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수첩, 한 줄의 반전

by 에우름

오늘, 2026년 노란색 수첩을 샀다. 매년 12월, 나의 새해 설렘과 다짐은 언제나 새로운 수첩으로 시작된다.
내 삶을 보여주는 물건이 몇 가지 있다. 오래 곁에 두고 읽어온 책들, 경험의 여운을 간직한 작은 수집품들, 마음이 취했던 날 찍어둔 사진들. 그리고 수첩이 있다.


내 가방 안에는 늘 그해의 수첩이 들어 있다. 오래된 연락처를 넘기며 익숙해진 관계를 돌아보고 새 이름들을적어 넣기도 한다. 첫 장 한가운데에는 그해의 화두가 적힌다.


어떤 해는 ‘좀 더 느긋하게, 한숨 쉬고’, 또 다른 해는 ‘단단해져라’, ‘노인이 아닌 어른이 되자’라고 적어두었다.


2024년 수첩의 첫 장에는 유난히 긴 문장이 남아 있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몸과 정신의 균형 – 망가진 몸의 복원!)과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그해의 불안과 간절함이 그대로 묻어 있는 다짐이었다.


올해의 하늘색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혁신하는 한 해가 되자 <일대 도약!>’


물론 적어둔다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랍 속에 넣어 둔 수첩을 펼치면 그저 흘려보낸 날들이 떠올라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해마다 수첩을 사고 첫 장에 새 마음을 적는다. 타성에 갇힌 나를 환기시키고 다시 정렬해 주는 작은 계기이기 때문이다.


수첩을 살 때 나는 꽤 진지하고 까다롭다. 겉표지의 촉감을 확인하고 손에 자연스럽게 감기는 크기인지 살핀다. 그 순간 마음이 끌리는 색을 고르고 안쪽 구성도 나의 방식과 맞는지 꼼꼼히 들여다본다.
대부분은 검은색이나 진한 파랑처럼 차분한 색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수첩은 노란색이다. 처음으로 화사한 색을 골랐다. 일부러 그랬다.


이제 남은 것은 2026년 수첩 첫 장에 적을 단 한 줄이다. 반전의 노란색답게, 파격적인 문장을 적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살아온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나’를 향한 욕구였다.


어릴 적 외할머니에게 들었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 떠올랐다. 용기 내어 그 문장을 적었다.


“한 번쯤은, 미친년 속것처럼 살아 보자.”


거친 말투를 혐오하는 내가 이런 선언을 적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 있는 자리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온 나에게, 그래서 더욱 도발적인 한 줄이었다.
스스로에게 허락한 해방의 문장이었다.


“으음,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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