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 일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피자
야구는 환호와 탄식이 뒤섞이는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다. 지난 3년간, 나는 그 뜨거운 심장 박동 속에서 여름을 보내왔고, 그 곁에는 언제나 피자가 있었다.
며칠 전, 삼성과 한화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를 보며 먹었던 피자의 맛이 아직도 혀끝에 선명하다. 푸른 유니폼이 대전 경기장의 조명 아래 번쩍이던 그날, 나는 경기 몇 시간 전 늘 하던 대로 배민 앱을 켜 피자를 주문했다. 어느새 우리 가족의 ‘국룰’이 되어버린, 경기 시작 전의 의식 같은 일이었다.
올해 초반, 삼성라이온즈의 성적은 참혹했다. 점수판이 고장 난 듯 득점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연패기록은 길게 이어졌다. 응원할 때마다 내 마음도 한없이 내려앉았다. 그런 날의 피자 토핑은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고,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지.” 하며 베어 문 피자는 씹을수록 체할 것 같았다. 야구도, 피자도 좋아하지만, 그럴 때는 그 둘 다 쓰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름의 열기가 절정에 이르자, 라이온즈는 마치 오븐 속 피자 반죽처럼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침묵하던 타선이 디아즈를 중심으로 폭발했고, 이름도 익숙하지 않던 선수들이 믿기 힘든 활약을 펼쳤다. 확실히 더그아웃의 공기가 달라졌고, 팬들의 함성은 한층 더 뜨거워졌다. 경기장은 연일 매진 행렬이었고, 표를 구하는 일은 이젠 꿈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기어이 반전이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무렵부터 피자 맛도 달라졌다. 같은 브랜드, 같은 메뉴였는데도 이상할 만큼 달콤했다. 한입 베어 문 피자 안에는 짠맛, 단맛, 고소함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마치 오랫동안 기다린 승리의 순간처럼 입안 가득 황홀하게 퍼졌다.
‘제발 가을 야구만 가자.’ 그렇게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자,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와일드카드전 승리에 이어, 플레이오프전까지 이어진 투혼. 플레이오프 경기 4차전 날은 내 마음은 라팍 (삼성라이온즈파크)에, 몸은 거실에 있었다. 피자 상자를 열어두고, 선수들이 안타를 칠 때마다 피자 조각은 더 빠르게 사라졌다. 김영웅 선수의 극적인 홈런이 터질 땐 나도 모르게 피자를 들고 폴짝폴짝 뛰었다. 투혼으로 뭉친 선수들의 모습은, 모차렐라 치즈가 뜨겁게 녹아내려 하나로 엉겨 붙은 토핑들처럼 뜨겁고 찬란했다.
그러나, 결국 삼성의 질주는 거기까지였다. 라이온즈는 플레이오프 5차전을 끝으로 아쉽게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날의 패배가 이상하게도 슬프지만은 않았다. 경기장 위에서 마지막 하나의 공까지, 남은 힘을 다 쏟아부은 선수들, 그들의 땀과 투지로 올여름 모든 순간이 헛되지 않았기에.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자를 씹는 순간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그날 피자 맛은 유난히 짰다.
다음 날은 밥을 먹다가도, 양치질하다 말고, 불을 끄고 누운 침대 위에서도 문득문득 아쉬움이 밀려왔다. 휴대폰을 켤 때마다 알고리즘은 어김없이 내게 라이온즈의 지난 순간들을 숏츠로 띄워주었다. 파란 물결이 출렁이고 홈런이 날아오르고, 함성이 이어지는 영상 속에서 나는 화면을 넘기지 못한 채 한참을 머물다 오곤 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플레이오프 5차전의 마지막 순간에 타올랐던 목구멍에는 아쉬움만 담겨 있지 않았다. 그 속에는 푸른 사자의 자부심과 함께, 끝까지 싸워 낸 시간에 대한 고마움이 섞여 있었다. 이토록 뜨거운 가을을 선물해 준 팀! 그리고 그 계절을 함께한 피자. 나는 오래도록 그 맛을, 그 열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내년에도, 다시 뜨거운 박수와 함께 피자 한 판을 시켜놓고, 또 그들의 여름을 응원하겠다.
사진:© CoolPubilcDomains, 출처 O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