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자라고 있는 중입니다

닫힌 문 너머,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마음들

by 에우름

“그때, 엄마가 너무 무서웠어!”

“맞아. 정말이야.”


딸네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연이와 은지가 말했다.

할머니 집을 휘젓고 다니는 두 손자들 뒤를 따라다니던 나는 ‘엄마? 나?’ 하며 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언제?”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나중에 얘기하자며 엄마가 방에 들어가고 닫힌 문이 너무 무서웠어.

차라리 혼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 언니! 나도 그랬어. 분위기가 살벌했지.”

그 말에 퍼뜩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딸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나는 서른아홉 즈음의 젊은 엄마였다.

지금도 여전히 ‘극 T’ 성향이지만 그때는 젊은 혈기와 독기 어린 일상 속에서

‘삶은 이성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신념에 가까운 강박이 있었다.


내가 문을 닫고 들어갔던 이유는 스스로의 화에 갇혀

아이들에게 감정 섞인 말로 상처를 줄까 두려웠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감정을 다스리며 나름의 올바른 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 문은 단절과 고립의 벽이었던 모양이다.

이성적인 교육관에서 딸들은 모르는 또 다른 일화도 있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은 상황 때문에 너무 화가 났던 날.

슬리퍼 질질 끌고 집 밖으로 나오던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화가 난다고 운동화 꺾어 신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면 어떡하지!'

아이들 앞에서 홧김에 집을 나가는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문구점에서 볼펜 하나를 사고 소주 한 병을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문구점 갔다 왔어.”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괜히 크게 말하고

식탁에 앉아 김치 한 접시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곁에 있어준 엄마로서 조금은 자부심도 있었다.

이성적인 교육관을 지킨다는 건 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닫힌 문이 너무 무서웠다’는 말은, 이제야 알게 된 놀라움이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은 틀렸다.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할 때,

내 굳은 얼굴엔 차가움이 배어 있었을지 모른다.

보송보송한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내 눈치만을 살폈을 것이다.


왜 엄마에게 잠시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그 순간만이라도 천천히 설명해 줬다면

아이들은 불안하지 않고 차분해진 엄마를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땐, 그럴 여유가 내게 없었다.

뒤늦은 반성을 했다.


내 눈치를 보던 그 아이들이

이제는 아장거리며 말썽 부리는 아기들의 뒤를 따라다니는 엄마가 되었다.


간혹 딸들이 그 조그만 아기들에게 말을 할 때 ‘저건 아닌데...’싶은 순간이 있다.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딸의 목소리에 짜증이 들어있다.


딸의 엄마지만 가정의 교육관은 다르기에

나의 의견을 가감하지 않고 지켜본다.


어느 날 한번, 조심스럽게 말 꺼낸 적이 있다.

“그렇게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에겐 웃는 얼굴로 말해주면 돼.

대신 일관성 있게. 부드러운 단호함으로. “


그 말을 들은 젊은 엄마들 동시에 외쳤다.

“그걸 아는데, 그게 쉽지 않아!”


나는 그저 웃는다.


그럼 당연히 알지!

나도 한때는 젊은 엄마였고

김치 한 조각에 소주 한 병을 마시며

별별 생각을 다 했는걸.’


엄마 노릇. 다 안다 하면서도 늘 어려운 일이다.

정답도 없다.

경우의 수도 너무 많다.

다만 그저 조금씩 덜 틀리게 해 나갈 뿐이다.


젊은 엄마였던 나.

이제는 딸들이 그 길을 되짚어가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오래전 나의 말과 행동을 하나씩 다시 꺼내본다.


딸들은 아이들과 함께

흰머리 난 엄마까지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