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짜장면
지난 주말,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득 구수한 춘장 냄새가 생각났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근처에 3천 원짜리 짜장면으로 입소문 난 식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곳을 일명 ‘짜장면 가성비 성지’라고 불렀지만, 내게는 저렴한 가격과 동시에 어린 시절 추억의 맛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장님, 짜장 넷이요!” 식당에 들어서며 나는 주방을 향해 외쳤다. 붉은색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편과 아이들 앞에 냅킨을 한 장씩 깔고 젓가락을 단정히 올려놓았다. 그리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자리로 돌아와서는, 짜장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한 모금 삼켰다. 벽에는 해바라기 액자와 소주 광고 포스터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사장님의 취향일듯한 가수 이찬원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천장 구석의 티브이에서는 전국노래자랑이 흥겹게 흘러나왔다. 프랜차이즈 식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래된 동네 중국집만의 정이 곳곳에 묻어났다.
잠시 후, 젊은 직원이 짜장면 네 그릇과 단무지가 담긴 은빛 대형 쟁반을 능숙하게 들고 나왔다. 그릇들이 우리 식탁 위에 하나씩 내려앉자, 뜨거운 김을 타고 춘장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침샘이 반응했다. 나는 면에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고 소스와 능숙하게 비볐다. 노란 단무지 위에 식초 몇 방울을 톡톡 떨어뜨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크게 감아올려 입에 밀어 넣는 순간,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혀끝에 퍼졌다. 나도 모르게 “음.”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불현듯 그 맛은 내 머릿속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놓았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아니 그 시절 표현대로라면 국민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를 따라 읍내에 있는 중국집에 갔던 기억이 있다. 춘장 속 잘게 자른 양파와 돼지고기가 어우러진 짜장의 풍미는 씹을수록 내 마음을 달뜨게 했다. 그때 700원 남짓하던 짜장면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설렘이자 어린 마음에 또 다른 내일을 다짐하게 하는 부모님과 나 사이의 일종의 작은 의식 같은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특별함을 전해주고 싶었다. “얘들아, 엄마 어릴 적엔 말이야. 짜장면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졸업식이나 반장 되던 날, 대회 나가던 날, 상 타온 날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니까.” 하지만 열을 다한 내 짜장 설교와는 달리 아이들의 반응은 싱거웠다. “응, 근데 엄마, 탕수육도 시키면 안 돼?” 아이들에게 짜장면은 그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불러낼 수 있는 흔한 메뉴일 뿐이었다. 그 순간, ‘짜장면 앞에서도 간극이 이렇게 크구나.’ 하는 생각에 서운함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젓가락질을 끝내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구나.’ 짜장면을 먹다 휴대폰을 보며 웃고, 탕수육을 찾으며 투정 부리는 모습. 그것이 내 아이들이 짜장면을 즐기는 풍경이었다. 내게 짜장면은 지난날의 ‘특별함’이었다면, 오늘의 아이들에게 이 음식은 ‘편안함’인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졌다. 언젠가 아이들 역시 이날의 짜장면을 특별한 기억으로 떠올릴지도 모른다. “엄마랑 먹던 3천 원짜리 짜장면 기억나?” 하며 웃을 수도 있겠지.
짜장면의 짭조름함과 구수함이 한데 어우러지듯, 세대가 다른 우리도 그렇게 섞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만하면 3천 원 이상의 값어치를 한, 진짜 가성비 넘치는 한 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