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bti의 I형 인간이다.

그런 내성적인 내가 어떻게 이런 행동을??!!

by 최고의 교사

2015년. 첫 발령 학교에서 농구 스포츠클럽을 맡게 됐다. 취미로 농구를 꾸준히 해와서 자신감이 있었는데도, 누군가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일은 매우 힘이 들고 어려웠다. 2015년. 1년 동안 제대로 된 지도 없이 나는 팀을 나누어 학생들과 함께 5:5 농구 경기만 했다. 농구 경기를 하는 동안 학생들에게 필요한 점이나 그들이 질문하는 내용을 답해주는 정도가 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했던 방식은 가르침 없이 재미만 추구한 꼴이다. 나도 재미있고 학생들도 지루한 연습보다는 경기 위주의 수업을 재미있어했다. 서로 윈윈(win-win)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제대로 된 연습이 없으니 서울시 교육감배 스포츠클럽 농구 리그전에 출전하면 항상 졌다.


학교에서 농구 방과 후 수업을 할 때에는 모두가 즐겁다. 하지만 시합에 출전하면 모두 풀이 죽은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학생들의 풀 죽은 모습을 볼 때면 나 역시 자존심이 상했다. 1년이 지난 2016년부터는 농구 지도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농구 교본을 구입해 읽고, 인터넷에서 각종 지도법 자료를 찾아봤다. 내가 배운 내용을 방과 후 수업에 적용해 보았으나, 농구팀 지도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았다.


혼자서 공부를 하며 농구팀을 꾸려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한계점에 도달한 나를 발견했다. 분명히 부족한 점이 있는데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부족한 점을 짚어줄 누군가가 곁에 없다는 점이 더욱 속상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맡고 있는 농구 팀 실력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아주 간절히.


서울시 내에서 고등학교 농구 스포츠클럽 팀을 우수하게 지도하여 소문이 자자한 체육교사를 알게 됐는데, 그 체육교사가 우리 학교로 전입 온 선생님과 함께 근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무작정 우리 학교로 전입 온 초면의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부탁을 드렸다. “선생님! 선생님과 OO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체육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연락 한번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은 흔쾌히 허락하셨고 그분 덕분에 스포츠클럽을 지도하는 체육선생님과 만날 수 있었다.


시간 약속을 잡고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갔다. 때는 겨울방학이었고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체육관에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꽤나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체육관에 모여 농구 연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선생님과 체육부실에서 잠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곧바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드디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농구 스포츠클럽 팀의 훈련을 볼 수 있었다. 보는 내내 정말 부끄러웠다. 내가 해왔던 방법은 아이들의 실력을 향상하기에는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실력과 농구 지식에 한 번 더 마음이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운영하는 팀이 스포츠클럽 리그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였다. 나의 지도 실력을 향상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답이 나오자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우선 서점에서 농구 지도 관련 서적을 구입했다. 개인 전술과 팀 전술이 나와있는 책, 슛과 관련된 책을 사서 시간 날 때마다 탐독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비 대형과 훈련 방법에 대한 지식을 검색하고 익혔다. 성인 농구 동호회 팀에 가입하여 내가 배운 내용을 직접 적용해 보고 개인 여가 시간을 활용해 농구 연습을 했다.


농구 스포츠클럽 운영 방법도 변화를 주었다. 학생들과 경기 위주로 시간을 보내던 방법 대신에 연습 및 훈련(개인 및 팀)을 주로 하고 실제 경기시간을 줄였다. 주말 및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타 학교 학생들과 농구 경기를 했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많이 해봐야 경기를 보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1년의 시간을 보냈다. 변화하는 첫 해에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학생들도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존 학생들의 반대도 있었다. 훈련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니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응이 안 되는 학생들 중에는 팀에서 탈퇴하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나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실력을 향상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해하는 학생은 끝까지 내 곁을 지켰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그다음 해에 일이 터졌다.


1년이 지나고 두 번째 리그전에 개최될 때 희망과 두려움을 안고 참가했다. 7개 팀 중 1등을 해야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나의 학생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불안해했다. 그동안 이겨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진 채 치른 첫 경기에서 보기 좋게 이겼다.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자 아이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후의 경기에서도 계속 이겼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개의 학교. 그 학교는 작년에 본선에 진출했던 이력이 있다. 우리가 그 팀을 이기면 본선에 나갈 수 있다. 계속되는 승리로 인해 아이들의 사기는 하늘을 뚫을 듯 보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은 그 학교 경기에 몰래 찾아가 관전하며 상대팀을 분석하고 나에게 알려 줄 정도로 말이다.


대망의 경기 날. 모든 사람이 우리 학교가 큰 점수차로 패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나는 약이 올랐다. 모두에게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나 간절했다. 학생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경기는 모두의 예상과는 반대로 박빙이었다. 우리가 리드를 할 때도 있었고 상대방이 리드를 할 때도 있었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작전 타임도 많이 사용하고 소리도 많이 질렀다. 정말 이기고 싶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우리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정말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상대팀의 손을 들어줬다. 너무 속상해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펑펑 울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나와 아이들은 많이 성장했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동안 우리 팀을 짓누르던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전율이 든다. 그때의 함성과 아이들의 땀, 그리고 눈물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에 나는 아주 작은 목표를 하나 세웠다. 선수 출신이 아닌 농구 동호인이자 체육교사로서 농구 팀을 잘 지도하여 학생들의 농구 실력을 키워주는 멋진 농구 지도자가 되고 싶다. 선수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농구하고 학생을 지도하는 경험을 많이 쌓다 보면 학생의 인성과 실력을 함께 키워주는 멋진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말 열심히 해서 학생들의 기억에 남는 그런 농구 지도자이자 체육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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