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 말은 내게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과 같았다. 신의와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은 내 삶의 근간이었고 인간관계에서는 하나의 기준점처럼 작동했다. 그러나 그 기준은 멀어지는 관계 앞에서 나의 진심이 부정당하는 듯한 회의감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캐나다에 살아가며 달라진 문화와 물리적 거리는 내가 의리라 믿어온 관계들을 흔들어 놓았다. 처음 그대로의 마음으로 내 사람들을 찾았지만 우리의 삶은 이미 다른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애틋한 그리움에 달려갔던 선배는 어색한 예의로 나를 맞았고, 시차 없는 가까운 거리에 전화를 자주 하겠다는 친구의 말은 어딘가 무심하게 들렸다. 마치 기억 속에 박제되었던 내가 정신없이 이미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서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 낯설음은 친구나 선배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기억된 익숙함은 내게 낯설어졌다. 두어 발짝 물러서, 나도 더는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싸한 서늘함에 멈칫한 뒤 서운함과 허전함이 남았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가까웠던 관계와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한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의 차이는 각자의 삶을 다른 궤도로 이끌고, 변화한 자아는 더 이상 같은 자리에 머물 수 없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의 완고한 의리는 좀처럼 느슨해지지 않았다. 관계가 멀어질 때마다 마음은 불편해졌다.
이 완고함을 이해하기 위해 찾아간 개념이 불교의 인연법이었다. 본무자성(本無自性)은 모든 존재가 고정된 성질을 지니지 않고 인연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부모와 마주할 때는 자식이 되고, 친구와 마주할 때는 친구가 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만 잠시 특정한 역할과 성질을 띤다. 나는 오랫동안 이 단순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관계는 나선형처럼 어떤 지점에서는 멀어졌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다시 맞닿는다. 그 흐름을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도 하고, 스치듯 지나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치 탄력성을 잃은 철근봉처럼, 언제나 고정된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나는 유연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의리의 무게 때문에 새로운 인연을 맺는 일을 주저했고, 이미 맺어진 인연 속에서도 종종 힘들어했다. 불편한 마음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책을 읽고 상념에 매달렸다. 그 시간을 지나 이제는 오가는 인연을 담담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삶은 여전히 깊은 질문이지만, 나는 인연 앞에서 조금씩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