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사이에 끼운 여행

by 에우름

여행을 하면 그곳의 조그만 기념품을 사 오는 걸 좋아한다. 처음에는 주로 ‘종’이었다. 풍차 마을에서는 풍차 모양을, 캐나다 PEI의 감자밭에서는 감자 모양을, 포르투갈에서는 알록달록한 수탉 모양의 종을 골랐다. 성모님과 아기 천사 모양의 종도 있었다. 대부분 그 나라, 그 지역의 정서가 묻어 있는 기념품들이었다.


이후에는 집 모형이나 전통 의상을 입은 미니어처를 사곤 했다. 체스키 크롬로프의 골목을 걷다가 피노키오 인형을 만났다. 피노키오의 고향은 아니었지만, 알록달록한 기념품 가게 안의 피노키오는 그 마을의 색감과 닮아 있었다. 한참 망설이다가 천장에 매달려 있던 인형을 내려달라고 했다. 인형극 무대에 올려도 될 만큼 큰 인형을 들고 오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깨질까 봐 뽁뽁이에 둘둘 감아 넣은 것들로 트렁크는 늘 불룩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민경이를 위해 긴 꼬리가 매력적인 고양이 인형을 애지중지 챙겨 왔지만 결국 그 꼬리는 댕강 부러졌다. 나는 그 부러진 꼬리를 색색의 끈으로 멋을 내어 묶어두었다.


나는 자주 데려온 그 기념품들을 바라보며 지난 여행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린다.


하지만 같은 지역을 다시 여행해 진열대에 놓인 기념품들을 바라보면, 처음의 감흥은 이미 희미해져 있었다. 그 가게 안의 기념품들은 더 이상 설레게 했던 어린 왕자의 장미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내 트렁크엔 종이나 인형 대신 얇은 북마크들이 들어앉았다. 북마크는 가벼워서 부피도, 무게도, 마음의 짐도 없다. 여행의 마지막 날 가방을 정리할 때마다 허리가 휘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북마크 하나쯤 손안에 가볍게 들어온다.


북마크는 그곳의 풍경과 건축물, 인물, 문화를 한 장 안에 담아낸다. 종이나 미니어처처럼 그 지역의 정체성을 전하면서도 훨씬 다양하고 세련됐다. 또 하나, 이 조그만 물건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책과 북마크가 만나면 읽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된다. 페이지 사이에서 시간과 장소가 포개지고, 나는 작가의 시공간 속으로 옮겨간다. 『신곡』을 읽을 때는 단테의 북마크를, 『일리아드』에는 호메로스의 북마크를 끼운다. 『폭풍의 언덕』에는 더블린에서 사온 북마크를, 『고흐와 테오의 편지』를 읽을 때는 까마귀가 나는 들판이 그려진 북마크를 쓴다.



책장에서 읽을 책을 하나 뽑아 들고, 책상 위 머그컵에 꽂아 둔 북마크들 가운데 그 책과 가장 어울리는 것을 신중히 골라 첫 장에 끼워놓는다. 책과 북마크가 딱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이 있다.


그것은 나만의 멋이자 조용한 의식이다. 아무도 모르는 작은 즐거움. 오늘도 나만의 북패션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