칫하는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여백 한쪽에 작은 표시를 남기는 일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 시선은 그림에 이끌렸다. 그곳에는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간과 자유가 있었다.


그림은 화가의 의도가 담겨 있으면서도 책 보다 훨씬 불친절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딱 한 마디를 던지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림 앞에서는 오히려 감상자의 역할이 커진다. 숨바꼭질하듯 숨겨진 단서를 따라 화가의 의도를 짐작하고 그 위에 나의 감정과 경험을 얹는다. 때로는 스스로도 숨기고 싶던 비밀을 슬며시 꺼내놓기도 한다. 마음을 살피며 화가와 나만의 대화를 이어간다. 감상자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지만 사실 그림에는 처음부터 정답이 없었다. 만약 땅속의 화가가 깨어나 이 모든 해석을 듣는다면 웃을지도 모른다. ‘내 그림에 그런 의미도 있었어?’


그래서일까. 나는 그림을 볼 때 해석하려는 다급함 없이 천천히 여유를 갖는다. 내 마음을 그림 속에 놓아두고 편안히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글에서처럼 내 취향에 맞는, 특별히 사랑하게 되는 화가들도 생긴다. 죽음과 외로움 앞에서 흔들리던 뭉크도, 재능을 스스로 가린 카라바조도 그들의 그림 속에서 더 가까워졌다. 그림은 결국 화가의 삶까지 들여다보게 한다.


어정쩡한 장막으로 가리지 않은 시민작가의 시를 읽던 마음은 마치 그림을 바라보는 듯했다. 시어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나의 이야기를 노트북에 두드렸다. 마침표를 찍고 “어? 내가 이렇게 많이 썼다고?” 하고 놀랐다. 적어보지 않았다면 몇 단어만 떠올리고, 작가의 의도를 다 알았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아마 “나랑 비슷한 느낌이네”라는 흔적만 남았을 것이다. 그 경험은 그림 앞에 섰을 때처럼 내 마음에 작은 공간을 열어주었다. 긴 글이 주지 못했던 방식으로 나를 이끌어냈다.


나의 관찰력과 감각이 섬세해질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더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작가와 시인, 화가들의 고뇌와 감각에 내 생각이 융합되는 콜라보는 은밀한 나의 취미이자 집착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귀한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