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전화가 울렸다. 작은언니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빨리 응급실로 와.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눈 쌓인 밤길, 손에 든 선불폰으로는 카카오 앱을 쓸 수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팔을 흔들었지만 택시는 서지 않았다. 무작정 달리다 편의점으로 뛰어들었다.
“택시 좀 불러주세요. 지금 빨리 병원에 가야 하는데요.”
응급실 문을 열고 아버지를 찾았다. 간호사가 끝자리 커튼을 젖혔다.
“아빠!”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흔을 넘은 치매 환자였다. 큰언니는 기억했지만 막내인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얼굴을 가까이 대고 눈을 마주하면 정다운 사람이라는 감각만은 남아 있는 듯했다.
치매가 파고들기 전, 아버지는 매일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걷기 운동을 했다. 젊은 시절 당뇨 진단을 받은 뒤 평생 지켜 온 습관이었다. 병이 깊어진 뒤에도 그 기억만은 몸에 남아 있었다. 현관문에는 잠금장치가 겹겹이 달렸다. 작은언니가 큰 도화지에 “아버지, 나가시면 안 돼요”라고 붙여 두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은 몰래 집을 나가 비 오는 정류장에서 앉아있다 경찰 도움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사진은 경찰서 벽에붙었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나는 병간호 때문에 한국에 나와 있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언니와 오빠들도 힘들어했지만, 두 분이 평소에 “요양원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라고 했기 때문에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주저하는 작은언니에게 나는 쐐기를 박았다.
“아흔이 넘은 치매 노인과 병약한 노인이 단둘이 사는 건 노인 학대야.”
언니들이 자주 드나들고 요양보호사도 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모님의 스물네 시간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엄마에게 알리지 않은 채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다.
한겨울 햇살이 따뜻했던 그날, 아버지는 유난히 정신이 또렷했다. 창밖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러운 듯 바라보며 좋아하던 커피도 마셨다.
“아빠, 봄이 되면 우리 나들이 가요. 지금은 너무 추워요.”
나는 곁에 앉아 그동안 아무 일 없었던 듯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우면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누가 너 힘들게 하면 말해. 내가 혼내 줄게.”
다음 날 한밤중, 아버지는 요양원 거실을 걷다 넘어져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응급실 침대에서 홀로 우리 곁을 떠났다. 침대 시트 밖으로 드러난 아버지의 하얀 맨발은 내게 각인되었다.
국제 뉴스를 보며 “막내야, 캐나다에 눈태풍이 온다던데 괜찮니?” 하고 전화를 걸어 주던 아버지. 맛있는 반찬에 “소주 한잔해야지” 하며 웃으시던 아버지. 언제나 내 편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아버지.
나는 이성적이고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그 ‘최선’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묻게 된다. “노인 학대”라는 말을 앞세워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지만, 한 달도 채 머무르지 못하고 떠났다. 그 결정은 정말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을까. 언니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고 싶었던 이기심은 아니었을까. 떠나시는 아버지는 거침없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리움보다 먼저, 내가 던진 무거운 말과 얼음칼 같았던 단호함이 찌른다. 꽃구경을 하며 따뜻한 봄날에 떠나셨다면 더 좋았을까. 이제 와서 무슨 말이 필요하나. 후회도 회한도 비껴간 자리에, 끝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