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슈톨렌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슈톨렌

by 로니의글적글적




지난 크리스마스, 우리 가족은 조금 특별한 약속을 했다. 이름하여 ‘포트럭 파티’ 각자 음식 하나씩을 준비해 오되, 메뉴는 당일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로 한 것이다. “메뉴가 겹치면 어쩌지?”, “입에 잘 맞아야할텐데.” 어떤 메뉴가 식탁에 오를지 짐작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족 단톡방에는 설렘 섞인 긴장감이 기분 좋게 흘렀다.


나는 실패 확률이 가장 낮은 ‘단짠’의 정석 갈비찜과 포슬포슬한 밥솥 계란을 준비했다. 동생은 제철 맞은 방어회가 주인공이라며 슬쩍 힌트를 흘렸고, 서울에서 대구까지 먼 길을 내려와야 하는 언니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무거운 건 못 들고 가지만, 아주 특별한 디저트를 챙겨갈게.”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식탁 위는 금세 풍성한 만찬장으로 변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갈비찜 옆으로 윤기 흐르는 방어회와 쫀득한 과메기가 자리를 잡았다. 접시마다 제각각인 온도와 냄새가 뒤섞이며 집안은 금세 북적였다.


왁자지껄한 식사가 끝나고, 드디어 언니의 차례가 왔다. 언니는 뜸을 들이더니 쇼핑백에서 하얀 종이에 싸인 뭉툭한 무언가를 꺼내 놓았다. 조심스레 종이를 벗기자 곱고 하얀 가루가 사르르 떨어지며 낯선 빵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나무토막 같기도 하고, 커다란 고치 같기도 했다. 그 생경한 비주얼에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고정됐다.


“이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먹는 빵, ‘슈톨렌’이야.”

언니의 설명이 이어졌다. 말린 과일과 견과류, 향신료를 듬뿍 넣어 구운 뒤 슈거파우더를 입힌 독일의 전통 빵이라고 했다. 솔직히 화려한 크리스마스케이크를 기대했던 나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기 예수를 감싸는 포대기를 본뜬 모양이라는 말에, 빵은 순식간에 성스러운 존재가 된듯 달리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빵이 ‘기다림의 음식’이라는 점이었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조금씩 잘라먹으며 숙성된 맛을 즐기는 빵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속재료의 향이 빵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다는 설명에 나도 조금씩 마음이 기울었다.


우리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한 조각씩 입에 넣었다. 첫맛은 솔직히 낯설었다. 케이크처럼 녹아내리는 부드러움도, 요즘 유행하는 소금빵처럼 고소한 맛도 아니었다. 투박한 식감 사이로 짙은 향신료 향이 풍겼다. 아이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고, 아버지는 말없이 한참을 오물거리셨다.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천천히 씹을수록 숨어 있던 맛들이 하나둘 깨어난달까. 절인 과일의 달콤함과 견과류의 고소함이 향신료와 어우러지며 입안 가득 복합적인 풍미가 번졌다. 작은 조각 하나를 다 비우고선 나도 모르게 다시 칼을 쥐고 빵으로 손이 갔다.

“처음엔 어색해도 씹을수록 괜찮지?”

언니가 웃으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엔 그래도, 커피랑 먹으니까 괜찮구나.”

여든을 넘긴 아버지가 빙긋 웃으며 빵 조각을 들어 보이시자, 거실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날 이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나는 그 슈톨렌을 떠올린다. 한 번에 전부를 알 수 없는 맛, 그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배어 나오는 깊은 향기. 어쩌면 우리 삶도 슈톨렌과 닮아 있는지 모른다. 처음은 조금 투박하고 낯설지라도 시간을 묵묵히 견디다보면, 품어온 것들이 언젠가 결국은 깊은 맛을 내는 것처럼.