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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최애 음식은 장어였다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장어구이

by 로니의글적글적




푹푹 찌는 여름 볕에 입맛이 뚝 떨어졌나 보다. 밥상 앞에 앉은 가족들 모두 젓가락질이 시원찮다. 무더위에 기운도 빠지고, 입맛도 없고. 이럴 때 힘이 불끈 솟아나는 음식이 뭐 없을까? 몸보신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스쳤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음식 하나. 바로 장어! 여름 보양식의 대표주자답게 생각만 해도 침이 고였다. 뜨거운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장어 한 점이면 달아났던 기운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 이번 주말에 장어 먹으러 갈래?”

주말에 본가에 들를 겸, 신랑이 어머니와 통화하는 중이었다. 옆에서 그 대화를 듣자마자 나는 살짝 긴장했다.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실지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평소 어머니는 음식에 꽤 까다로운 편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잡내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시고, 치킨은 짜서 안 드시고, 치즈는 냄새가 역하다 하신다. 밀가루 음식은 소화가 잘 안 된다고도 하셨다. 함께 외식할 때마다 “이건 내 입에 안 맞아.”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퇴짜를 놓으실 줄 알았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장어? 좋지.”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장어가 좋다고? 어머니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주말, 팔공산에서 꽤 유명한 장어집을 예약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식당에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연기 너머로 숯 향과 장어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장어 냄새만으로도 시어머니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보니, 괜히 신기하면서 웃음이 났다. 주문한 장어가 나오자 어머니는 익숙한 듯 여유 있게 말씀하셨다.

“살짝, 바삭하게 구워. 그리고 생강채를 듬뿍 얹어서 먹어봐. 개운한 게 맛있

어.”

장어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은 남다르셨다. 한점, 한 점 장어구이를 드실 때마다 얼굴은 상기되셨다. 입안에서 사르르 부드럽게 녹는 육질, 소금구이를 양념장에 콕 찍어 먹었을 때 퍼지는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거기에 마무리로 뜨끈하게 나오는 장어 뚝배기까지. 어머니는 한 그릇을 말끔하게 비우셨다.


“이렇게 잘 드실 줄 몰랐어요.”

“내가 말 안 했던가. 장어 좋아한다고.”

어머니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웃으셨다. 순간 나는, 어머니가 늘 ‘입 짧은 어른’이라고 여겼지, 무엇을 좋아하실지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좋아하는 걸 공유한다는 건, 이렇게나 마음을 여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어머니와의 장어 식사는 단순한 보양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장어 한 점이 시어머니와 나 사이의 거리도 조금 좁혀준 듯했다. 식당을 나서며 어머니가 말했다.

“아유~ 올여름, 이제 좀 견딜 만하겠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요, 어머니. 장어 기운으로 우리 남은 여름도 건강하게 버텨봐요. 그리고 다음엔, 어머니의 또 다른 ' 최애음식'을 하나 더 발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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