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책이 열 권 있다. 책꽂이에는 1976년 마흔넷의 법정이 쓴 『무소유』부터 2008년 삶의 끝자락에서 남긴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차례로 꽂혀 있다. 스님의 말씀은 늘 소박한 울림으로 내 삶의 중심에 자리해 왔다. 여행을 떠날 때도 나는 가장 먼저 스님의 책을 챙겼다.
그 책들에는 묘한 시간의 결이 있다. 긴 수련의 출발점이었던 『무소유』를 시작으로 중년의 시기에 쓴 책들에서는 현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문장 사이에 드러난다. 그분의 책 곁에서 나이를 들며, 나에게 가장 마음에 남은 책은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오래 정진해 온 삶이 마지막에 스스로에게 남겨 둔 마음처럼 읽혔다. 높은 감나무에 매달려 있던 단감이 깊은 맛의 홍시로 익어 있었다.
법정 스님은 말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히 여기는 일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왔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것.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과 이 존재계에 감사하는 일이다.”
나는 한동안 깊은 무력감 속에 있었다. 영화 〈록키〉의 한 장면 속에 갇힌 듯한 날들이었다. 쓰러져도 끝나지 않고 일어날 때마다 다시 맞아야 하는 싸움이었다. 원망의 대상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내 삶 어딘가에 잘못이 있었던 걸까. 지나온 시간을 거칠게 되짚던 어느 날, 나는 다시 『아름다운 마무리』를 꺼내 들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는 말은 나를 멈춰 세웠다. 최선이라 믿으며 선택했던 순간들과 그때의 고뇌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게 했다. 현재의 불편함을 이유로 과거의 나를 깎아내리려 했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내가 살아온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날은 흐린 일요일이었다. 히터가 고장 난 집에서 작은 난로를 켜 놓고 웅크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문장을 덮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따뜻한 차 한 잔을 차분히 마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