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채우지 못한 가난

by 에우름


매번 비슷한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심호흡을 하고 두 번쯤 울린 뒤 전화를 받았다.

“뭐 하니, 왜 엄마한테 전화 안 하니? 지연이랑 은지는?”

며칠 전에도 했던 질문을 마치 오래 기다린 듯 다시 물었다.

“엊그제 전화했잖아. 애들은 잘 있지.”

대답은 짧았고 내 말끝에는 귀찮음이 겹쳐 나왔다.


마흔 살이 넘었던 엄마 친구들은 바스락거리며 둥글게 퍼지는 한복을 입고 머리는 고대기로 한껏 올려 멋을 부렸다. 방안에는 웃음소리가 오르내렸다. 그 모임이 우리 집에서 열리던 날, 초등학생 저학년이던 나는 내가 쓴 동시를 낭독했다. 그분들은 잘했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나 팔십이 된 그 친구들의 하루는 이미 그전과 달라져 있었다. 활달하던 천보사 아줌마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을 더듬거렸고, 무뚝뚝했던 뒤중이 아줌마는 불편한 다리에 방바닥을 쓸고 다니며 요양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 사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었다. 자식들 가까이 살려고 서울로 올라온 허약한 엄마는 아파트 경로당에 마음 붙이지 못했다. 결국 치매에 잠식되어 가던 아버지 곁에서 훈육주임처럼 지냈다.


엄마 친구들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아침마다 전화로 풀어냈다. 이야깃거리는 특별할 것 없었고, 대개는 자식 이야기였다. 언뜻은 흉보는 듯했지만 가만 들어보면 자랑이었다. 자식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지, 안부 전화를 몇 번 하는지가 그들의 무력한 몸을 견뎌주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친구들과의 통화를 끝낸 엄마는 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주 보호자였던 작은언니는 짧게 그러나 자주 목소리를 들려줬고, 큰언니는 엄마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다 인내심이 바닥나면 불퉁거렸다가도 먹을 것을 사 들고 다시 찾아가곤 했다. 나는 그 중간쯤에 있었다. 이삼일에 한 번 마음이 몽글해져 전화를 하면 “오랜만이다”라는 한결같은 엄마의 첫마디에 맥이 풀렸다. 건조한 목소리로 “잘 드시고요”라고 말하며 서둘러 끊었다.


예전에 혼자서 우두커니 TV만 보던 엄마는, “다녀왔습니다”만 남기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막내딸이 살갑지 못하다며 아쉬워했다. 그 서운함은 흰머리 난 딸의 전화에도 가시지 않았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쓸쓸한 엄마 눈빛이 떠올라서 나는 하림의 백숙과 쑥떡을 보냈다. 자식 뒤치다꺼리에 마음을 다 쏟는 쉰 살 딸과, 그 딸만 바라보는 노년의 엄마. 두 사람의 하루 속도는 달랐다.


시간을 메워주던 친구들과의 소소한 재미도, 자식들을 위한 기도의 뿌듯함도 세월의 나이듦 속에 옅어져 갔다. 엄마의 스물네 시간에는 보호자인 척 입바른 소리를 하는 자식들만이 남았다. TV 앞에 앉아 있던 노년의 엄마에게 그 딸들의 전화는 하루를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지금 내 곁에는 삼십 중반을 넘긴 두 딸이 있다. 나는 먼저 전화를 하지 않는다. “오랜만이다, 뭐 하니”라는 엄마의 말이 내게 남겼던 피로감을 딸들도 느낄까 염려해서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적적함은 숙제로 여기며 책을 읽고 공원에 가고 도서관을 찾아다닌다. 때로는 훌쩍 홀로 여행을 떠난다. 내 손으로 하루를 만들려고 애쓴다. 그러다 ‘엄마’ 하며 들어오는 딸들과 함께 편안히 앉아 내가 채운 하루를, 딸들의 생기 있는 하루를 나누고 싶다. 자식의 전화가 나의 삶의 전부가 되지 않기를. 그것은 내 엄마가 남긴 큰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따뜻할 때 먹으라며 새벽에 만든 인절미를 들고 긴 시간 버스를 타고 오던 엄마. 다섯 자식과 여러 손주를 위해 허리가 굽도록 성모님께 기도하던 엄마. 그 삶에는 내가 즐기는 책도 그림도 없었다. 하루를 스스로 만들려는 의지도, 자신의 시간을 찾는 법을 배울 기회도 없던 또 다른 가난이었다.


나는 귀찮음과 연민 사이에서 엄마의 시간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시대와 나의 시대는 달랐고, 사랑의 표현도 달리했다. 그럼에도 만약 엄마가 다시 이 세상에 와준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번에는, 엄마가 원하는 것들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하루를 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 것으로 살아가세요.”


이제는 엄마와 딸이 아닌, 같은 여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였던 한 여자의 삶에서 자식을 빼고 나니 그 삶은 윤기를 잃어갔다. 엄마에게도 분명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텐데. 전화를 할 때 “엄마는 뭘 좋아했어?”라고 묻지 못하고, 대신 잘 드시라는 말만 건넸던 딸.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떠난 엄마의 허전한 자리에 지금은 내가 있다. 엄마의 뒷모습이 자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