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니의글적글적 Jan 28. 2024

소중한 맛, 엄마의 특별한 잔치국수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 이야기: 국수



   




  한때, 잔치국수를 사 먹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내 입맛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돈을 주고 음식을 선택할 때 나는 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경험으로 취향과 선호도가 생긴다는 걸 알기 전까지 말이다.

  나에게는 잔치국수가 맛이 없었다. 엄마가 끓여주신 잔치국수가 세상에서 가장 맛이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잔치국수로 말하자면 면발은 뭉개져 있었고 단순한 고춧가루와 참기름이 섞인 집 간장 양념이 전부였다. 그 흔한 멸치육수도 종종 다진 파조차 없던 국수는 엄마의 손맛이라든가 특별한 비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가 가끔 미원을 뿌려주셨지만, 입안에서 미끈하게 맴도는 그 맛은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 당시 어린아이였던 내가 한 번 국수에 대해 투정했을 때, 엄마는 ‘먹기 싫으면 말아라’라는 말로 나를 단호하게 단념시켰다. 바쁜 농사철이면 더 자주 우리 집 밥상 위에 오르던 엄마의 맹물 잔치국수는 항상 아무 맛이 나지 않았고 나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요리 솜씨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도시로 나오면서, 엄마의 음식과 멀어졌다. 도시에서 다양한 음식을 만나고 즐기면서 내 입에 맞는 음식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실로 황홀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직장 상사가 대뜸 점심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순간 나는 구내식당에서 늘 먹던 평범한 메뉴에서 벗어나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고, 들뜬 마음으로 직장동료와 함께 상사를 따라나섰다.     

  

  직장 근처에 있는 골목 안으로 걸어가니 간판도 없는 작은 식당이 나타났다. 식당 문을 열자, 실내에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그곳은 바로 국수가게였다. 상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훑어볼 것도 없이 “잔치국수 3개요.”라고 주문했다. 나는 하필 잔치국수라는 메뉴에 당황했지만,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자신에 찬 상사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국수가 서빙되기까지 나는 별 기대 없이 기다렸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커다란 스탠그릇이 내 앞에 놓이자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그릇 안에는 얇고 탱탱한 하얀 면이 얌전하게 말려있었다. 연한 갈색 국물, 달걀지단, 김 가루와 애호박볶음 등 다양한 재료들이 정갈하게 올려진 고명, 그 위에 뿌려진 깻가루까지 이 모든 재료가 잘 어우러져 완벽한 모습이었다.

    

  먼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올리자 깊고 진한 육수 향이 코끝을 강타했다. 그러고는 조금씩 양념장으로 간을 맞추니 감칠맛이 입안 가득 찼다. 그 맛을 처음 느낀 순간, 나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잔치국수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나는 새로운 잔치국수 맛에 빠져들었고 상사를 따라오길 잘했다는 만족감이 함께 들었던 것 같다. 그날은 마치 잔치국수의 신세계를 만난 듯한 특별한 날이었다.   

   

  잔치국수와 특별했던 만남 이후, 나는 국수라는 것을 다시 보았다. 쫄깃한 면발이 입에 호로록 넘어가는 날이 많아질수록, 그 옛날 음식 투정하던 시절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히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떤 잔치나 뷔페식당에 가서도 마무리는 꼭 잔치국수로 해야 할 만큼 국수는 나에게 애정 어린 음식이 되었다.






 


  요즘은 문득, 맛있는 잔치국수를 먹으면 엄마가 해주신 옛날 국수가 생각난다. 언젠가 엄마에게 그때 국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언제나 덤덤한 표정으로 당시 넉넉하지 못했던 시골 살림 이야기를 하셨다. 식재료가 부족한 형편에 원하는 맛을 내기 어려웠다고. 어릴 적부터 엄마는 요리 실력이 부족해서 음식이 늘 맛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두 아이 엄마가 되고 매일같이 아이들 밥상을 차려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가 가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노력을 하셨는지. 돌이켜보니 엄마의 잔치국수는 맛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온갖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이지만, 가끔은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그동안 나는 아이를 키우고 요리 경험도 많이 쌓았지만, 정작 엄마에게 직접 잔치국수를 끓여드릴 생각을 못 했다.

  엄마의 따뜻한 국수, 이번에는 내 손으로 잔치국수를 끓여 엄마에게 드리고 싶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잔치국수를 준비해 이번 주에는 엄마에게 찾아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톡! 톡! 노크하듯 찾아온 신인상 당선 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