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도, 그 여름도 그리움이 된다
캐나다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다.
캐나다의 여름은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금세 시원해진다.
그럭저럭 견딜 만한 여름이다.
한국의 여름은
습기가 가득 찬 공기에 끈적한 땀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불어오는 바람마저 덥고 눅진하다.
아이들이 어렸던 여름날의 일이다.
두 딸의 손을 잡고 땡볕으로 달궈진 길을 걷고 있었다.
“엄마, 너무 더워.”
일곱 살 지연이와 다섯 살 은지는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투덜댔다.
“응, 익겠다. 우리 노래 부르면서 갈까?”
“무슨 노래?”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꽁꽁!”
“어때, 좀 시원해졌지?”
“그러네!” “응.”
여전히 땀을 흘리면서도 두 아이는 싱글거렸다.
그 사이 집이 가까워졌고 데워진 피부도 조금 식어가는 듯했다.
“다시 한번, 크게!”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동요를 부르던 세 모녀를 지나가던 아저씨는 신기한 듯 힐끔 돌아보았다.
오늘도 덥다.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이제는 순수한 동요 한 곡으로는 뜨거워진 내 감각을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더 강한 요법을 써야 한다.
노트북 속 오래전 사진을 꺼내보았다.
캐나다 동부, 대서양 연안에는 핼리팩스(Halifax),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rince Edward Island, PEI), 그리고 우리가 한때 살았던 뉴브런즈윅(New Brunswick)이 있다.
토론토보다 북쪽인 그곳은 여름이 짧고 겨울은 훨씬 길고 매서웠다.
앞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몰아치는 눈태풍이 오면 세상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뒤덮이곤 했다.
대학생이던 지연이와 은지는
뒷마당에서 이글루를 만들었고
조카의 차는 마치 로봇택시라도 된 듯
운전자 없이 매끄러운 골목길을 스르르 내려갔다.
앞집 아저씨는 지붕 위에 올라 눈을 치웠다.
나풀나풀 내리던 눈은 어느새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
눈 태풍이 지나간 뒤에 세상엔 두 가지 색만 남았다. 하얀 눈, 새파란 하늘.
그리고... 삽질.
찻길의 눈, 집 앞의 눈, 뒷데크의 눈.
나는 한 번 시도에 결국 삽을 내려놓고
업체에 맡겼다.
월마트나 큰 쇼핑몰 주차장 한편엔 치워진 눈이
작은 동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래도, 그 겨울이 좋았다.
남쪽에 사는 토론토 사람들도, 서쪽에 사는 밴쿠버 사람들도 잘 모르는 캐나다의 찐 겨울.
그리고 긴 겨울 끝엔
그만큼 눈부신 여름이 기다리고 있다.
토론토의 높고 빽빽한 빌딩 사이에 끼어 살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그곳은 고향집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 눈태풍이 몰아치던 대서양에서
차로 이틀을 달려야 도착할 토론토보다
훨씬 먼 한국의 여름 안에 있다.
사진 속 냉기에 이제야 조금 서늘해진다.
동요 한 곡, 몇 장의 사진.
지난 겨울의 도움으로 나는 이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