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야 했다. 미술관은 과시적이지 않았고 작품 앞에는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집중이 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내려다보고 서 있는 조각상으로 쏠렸다. 그러나 내 시간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다비드보다 미처 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노예상 앞에 멈추었다.
세상으로 나오려는 그는 여전히 거친 대리석에 붙잡혀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빠져나오려는 팔과 다리는 돌을 밀어내듯 비틀리고 있었다. 미완성의 이 조각 앞에서 내 등마저 뻐근해졌다. 마음은 이미 그와 함께 차가운 돌덩이를 밀어내고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하는 태도와 방법은 달랐다. 다른 조각가들이 석고본을 만들어 형태를 옮기는 방식이었다면 미켈란젤로는 “형상은 이미 돌 안에 있다”는 그의 말처럼 대리석 덩어리 자체와 대면했다. 그는 형태를 더해 가는 대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그 안에 있던 형상을 드러냈다. 미켈란젤로에게는 그 과정이 완성이었다.
글도 인생도 비슷하다. 불필요한 문장을 지우고 나답지 않은 욕심을 깎아낼 때 비로소 중심이 선명해진다.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이라고 말해온 나에게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더 설명하고 더 견디며 애쓰지 말라고 다독이는 듯했다. 그의 미완의 조각상은 덜어내며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