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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Apr 06. 2023

내가 세차하면 꼭 비가 온다

마흔 살 힐링담론 : 그러려니 하고



  주말 오후, 미루고 미루던 세차를 하러 갔다. 손 세차를 하는 건 아니고 자동 세차이다. 

세차장에 자동차만 쏙 밀어 넣으면 되는 것을.

나는 그게 그렇게 어렵다(뭘까? 은근. 자꾸. 되도록. 개긴다) 연중행사까진 아니지만 뭔가 특별한 일이 있거나 어떤 동기가 있어야 하게 된다는 말이지. 그러면서 더러운 건 싫고(참 이상한 심리일세)     

 

  까만 자동차는 사지 말았어야 했다. 

비가 오면 빗물 자국이, 봄엔 꽃가루와 황사, 설사 맞은 똥이며 단체 새똥 테러까지.

까만 자동차에게는 얼룩덜룩한 그것들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능력(?)이 있다.

참 불편한 자국들.     






  세차하려면 먼저 주유부터 해야 한다. 우리 동네 셀프주유소에는 일정 금액을 넣으면 세차 할인권을 주기 때문이다(이런 건 꼭 챙겨)

  드르륵.

  주유 통 한가득 기름을 채운 뒤 주유구를 잠근다. 그러면 기름 냄새에 홀린 듯 기분이 좋아진다.      

 

  영수증과 할인권을 챙겨 들고 핸들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려 주유소 한편에 있는 민트색 세차장 입구에 차를 들이댄다. 자동차 엔진소리를 듣고 직원이 후다닥 달려온다. 왼손으로 세차 할인권과 현금을 받아 든 직원이 말한다. 

“사이드미러는 접으시고요. 기어는 중립. 브레이크에서 발 떼세요. 이제부터 핸들은 제가 잠시 조정할게요.”

  직원은 차장으로 손을 밀어 넣고 능숙하게 핸들을 돌려 자동차가 세차기 입구까지 무사히 들어서도록 리드한다. 이거 은근 두근거린단 말이지(훈남일수록 그래) 


  창문을 올리니 자동차가 저절로 움직인다. 놀이기구를 타려고 막 입장하는 순간처럼. 나는 이 순간이 제일 설렌다.     

  어두운 터널에 진입하자 자동차 양옆에서 물세례가 시작된다. 곧이어 새하얀 비누 거품들이 마구 발사된다. 보글보글 하얗던 거품은 어느새 회색빛이 되어 앞 유리에 쏟아진다. 문어 다리처럼 긴 걸레들이 자동차를 찰싹찰싹 때리고 천장에선 대형 로봇들이 내려와 자동차 위에서 빙글빙글 춤을 춘다. 

  

  그러는 순간, 핸들이 조금씩 삐뚤게 움직이니 나도 모르게 오른발에 힘이 들어간다. 어딘가에 부딪힐 것만 같다. 갈 곳 잃은 발은 브레이크 위에서 허둥지둥 어쩔 줄 모른다. 그때 ‘절대 브레이크 조작금지’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믿음 반 의심 반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 즈음 촤아악! 두두둑!

  비가 쏟아진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듯 컴컴한 세차터널이 끝나고 환한 빛이 새어온다.     

  발끝으로 액셀을 지그시 누르려다 멈칫.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뜨거운 바람이 까만 자동차 꽁무니를 빨아 당긴다. 

  또로롱 창문 너머 물방울이 떨어지더니 번쩍! 

  초록 등이 켜진다.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 자동차는 개운한 듯 경쾌하게 출발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아침부터 흩날리던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모처럼 외출이 있는 날인데 하필 비가 온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비이건만, 좋지만 반갑지 않다. 나가기 싫다. 정말.

  내가 세차하면 꼭 비가 온다. 

  다음에는 꼭! 비 맞아도 티 안 나는 하얀 자동차를 사야겠다.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흠흠.





사진© mintosk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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