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갈비찜
15년 전, 갓 결혼한 우리의 첫 집들이 때의 일이다. 예물도 예단도 생략하고 우리 부부가 함께 힘을 모아 어렵사리 마련한 소중한 첫 보금자리에서, 양가 가족을 차례대로 초대해 근사한 집들이를 할 계획을 세웠다.
사실 식사는 배달로 간편하게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꼭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가족들에게 대접하고 싶었다. 욕심에 『엄마의 밥상』이라는 요리책까지 장만했더랬다. 월남쌈, 꽃게탕, 소갈비찜…. 책장을 넘기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갈비찜을 마주한 순간, 나는 결심했다. ‘완벽한 갈비찜을 만들어서 가족들을 놀래주겠어!’ 갈비찜은 온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결혼 후 처음 도전하는 요리이니만큼 나는 결의에 차서 갈비찜 만들 준비를 했다. 집들이 며칠 전부터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마음으로 갈비찜 레시피를 꼼꼼하게 메모하며 만드는 과정을 숙지했다. 퇴근 후엔 남편과 함께 마트를 돌며 장을 봤다.
집들이 당일 아침, 초보 부부의 갈비찜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남편은 서툰 손길로 양념장을 만들고, 나는 무와 밤, 당근을 손질해 고기와 함께 조심스럽게 버무렸다. 10인분 분량의 재료를 전기압력밥솥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 남편이 말했다. “이제 50분만 기다리면 돼. 우리 좀 잘하는 듯.” 그의 말 한마디에 나도 덩달아 완성작이 기대되었다. 전원을 누르자 ‘띠리릭’ 기계음이 울리고, 밥솥 안에서 요리가 시작되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게 정말 완벽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완벽한 시간도 잠시. 밥솥은 익숙한 ‘칙칙’ 소리 대신, 이상한 마찰음을 내며 요동쳤고, 증기 배출구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러면서 밥솥 뚜껑의 틈 사이에서 뜨거운 갈비찜 국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콰악!’ 굉음과 함께 증기가 폭탄처럼 솟구쳤다. 밥솥에서 나온 갈비 국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주방은 순식간에 육즙 워터페스티벌 현장이 되었다. 나는 그 옆에서 허공으로 손을 허둥대며 “엄마! 어떡해!”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때 욕실에서 세수하던 남편이 얼굴도 제대로 닦지 못한 채 달려 나왔다. 그는 재빨리 밥솥의 전원 코드를 뽑고, 하얀 행주를 낚아채 증기 배출구 위에 던졌다. 그제야 요란하던 기계의 성난 포효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주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공들여 골랐던 새하얀 실크 벽지는 여기저기 갈색 국물로 뒤덮였고, 바닥은 끈적한 양념 지뢰밭이 되었다. 내 인생 최초의 갈비찜이 이렇게 망하다니! 나는 너무 속상해서 거의 울뻔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쩐지 의연하였다. 마치 폭탄 해체 전문가처럼 조심스레 밥솥 뚜껑을 살짝 들춰 보더니 이내 희색이 도는 얼굴로 “오우 야! 갈비찜은 살아있어!”라고 외쳤다. 그는 곧장 구조하듯 고기를 하나씩 냄비로 옮기더니 그중 한 점을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혀끝으로 짭짤하면서도 달큼한 갈비찜의 맛을 느끼고 나니 바싹 타들었던 내 마음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친정 식구들이 도착했다. 우리는 대충 치운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내 생에 첫 갈비찜을 함께 먹었다. 모양은 엉망이었지만, 맛은 제법 괜찮았는지 모두가 갈빗대를 들고 맛있게 뜯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갈비찜을 맛있게 먹고 있던 식구들에게 나는 조금 전의 소동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형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에이, 눈물의 갈비찜이네.”라고 하였다. 다른 식구들도 덩달아 “진짜 그러네!” 하며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후 한동안 전기압력밥솥은 밥을 지을 때마다 갈비찜 국물을 토해내 갈색 밥을 만들곤 했지만, 그날 이후 갈비찜은 우리 부부에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처음이라 어설펐지만 그만큼 진심이었고 실수투성이였지만 결과적으로 온 가족이 즐겁게 함께 할 수 있었던 갈비찜.
시간이 흘러 남편과 나에게는 두 아들이 생겼고, 두 녀석 모두 내가 한 갈비찜을 아주 좋아한다. 처음의 도전이 없었다면 이런 가족의 최애 음식도 없었으리라. 지금 우리의 삶은 매일 더 맛있게, 더 제대로 잘 익어가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요리, 그때 그 갈비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