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며 시작되는 글

by 에우름

리베카 솔닛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하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아름다운 결말에 이르려면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 바로, 나를 드러내는 용기, 마음의 커밍아웃이다.


그 용기는 오래된 쇠붙이가 달린 커다란 한옥 대문 같다. 문고리를 들어 올리면 걸쇠가 탁 풀리고 빗장을 걷어내면 묵직한 문이 삐걱이며 서서히 열린다. 마음의 문도 그렇다. 밀어 보면 생각보다 쉽게 틈이 생긴다. 하지만 그 사이로 들어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마음은 다시 주춤거린다. 닫아둔 녹슨 경첩은 금세 걸리고, 보여 주고 싶은 만큼만 열어두려는 오래된 습관이 또 한 번 나를 붙잡는다.


어떤 작가들은 내밀한 사랑을 기록한다. 사소한 눈빛 하나, 감정이 미세하게 흔들리던 순간까지 숨기지 않는다. 또 어떤 작가들은 가족 안의 상처를 직면한다. 말하는 순간 다시 아릴 것을 알면서도 그 장면을 외면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의 감추어둔 아픔까지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그런 고백 앞에서 내 마음은 먹먹해진다.


용기는 서서히 길러지는 힘이다. 근육을 단련하듯 마음의 힘도 조금씩 길러진다. 힘이 붙으면 그 무겁던 문도 전보다 더 부드럽게 밀린다. 문틈이 넓어지면 시선도 멀리까지 닿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시선이 만난 누군가에게, 창가에서 바라본 저녁빛을 건네고 눈 내린 산을 바라보면 고향집 향나무가 떠오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손가락 끝으로 마음을 끌어내기 전에 마음 길목을 가로막고 있던 녹슨 가림막을 먼저 여는 일이다. 나는 이제 그 문을 조금 더 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